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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평점 :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건으로 군조직의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요즘, 그 안에 들어있는 우리 사회 ‘남성’들의 시선과 통념들을 짚어보게 한다.
어려서부터, 남자들은 당연해, 내지는 원래 그러니까... 하면서 면죄부를 주거나 이해를 하며 처벌이 되지 않았던 문화는 정말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것을, 이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 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각자 태어난 환경과 자라온 과정에 따라, 박히는 생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당연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죄책감 없이 뱉었던 말들, 행동들이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나의 환경과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
장애를 가진 부모님을 가진 비장애인, 저자는 일찍 사회적 편견을 경험해야 했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범생, 우등생으로 살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살고 있는 이들(코다로서)이 세계적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계적인 코다 네트워크, 코다 인터내셔널을 통해 경험들을 나누면서 자신에 대한 정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었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걸리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 사회의 약자, 소외자에 대한 각종 차별과 불이익, 잘못된 인식, 복지,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제기만으로 그치지 않고, 해외사례들을 제시하거나 의견을 더하면서, 해결방안들을 던져주고 있어서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집중하게 만든다.
_H는 어렸을 때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로 이주해 영어, 네덜란드어,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까지 마친 후 현지에서 심장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H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 오래 살아온 H의 시선에서, 한국을 바라보거나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나를 바라보는 경험은 낯설고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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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왜 나의 몫이어야 하냐고. 모든 사람은 기본적인 보험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개인의 질병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_p112
_누군가는 말한다. 부의 재분배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냐고. 그러나 이 방식은 각자도생이다. 개발, 발전 중심적 사고다._p123
_... H는 타국, 그것도 네덜란드어를 쓰는 네덜란드 의대에 진학해 석,박사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의사로 일한다.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면 H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공부하면 의대 갈 수 있어요. 다들 제가 의대 갔다고 대단하다고 공부 정말 잘했을 거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만약 한국에서 자랐으면 의대 못 갔을 걸요? 저는 똑똑하고 전교 1등 하고 그래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성적도, 전교 1등도 아닌, 의사소통 능력이에요.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를 대화를 통해, 환자의 행동을 통해, 몸의 증상을 기반으로 찾아내는 거죠. 저는 보라 씨가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의사소통에 능한 사람이잖아요.“_p134
_질문이 생겼다.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든지 나눌 수 있는 의사, 궁금한 것을 전부 물어볼 수 있는 의사, 왜 가질 수 없을까?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_p136
진정으로 함께 가는 사회가 갖춰야 하는 기본소양과 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어떤 철학, 가치를 담고, 어떤 마음씀 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내용 이였다. 균형 있는 건강한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다는 의미는 진정 어떤 것인가......
모순투성이인 우리네지만, 저자는 아티비스트로서 예술작업과 운동을 계속 해나간다고 밝히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분들이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_나를 아티비스트로 명명하며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자 한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경험하고 시도해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가치일지도 모른다고 굳게 믿으며._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