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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카르마 강의 - 삶과 죽음을 넘어 진정한 나를 완성하는 공부
최준식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평점 :
답답할 때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하는 푸념을 하게 된다. 이럴 때 떠올리는 전생에 지은 죄, 업은 나쁜 의미일 것인데, 이런 식으로 업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종교학자 최준식 교수님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카르마 강의>이다.
‘업’은 한자로, 산스크리트어로는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카르마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는 ’카르마 법칙‘ 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카르마 적용에 필수적인 조건, 환생에 대한 논쟁을 종교학에서 여전히 첨예한 주제이다. 전통 불교신자들 조차도 카르마 법칙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게끔 유도하는 방편일 뿐이지 그 법칙 자체가 진실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카르마 법칙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이 증거로 여기에서는 인도 종교의 증언, 에드거 케이시의 자가 최면, 역행 최면 3가지를 들고 있다. 이 내용들 조차 믿어지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개인적으로는 평소 관심분야였던 까닭에 꽤 흥미로운 내용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격적인 카르마 법칙에 대한 내용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카르마 법칙’은 도덕적 인과성에 의해 발생되고 이어지며, 헛된 숙명론에 빠지면 안된다는 골자였다. 카르마를 생각하면 우리가 쉽게 도달하는 결론이 바로 ‘다 정해져 있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야’ 와 같은 체념 섞인 단정이지 않은가 싶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는 것과 체념하며 그냥 사는 숙명론을 헷갈린 것이다. 사실 이 두가지를 구분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단순명료하게 답을 주고 있다. 바로 도덕론에 비추어 적용하라는 것이다.
카르마는 여러 생을 거쳐서 영향을 미치는데, 더 발전적으로 거듭나서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생을 선한 마음과 행동을 가지고 수련을 하며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 굳이 카르마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이런 덕목은 기본적으로 갖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관조하는 나그네처럼 살면 카르마를 적게 만들 수 있다고도 하고 있다. 물론 선행은 행동으로 옮기고 명상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생의 나와 이번 생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가족과의 관계는 이전 생에서부터도 이어져 오는 것인가, 유달리 싫은 사람은 왜 그런 것인가, 외모가 출중한 사람은 전생의 덕인가, 신체장애도 카르마와 관계있는가, 등등 평상시 궁금했었음 직한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을 해주고 있어서, 책 내용에 대한 이해와 집중을 돕고 있다.
현생을 살면서 내 인생을 통찰하고, 나를 알아가고 발전시키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영적인 성장은 꼭 동반해야하는 조건이다. 필요성은 알고 있으나 막연한 느낌을 주는 영적인 성장에 도움주고자하는 저자의 자상함이 많이 느껴졌던 책이였다. 쉽고 단순하게 쓰여졌으나 그 단백함 속에 삶의 진리를 다 담은 듯하여 참 좋은 시간이였다.
_우리는 이들 사건이 이미 결정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따질 게 아니라 해당 사건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인 동시에 카르마 법칙이 지향하는 바입니다._[‘그렇다면 카르마 법칙은 결정론 아닌가요?’에서]
_나그네는 삶을 어떻게 대합니까? 자신이 있는 곳이 여행지이기 때문에 현실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걸음 뒤에서 그곳을 관조합니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지요.
그러니 ‘좋다’, ‘싫다’ 같은 감정이 격렬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감정이 일어나도 그것에 마음을 싣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좋은 마음을 관조할 뿐입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마음이 초연해집니다. 그러면 카르마와 이별할 수도 있습니다. 나그네는 바로 이런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_[‘카르마를 적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