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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ㅣ 앤드 앤솔러지
김혜나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평점 :
_창문에 살포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처럼, 혼자서 조용히 술을 빚으며 살고 싶었다._p36
_신경이 가닥가닥 뻗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예민해질 때 위스키가 그 신경을 좀 느슨하게 만들어 줘._p66
나에게 술이란 어떤 존재인가... 아니 어떤 존재였나?
대학 때 많이도 마셨던 것 같은데 정말 말 그대로 주종과는 별개로, 분위기와 그 자리의 대화, 때로는 풍류 그 자체를 즐기는 자리의 필수품이였던 것 같다. 지금은 되도록 숙취가 적은 도수 높은 종류로 1~2잔 마시거나, 입맛에 맞는 와인 1잔 정도의 반주를 아주 가끔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이런 심심한 나의 알코올 스토리와는 달리, 술에 관한 5가지 진한 소설을 담은 책이 있다. 제목도 확 끌리는,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로 앤드앤솔러지 시리즈다.
술에 진심이고 술을 담그며 조용히 살고 싶지만 사람에 치이며 피곤한 현대인,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친구가 마셔보고 싶어했던 위스키를 고르고 마시며 인연을 이어가는 나,
현실의 힘듦을 거품 가득한 맥주 한 잔으로 털어내는 가장의 밤, 혼술보다 낯선이와의 맛난 술자리를 택한 사람의 소망, 그리고 고급진 취향으로 치부되는 와인 수집과 화려한 언어들로 버무러진 이 술의 세계까지..
제목에서 추측되었던 명량함과는 달리, 꽤 무거웠고, 또 따뜻한 사람 이야기가 가득했다.
추운 늦가을밤 따듯한 정종이 생각나게 했고, 더불어 함께 할 이가 있다면 금상첨화 일듯!
_신풍아이피에이는 식도를 지나 위를 자극하고 몸속 구석구석까지 알코올 기운을 퍼뜨렸다. 가슴속이 답답했던 것이 펑, 뚫리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의 마지막 맥주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_p107
_나는 낭만고양이와 건배하고 잔을 비운 뒤 삼겹살 한 점을 소금에 찍었다. 잡내 없이 혀 위에 맴도는 감칠맛과 기분 좋은 육향. 껍질이 붙어 있어 쫄깃한 비계와 부드러운 살코기의 조화로운 식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_p130
_나는 정해진 소득도 없는 주제에 와인깨나 공부한 값으로 부듯한 이력을 공상한다. 이런 와중에도 돈은 실체를 갖고 흔든다. 예술도 문화도 세상도 쥐고 흔들어 댄다. 임 교수의 와인 창고도 그랬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 병들이 떼로 묻힌 저 창고가 그의 유일한 자랑이고 예술이며 문화인데,
씨발, 돈 있는 집 자식이 돈 좀 쓴다고 해서, 그게 뭐 대수라고._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