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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_보드카를 따른다. 그 맛은 한밤중에 옛 도시로 날아갈 때 느끼는 묘한 간절함과 같다._p13
보드카가 혀끝에 머무는 것 같은 서문의 첫 문단이 너무 좋아서 이 페이지에 한참을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기가 내 안으로 쑤욱 들어왔다.... 이 책은 바로 #김주혜 작가의 3년 만의 #신작 , #밤새들의도시 다.
2024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작은땅의야수들 이후 첫 장편소설이라서 많은 곳에서 관심을 받았고 역시나 호평을 받으며 소개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이 특히 끌렸던 이유는 BBC의 “러시아 고전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적이고 아름답다” 는 평 때문이였다. 러시아 고전문학에, 시적이고 아름답다니! 이보다 더 벅찰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정상에 오른 프리마 발레리나인 나탈리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노력과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 또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할지 등, 한 사람의 여정이 우리를 대표해서 다채롭게 그려지고 있었다.
발레라는 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에게는, 발레 작품들과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하루루틴, 이들 사이의 경쟁, 발레단 생활의 전통과 위계질서, 평소 만나기 힘든 이들의 소소한 삶까지, 새로운 세계와 관점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이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술술 넘어가든지!
그리고 지나칠 수 없는 주인공의 시련, 사고로 무대를 떠나게 되었던 나탈리아가 2년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회고하는 기억들과 감정들, 이곳에서의 무대복귀 제안까지.... 아직 사고후유증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완전히 다른 자신인데 과연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다시금 아름다운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
제목의 ‘밤새’는 집이니까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회귀본능... 인간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책 속에는 ‘새’가 자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새가 가진 날개를 나와 주인공에게 달아주고 싶었다.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나르는 것이겠지만, 날개가 있다면 더 자유로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는 이런 날개의 역할을 하는 것은 ‘절박함’ 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삶이라고.....
여름날보다는 겨울 깊은 밤에 어울리는 듯 했었던 소설이였고, 긴 페이지를 촘촘하게 엮어내는 저자의 필력이 놀라웠다. 어떤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시간들이 존재하는 삶으로 끝을 맺고 싶어졌다.
_모든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더욱 강해진다. 두려움도, 슬픔도, 욕망도, 꿈도._p148
_... 나이가 들면서 어떤 실수를 하든 예전만큼 창피함을 느끼지는 않게 되었다. 결국 인생이란 모든 게 실수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실수가 아니다._p361
_우리는 서로 손을 꽉 잡고, 씩 웃는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비극은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의 간극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꼭 말하고 싶은 건, 그 간극이 대부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_p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