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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평점 :
_어떤 계기로 초목을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랑하다니, 그렇게 확고한 감정은 아니다.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접하는 초목 덕분에 단지 마음이 조금 윤택해진다는 그 정도의 감정이다. 오늘 아침 길에서 탐스러운 석류꽃을 봤다든가, 올해는 태풍 때문에 은행나무 단품이 예쁘지 않을 거라든가 하는,.._p26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데이즈 를 보면, 주인공 히라야마가 주기적으로 들르는 헌 책방이 나온다. 이곳에서 중고 문고판 책들을 사는데, 그 중 #고다아야 의 #나무 가 있다. 이 책을 골라서 책방주인에게 가져가니 책방주인이 이 책에 대하여 “평범한 단어와 문장만 사용해서 쓰긴 했지만, 이 책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특별한 표현들은 없지만 의미가 깊다는 책방주인의 말은 평범한 일상을 꿀 같은 비범함을 담아서 잔잔하게 담고 있는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무척 기억에 남는다. 고다 아야의 유작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이 책을,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어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연을.. 특히 초목을 다룬 도서들은 특유의 편안함이 있는데, 이 책 속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다 살아있었다. 쓰러져 죽은 나무위에서는 새로운 나무가 자라났고, 잘려진 나무는 목재로 되살아났다. 섬에서 만난 삼나무는 환경의 척박함에 애틋했다가 부족함이 성장에 도움된다는 말에 저자와 같이 읽는 이의 마음도 뜨끔하게 만든다.
길 가다가 만난, 두 나무는, 서로 가까이 붙어 자랐는데 하나는 똑바로 서 있고, 다른 한쪽은 비스듬히 굽어 있었다. 이들을 보며 굽고 비틀어진 나무는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지 ... 목재로도 좋지 않다는 대화를 나누며 나무대신 억울해하는데, 이 내용을 통해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이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책방주인의 말처럼 현란한 표현은 없지만, 나무를 통해서 우리를 투영하고, 사계절이 들어있고, 생과 사가 포함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글로 마음에 더 와닿는 책이였다. 다 읽고나니, 이다혜 작가의 추천사에 깊이 공감되었다.
_궁금하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의 탐미주의는 곧게 뻗어 자라는 초목의 침만큼이나 죽음과 붕괴에 격렬하게 반응하다. 말년의 글쓰기가 갖는 깊은 눈짓이 이러 것 아닐까._-이다혜 작가
이 책, 널리 알리고 싶다. 이제부터 내 여행 파트너로도 함께 할 것 같다.
_수령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는 두 나무는 마치 형제처럼 바싹 붙은 채 우뚝 솟아 있었다. 한 그루는 곧게 뻗어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약간 기울어져 있는데 자연의 그림이라고 할까.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풍취가 있었다. ..... “.....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더 많이 애를 써야 할 겁니다. 당연히 몸 어딘가에 무리가 갈 테고, 그것은 당연히 본래 독바로 자라야 할 나무의 성질을 어딘가에서 변형시키고 있다는 뜻이지요....”_p55
_숲을 걷는 사람은 모두 같은 심정을 느끼는 듯한데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어린 나무는 희망이고, 새로 자란 나무는 구원이다.” 나무의 죽음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태연스레 자발적으로 그에 관해 깊이 탐구하려는 강인함을 지녔으면서도, 어린 나무의 번영에 위로받는 것이다._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