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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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다이시지에 의 단편소설집, #세중국인의삷 ... 중국의 섬, 귀도에 사는 세 사람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프랑스 소설로 쓰여진 소설이라 프랑스문학으로 분류된 책은, 나에게 문득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를 떠올리게 했다.

 

아마도, <세 중국인의 삶>에 나오는 세 명의 인물, 조로증에 걸린 소년,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 미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청년.. 이들은 그냥은 독립적으로 떨어져서 각자의 고충에 힘들어하는 모습이였지만, 읽을수록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피를 팔러 다니던 허삼관과 겹쳐보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허삼관에게는 일말의 유머가 블랙코미디처럼 있었다면, 이 소설은 날 것 그대로 아팠다. 벙어리 이모와 함께 낡은 컨테이너에 사는 소년은 다른 사람대신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 배역을 위한 연기를 연습한다. 그리고 스케이트를 잘 타던 딸이 수년 후에 사라진 어머니를 발견하며 알게 된 것은 가슴 섬뜩해지는 진실이였다.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었던 미대생은 주방보조로 일하게 되는데 어느 날 새끼를 가진 천산갑이 식재료로 들어오면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고향을 찾은 차남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각 소설의 끝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먹먹함은 저자가 고국에 대하여 느끼는 바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행태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가를 정면돌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단편 특유의 묵직한 아름다움이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도 저자의 필력 덕분일 것이다.

 

다이 시지에의 명성을 들었으나 작품은 처음이였는데, 너무 좋다... 단편집이여서 더 아름다웠다.

 

_벙어리 여인은 여러 직책을 겸하고 있었다. ..... 두부 한 모를 팔 때마다 들어오는 동전을 세는 즐거움을 그녀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문제가 생겼고, 경쟁은 치열했다. 사랑 노래를 부르듯 손님을 부르는 목청 좋은 경쟁자들을 상대로 벙어리가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녀의 무기는 북이었다._p12

 

_.... 양동이는 조금 전보다 약간 더 무거운 정도였다. 물과 함께 올라온 건 겨우 운동화 한 짝이었으니까. 빨간 나이키 마크가 선명한 흰 바탕에 파란 줄이 있는 운동화였다. 나는 즉시 그것을 알아보았다. 넉 달 전 실종된 어머니의 운동화였다._p75

 

_그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서라도 손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_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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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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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60대인 지인이 의논을 해왔다. 자연 속 별장을 가지는 것이 꿈인데, 앞으로 몇 년이나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투자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지, 하며 나는 찬성했다. ... 어떤 일이든 끝은 온다. 만년의 그 기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라면, 주저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려고 평생 일하고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_p126

 

 

코로나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간 일본 사회학자가 있다. #우에노지즈코 는 산속에 지어놓은 집에 들어와 보낸 시간들을 스물네 가지 이야기로 옮겨서 #산기슭에서나홀로 에세이를 내놓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는 삶,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생활이지만, 숲속에서 사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고충들도 털어놓고 있어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글이였다. 사계절을 만끽하고, 이주자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해먹고, 원격 근무를 하게 되고, 정원을 찾아오는 예쁜 왕오색나비도 있지만 화들짝 놀라게 되는 온갖 벌레들과의 싸움, 정화조가 고장, 쓰레기 문제, 교통편과 차 운전에 대한 고충 및 나이들어 스키를 즐기는 시간 등.. 적막한 산 속 생활일 것 같지만 도시보다도 더 다이나믹 하다.

 

특히 여러 모임들과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대화나 에피소드가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아마도 저자가 결국 바라는 것은 나 홀로족이라도’ “현재 사랑하는 호쿠토에서 마지막 날까지 보내기여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많이 되는 점이기도 하다.

 

홀로 떨어져 있는 듯 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이 된 것은 아니였고 의료 및 돌봄에 관한 내용, 커뮤니티에 대한 것들도 자세히 들어있어서 사회학자로서의 저자의 힘이 느껴지는 에세이였다. 노후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였다. 즐거움도 함께한 숲속 생활이였다.

 

 

_... 남쪽을 보면 후지산이 펼쳐진다. 겨울의 맑은 하늘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은백색 후지산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_p17

 

 

_원격 근무를 하려면 집이 똑똑해져야 한다. 산속 집에는 일찍이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그 대신 어디에 있든 일단 피시만 켜면 되니 일에서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_p107

 

_코로나 사태가 가져다준 정적 속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음미하며 이로카와 씨를 돌보는 나날은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좋고 싫음이 확실한, 그 꼬장꼬장하고 고고한 노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와 친해진 것이다._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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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강두식 옮김 / 빛소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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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측량사 K는 어떤 성에 초대를 받아 이 성으로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당연하게 시작한 이 여정은 어렵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은 K가 성에 초청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의심과 공격으로 대한다.

 

아무리 K가 자신의 용무를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를 초대한 성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내려오지 않는다.

 

결국 K는 마을 외관에 머물면서 성으로 갈 일만 기다리지만.....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그는 성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

 

 

_... 이렇게 K는 꿈을 희롱하고, 꿈은 K를 희롱했다._p222

 

 

두꺼운 페이지들을 채운 이야기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지만... 그렇게 허망하다. K가 마을 주민들의 냉대를 이겨내며 다다르고자 했었던 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존재는 했었던 것일까?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K의 긴 여행기는 어느 순간 목적을 잊게 만든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실존적 질문이 슬쩍 올라온다. 목적지 자체를 분해해버리는 #카프카 의 글에 가슴이 풀썩 내려앉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편안해지고 안심이 되는 지점이 찾아온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게 되는 주인공처럼.... 어쩌면 어찌 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좁아진 시야 때문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프카가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소설’,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설이라고 하는 이 작품은, 읽는 이에 따라 도달하고자 하는 이 달리 보일 것 같다. 미완성으로 끝난 소설의 끝은 우리의 몫이다.

 

언젠가 또 읽으면 해석이 달라질 것 같은,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_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방을 돌아다보더니 어깨 너머로 땅에 꽂힌 수많은 십자가들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위대했다. 그때 우연히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노기를 띤 눈초리로 K에게 아래로 내려오라고 야단을 쳤다. 뛰어내릴 때 무릎을 다쳐서 K는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담을 정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_p49

 

_“..... 무엇보다도 당신이 오늘 내로 성에서 무슨 성과를 거두시지 못하면 정말 당신 혼자만의 잠자리도 이 마을에서 구하지 못할 거예요. 잠자리란 장차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부끄럽지 않을만큼 훌륭한 잠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잠자리를 구하지 못한 당신이 추운 겨울밤에 헤매고 돌아다닐 것을 내가 빤히 아는데도 당신은 나 혼자만이라도 여기 따스한 방에서 자라고 말씀하겠지요.”_p144

 

_오늘 자신의 피로가 모든 사정의 불리함보다도 손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K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는 의지할 만하다고 믿고 있던 그가, 그리고 그런 확신이 없다면 결코 이런 곳까지 오겠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그가, 어째서 몇 번의 힘든 밤과 잠을 자지 못한 하룻밤을 견뎌낼 수 없었던 걸까? 어째서 바로 여기서 이렇게, 어쩔 수도 없이 피곤에 지쳐버린 것일까? .... 오히려 일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K는 왜 이토록 피로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그들의 피로는 K의 피로와는 전혀 달랐다. 여기서는 행복한 일 안에도 피로가 깃들어 있는 듯했으며, 회부에서 볼 땐 피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깨부술 수 없는 안정이자 깨부술 수 없는 평화였다. 대낮에 약간의 피로를 느끼는 건 그날 하루가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마을의 높으신 분들에게는 늘 대낮만 있다.” K는 혼자 중얼거렸다._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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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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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어떤 계기로 초목을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랑하다니, 그렇게 확고한 감정은 아니다.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접하는 초목 덕분에 단지 마음이 조금 윤택해진다는 그 정도의 감정이다. 오늘 아침 길에서 탐스러운 석류꽃을 봤다든가, 올해는 태풍 때문에 은행나무 단품이 예쁘지 않을 거라든가 하는,.._p26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데이즈 를 보면, 주인공 히라야마가 주기적으로 들르는 헌 책방이 나온다. 이곳에서 중고 문고판 책들을 사는데, 그 중 #고다아야 의 #나무 가 있다. 이 책을 골라서 책방주인에게 가져가니 책방주인이 이 책에 대하여 평범한 단어와 문장만 사용해서 쓰긴 했지만, 이 책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특별한 표현들은 없지만 의미가 깊다는 책방주인의 말은 평범한 일상을 꿀 같은 비범함을 담아서 잔잔하게 담고 있는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무척 기억에 남는다. 고다 아야의 유작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이 책을,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어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연을.. 특히 초목을 다룬 도서들은 특유의 편안함이 있는데, 이 책 속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다 살아있었다. 쓰러져 죽은 나무위에서는 새로운 나무가 자라났고, 잘려진 나무는 목재로 되살아났다. 섬에서 만난 삼나무는 환경의 척박함에 애틋했다가 부족함이 성장에 도움된다는 말에 저자와 같이 읽는 이의 마음도 뜨끔하게 만든다.

 

길 가다가 만난, 두 나무는, 서로 가까이 붙어 자랐는데 하나는 똑바로 서 있고, 다른 한쪽은 비스듬히 굽어 있었다. 이들을 보며 굽고 비틀어진 나무는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지 ... 목재로도 좋지 않다는 대화를 나누며 나무대신 억울해하는데, 이 내용을 통해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이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책방주인의 말처럼 현란한 표현은 없지만, 나무를 통해서 우리를 투영하고, 사계절이 들어있고, 생과 사가 포함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글로 마음에 더 와닿는 책이였다. 다 읽고나니, 이다혜 작가의 추천사에 깊이 공감되었다.

 

_궁금하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의 탐미주의는 곧게 뻗어 자라는 초목의 침만큼이나 죽음과 붕괴에 격렬하게 반응하다. 말년의 글쓰기가 갖는 깊은 눈짓이 이러 것 아닐까._-이다혜 작가

 

 

이 책, 널리 알리고 싶다. 이제부터 내 여행 파트너로도 함께 할 것 같다.

 

 

_수령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는 두 나무는 마치 형제처럼 바싹 붙은 채 우뚝 솟아 있었다. 한 그루는 곧게 뻗어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약간 기울어져 있는데 자연의 그림이라고 할까.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풍취가 있었다. ..... “.....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더 많이 애를 써야 할 겁니다. 당연히 몸 어딘가에 무리가 갈 테고, 그것은 당연히 본래 독바로 자라야 할 나무의 성질을 어딘가에서 변형시키고 있다는 뜻이지요....”_p55

 

_숲을 걷는 사람은 모두 같은 심정을 느끼는 듯한데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어린 나무는 희망이고, 새로 자란 나무는 구원이다.” 나무의 죽음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태연스레 자발적으로 그에 관해 깊이 탐구하려는 강인함을 지녔으면서도, 어린 나무의 번영에 위로받는 것이다._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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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사랑스러워 쉬이 잠들지 못하였답니다
한재우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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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하얀 봄날>

 

돌난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니

바람이 나를 괴롭혀

의관마저 풀어 놓았지요

_

 

강렬한 색감에 자극적인 언어로 눈과 머리를 각인시키는 그림들과 글도 좋지만, 종종... 아니 자주 휴식 같은 단어들과 정서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딱 적합한 것이 연한 수채물감과 함께한 한 시 한 편 아닐까?

 

제목도 낭만적인 달빛이 사랑스러워 쉬이 잠들지 못하였답니다’, #한재우 시집으로 한 시들이 마알간 색들과 함께 들어있었다. 도시의 풍경이 익숙한 나를 숲으로 이끌고, 자연 속 마을로 데려가고, 추억살이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그리움이 보이기도 하고.. 흐름 안의 우리네가 여기에 있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읽어내는 시들 덕분에 휴식 같은 시간을 가졌다.

 

 

_<못다 한 이야기>

 

달그림자가 서루에 스며드니

맑은 빛이 나와 함께 노니는구나

시정을 넉넉히 드러냈으나

다만 어찌 주워 담을까 걱정이로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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