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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 - 전면개정
박철범 지음 / 다산에듀 / 2022년 1월
평점 :
청소년 시기였다면 나는 절대로 이 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라면 모를까.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한창 다른 것에 호기심을 확장 시켜야 할 시기에 여러 날도 아닌 '하루'를 택했다. 그 하루 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공부'만 하고 싶었던 저자의 유년 시절에 따듯한 시선을 보내본다.
자유롭고 싶었던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사고로 손가락을 잃으셨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p25
나는 되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하게 되면 화가 나니까.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와 소년도 소년의 동생을 데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왔다. 이곳도 저곳도 모두 가난이지만 세계가 옮겨졌다는 건 보는 게 달라졌다는 것이기도 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센 척을 하거나 아니면 쉽게 포기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소년은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굴복하지 않기 위해 강해지기로 한다.
p41
녀석들을 따라 나가면서 나는 직감했다. 그 애들 앞에서 울먹이며 기죽는 순간 왕따가 되리라는 것을. 지금 밀리면 이곳 학교생활은 끝이다.
'날 한번 건들면, 졸업할 때까지 매일 나랑 싸워야 할 거야.'
소년은 아침 등교, 쉬는 시간마다 자신을 건들었던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p43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것은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넘어설 수 없는 산은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도 없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끝까지 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룬 꿈보다 유년 시절 '깡'이 좋았다. 저자가 창진이라는 친구를 높이 보았듯, 비슷한 시기의 내 모습이 소년 곁에 따라붙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나는 그렇게 깡을 부리는 친구들을 볼 때면 찡했다. 소란이 멈추고 그 자리에 다시 일상이 채워져도 그 순간 그 아이들의 몸부림은 잊히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창을 맨 주먹으로 깨고 피를 흘리던 그 녀석도 아팠던 아이였구나.. 자신을 지키려 온순하던 녀석이 의자를 들어 올려 바닥을 내리쳤던 녀석의 눈은 분노보단 슬픔에 가까워서 그리 마음 쓰였구나. 각자 다른 상처들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는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책은 소년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공부의 비법을 내려놓고 나는 이 소년이 걸어가는 길을 조용히 따라 걷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p50
내 몸은 북삼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마음은 우물 안에 고인 물처럼 어디로도 흐르지 못했다. 그러니 공부에 대한 생각도 미래에 대한 고민도 우물 안에 갇혀 버렸다.
흐르지 못한 것들에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오거나 물길을 터주지 않으면 고인 채 말라가다 썩고 만다. 우물은 어디 가서 나 깊고 어둡다는 사실에 조만간 '우물'이라는 단어를 채집해 다른 색을 입히고 싶어진다.
한 사람이 자라오는 동안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지켜봄이나 지나치듯 건네는 따듯한 말 한 디는 하나씩 있다. 나는 소년의 성장에서 그를 조용히 응원하는 몇몇 선생님들의 말에 미소를 전하고 나 역시 그런 응원을 어디론가 흘려보내야겠구나 싶어졌다.
전국 중고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추천한다는 이 책을 초등 엄마인 내가 읽으면서 '학교 공부'가 아닌 인생 공부로 가져다 붙여 읽히는 이유는 뭘까?
나 역시 무엇인가 하고 싶어서다. 필사는 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이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필사적인 노력으로 나는 인정과 돈 그 이외 또 무언가를 향한 공허함이 있다.
p55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뭐야.. 이 저자 원래 머리가 좋은 거 아니야?'
'집안 사정이 어렵다면서 왜 현실과 타협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이 함께 들었다. 고생한 엄마, 외할머니를 위해 적당히 하고 돈을 벌어도 되지 않을까? 너무 자기 욕심부리는 건 아닌가?
서울대가 등장하고 내 현실 세계 밖 이야기가 돼버리는 기분이랄까? 그런데도 끝까지 읽어보게 되는 건 소년이 바라는 일은 무엇일지 궁금해서다. 남들이 보기에 모든 걸 이룬 듯 보이는 첫 번째가 대학 간판인데 그 간판을 이력에 넣고 무엇을 하려는가. 이 마음 안에는 힘들었던 유년 시절의 소년이었던 그를 애틋해하면서 결국 그가 공부로 잘 먹고 잘 사는 삶에 그치진 않았길 바라는 소망이 있었다. 독자가 바라는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엔딩을 원하다니.. 나도 참. 염치없다.
p170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가난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외할머니가 홀로 그 가난을 짊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도 외할머니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따. 새벽 3시에 맞춰진 시계와 새로 갈아진 연탄. 그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말이 아닌 삶으로 직접 보여주는 가르침.
나는 이 책을 내 자녀에게 읽으라며 전하지 않을 것이다. 전한다고 펼치지도 않을 테니. 딱 봐도 "공부해라.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 삼촌은 이뤄냈다. 본받아라."라는 엄마의 본심이 확연히 드러나있으니 말이다.
부모가 읽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나는 얼마나 공부에 진심이었는지, 그 시절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었고, 어떤 말에 어느 하루를 견뎌냈는지 떠올려보면 이 책을 건네지 못할 것 같다.
건네는 대신 보여주고 싶어질지 모른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말이 아닌 삶으로 직접 보여주는 가르침.
소년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된 저자는 말한다.
p10
공부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가자 좋은 본보기는 역시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극복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