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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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과 해석으로 다시 보는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 16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다. 이렇게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엄마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죽음에 대한 슬픔, 애도, 비통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양로원에서 온 전보처럼 다소 딱딱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는 양로원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엄마의 관을 마주하게 된다. 관을 열어 어머니 얼굴을 보겠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 라고 말한다. 몇 번을 물어도 그의 대답은 'No'이다. 왜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것일까. 양로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노인들의 밤샘 조문의 모습과 그의 조문은 상당히 비교된다. 자신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다던 한 여자분의 끊임없는 울음과도 너무도 대조된다. 그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결코 울지 않는다. 너무나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제 3자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평상시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나?" '원래 그의 성격이 무심하고 냉담한 성격인가?" 뭔가 분명히 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왜 주인공 뫼르소가 이런 태도와 행동을 보였는지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그의 무관심하고 냉정한 태도가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마 뫼르소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별로 말도 없고 감정 표현도 서툴고 솔직한 그의 행동이 그를 절망과 불행으로 빠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장례식 이후 전혀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변함없는 일상을 해나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수영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말이다.그렇게 언제까지나처럼 변함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 42-

 

그는 장례식 이후 전혀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변함없는 일상을 해나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수영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말이다.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게 회사에 가서 일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그런 일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데 뫼르소는 자신의 아파트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자신의 개에게 욕설을 퍼붓고 매질을 하는 개주인인데 나중에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다.

또한 뫼르소는 같은 층에 사는 다른 이웃인 레몽과 친하게 되는데, 동네에서 그는 여자들로 먹고 산다고 한다. 뫼르소는 그와 친하게 지내며 , 이야기도 나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함께 저녁도 먹는다. 거의 친구같이 친하게 지내지만, 이것이 뫼르소의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왜냐하면 레몽은 아랍인들에게 위협을 받고 쫒기고 있는데, 그 일에 뫼르소에 연루가 되게 된다. 왜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아랍인이 뫼르소 본인 자신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는 끝내 무엇에 홀린 듯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 

이로 인해 뫼르소는 어떻게 될까. 이렇게 그의 불행의 서막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은 것이었다.'

-p.86-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그의 살인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하지만, 재판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그가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것보다는 왜 그가 그의 엄마 장례식에 가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엄마를 왜 양로원으로 보냈느냐 등과 같은 엄마와 그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그의 엄마 장레식때도 애도하지 않고 울지도 않는 냉혈안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의 분노로 인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그의 적이 되어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그런데 그가 엄마 장례식에 가서 제대로 애도를 표하지 않고 울지 않은 것과 그가 아립인을 살해한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검사의 주장이나 증인들의 증언 내용, 배심원들 판단을 보면서 왜 그들은 그의 엄마의 장례식과 살인 사건을 연결지으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대로 그 재판 속에 뫼르소 자신은 없었다. 그의 동기, 그의 생각, 판단, 감정 등은 하나도 고려되지 않고 그들 멋대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뫼르소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완전히 폭력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괴물로 바뀌게 된다. 그는 결코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도 냉혈안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거짓말을 못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못하고 신념을 믿고 사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그래서 저자인 알베르 카뮈도 그런 타자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뫼르소가 그렇게 사람들하고 원만히 어울려 지내고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사형이란 처벌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거짓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었다. 자신의 판결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에게 내려진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그는 자신이 가진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은 과연 범죄인 것일까? 그 소신이 그런 시민 윤리와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소신을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새 부조리한 인물로 낙인 찍히고 마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알베르 카뮈- 

 

이 책  「이방인」의 역자 이정서씨는 잘못된 번역과 해석으로 인해 원저자인 알베르 카뮈가 표현하고 하는 의미가 왜곡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원전과 번역 사이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 「이방인」의 내용이 잘못 해석되고 전달된 것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출판사 책과 다르게 원전과 가깝게 해석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프랑스어로 쓰여진 이 책 원문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원문과 가깝게 해석해서 그 의미가 왜곡되지 않게 번역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번역과 해석으로 다시 읽어보게 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이방인」 의 주인공인 뫼르소의 고뇌와 진심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그는 냉혈안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소시민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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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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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고기와의 사투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물고기나 노인이나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그들의 힘 겨루기는 팽행선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노인은 물고기가 힘이 빠져서 배를 선회할 때까지 기다리지만, 물고기는 도저히 항복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물고기와 노인은 며칠 동안 힘겨루기를 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지쳐간다. 노인은 피로와 아픔, 고통, 배고픔 등을 참아가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다. 정말 노인의 생각대로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였다. 처음에는 그 물고기를 잡으면 모든 일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고기를 잡아서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라는 걸 몰랐다. 

 

노인이 물고기와 벌이는 사투의 과정이 너무나 긴박하게 펼쳐져서 그 이후에 더 큰 위험이 가디라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문제는 바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버텨서 겨우 물고기와 싸움에서 승리했는데, 그것은 전반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 위험하고 힘든 후반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상어와의 사투였는데, 낚싯줄에 매달린 거대 물고기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불굴의 의지로 그 사투에서도 살아남았다. 몇 번이나 죽음의 위협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살아남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물고기였다. 

 

노인은 결국 물고기와의 싸움에서도, 상어와의 사투에서도 승리한 것일까?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는 누구일까? 어쩌면 저자인 헤밍웨이는 이 싸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인생과 삶의 투쟁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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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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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그의 살인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하지만, 재판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그가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것보다는 왜 그가 그의 엄마 장례식에 가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엄마를 왜 양로원으로 보냈느냐 등과 같은 엄마와 그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그의 엄마 장레식때도 애도하지 않고 울지도 않는 냉혈안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의 분노로 인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가 엄마 장례식에 가서 제대로 애도를 표하지 않고 울지 않은 것과 그가 아립인을 살해한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검사의 주장이나 증인들의 증언 내용, 배심원들 판단을 보면서 왜 그들은 그의 엄마의 장례식과 살인 사건을 연결지으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대로 그 재판 속에 뫼르소 자신은 없었다. 그의 동기, 그의 생각, 판단, 감정 등은 하나도 고려되지 않고 그들 멋대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저자인 알베르 카뮈도 그런 타자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뫼르소가 그렇게 사람들하고 원만히 어울려 지내고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사형이란 처벌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거짓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었다. 자신의 판결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에게 내려진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그는 자신이 가진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자기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이 그가 아립인을 살해한 죄보다 더 중하고 나쁜 죄일까? 카뮈가 한 말이 심금을 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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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토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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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에 하무라는 퇴원을 하고, 몸이 회복되는 집에서 부업을 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하세가와 소장의 전화가 온다. 또다시 그녀에게 맡겨진 사건 수사!

 

이번에는 지난 번 17살 가출소녀 미치루의 친구 미와의 실종 사건이다. 그녀가 실종된 지 10일이 지났는데 처음에는 미치루처럼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위한 계획적인 가출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미와는 남자친구도 없고 허락없이 가출이나 외박을 한적이 없다. 그래서 사건의 방향은 단순 가출이 아닌 감금이나 납치, 살해 쪽으로 전환된다.

10일 동안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왠지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 하무라의 예측대로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 거라면? 무슨 이유로? 왜?

 

다키자와는 미와가 가출할 만한 아이가 아니고, 무단 외박도 하지 않으며, 자신에게는 반드시 연락을 했었다고 거듭 주장했으면서도 내가 내비친 사실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결국 미와 양이 어떤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릴. 그럼 경찰에서 연락이…….”
“감금 사건은 대개 피해자가 도망간 이후에야 밝혀지니까요.”
‘아니면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된 후’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실까지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 p.54~55

 

그러다 미와의 시체 대신 다른 소녀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그 소녀는 바로 미와의 친구는 아야코이며, 그녀의 사인은 액살이었다. 누가 그녀를 손으로 목 졸라 죽인 것일까?

혹시 미와 또한 액살로 발견된다면? 이런 궁금증을 안고 초반전을 끝내고 이야기의 전반전으로 들어간다. 전반전에서는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과연 하무라 탐정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활약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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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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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85일 째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운이 좋을 거라고 기대하며 노인은 바다에 나가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이번에는 뭔가 잡을 수 있을까? 정말 그의 기대와 예상처럼 대어를 잡을 수 있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낚싯줄에 걸린 걸 알게 된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 엄청나고 힘도 무지 세기 때문에 좀처럼 낚싯대로 그 물고기를 수면 위로 끌어당길 수 없다. 그때부터 노인과 물고기와의 한판 승부,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낚싯 바늘에 걸려버려 빠져나오고자 하는 물고기와 온몸으로 그 낚싯줄을 잡고 있는 노인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고, 그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 힘겨루기는 하루를 지나 이틀째에 접어든다. 잠도 자지 못하고 낚싯줄을 포기하지 않고 온몸으로 버티는 노인의 집념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정말 말 그대로 '노인이 이기냐, 물고기가 이기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물고기 또한 노인의 집념과 인내 만큼 대단하다.

분명히 낚싯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벗어나려고 할텐데 이상하게도 이 물고기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낚싯줄에 걸린 줄 모르고 물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렇게 물고기든, 노인이든 누구하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누가 오랫동안 버티느냐의 문제, 그 결과에 따라 노인이 승리해서 물고기를 포획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말대로 그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될지 궁금하다. 물고기냐, 노인이냐....

 

내 계획은 녀석의 엄청난 몸집으로 인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해.

만약 녀석이 뛰어오른다면 나는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녀석이 영원히 아래 머물고 있어. 그러면 나는 녀석과 함께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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