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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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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저/ 한기찬 역

소담출판사/ 2021년 12월 8일

조지 오웰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경고





1. 들어가며

누군가가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면?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감청당하고 감시당하고 있다면? 즉 국가가 언제든 개인을 감시하고 있고 나의 자유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그런 사회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의 행동과 말은 CCTV 같은 텔레스크린이 나를 항상 주시하고 있고 그 텔레스크린 너머에는 '빅 브라더'가 있다.

조지 오웰인 이 책 『1984』를 통해 독제 체제의 현실과 미래 예언적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리고 있다. 감정을 통제하고, 사고의 범위를 말살함으로써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까지도 조작하고 제거하는 국가의 독재 권력과 힘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 사회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 속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독재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간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 『1984』속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 속에서 국가 권력이 독재와 통제가 얼마나 위험하고, 개인의 자유를 포함한 인간의 기본권이 얼마나 중요하고 반드시 존중되어야야만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2. 1984 속으로

인간의 기본 욕구를 억제하는 독재 권력 사회에서

부조리함에 항거하는 개인의 최후를 예리하고 강력하게 묘사한 작품

이 책 「1984」은 미래 예언적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당에 의해 개인은 항상 감시를 받는다.사람들이 내는 모든 소리는 도청 당한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감시당한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서로가 감시하고, 언제든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고 나를 신고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렇게 숨도 마음껏 쉴 수 없고 마음껏 잠을 잘 수 없다. 항상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독재 정치 기구인 당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24시간 어디에서나 당원들을 감시하고 도청한다. 솔직히 이런 사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너무 답답하고 목을 죄어오는 갑갑한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사회 속에서도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지금 우리처럼 살아간다. 우리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당원이며 '진실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부는 진실부, 평화부, 다정부, 복지부 이렇게 네 개의 부처로 나뉘어서 운영되고 있다. 진실부는 뉴스와 오락, 교육, 예술을 다루고, 평화부는 전쟁을 맡고, 다정부는 법과 질서의 유지를, 복지부는 경제를 담당했다.

이름은 '진실부'이지만 진실이라는 이름과 정반대로 진실을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진실부는 당의 이념과 목적에 맞게 신문이나 잡지 등 여러 언론자료를 조작하고 위조하는 역할을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능력

이것이 바로 당의 3대 슬로건이다. 의미를 살펴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전혀 모순되는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고 실제로 이 슬로건대로 전쟁 상태가 계속되어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개인은 끊임없이 감시, 도청, 구속 당하면서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당은 가족간의 사랑, 성욕까지 통제하면서 당원들끼리 가족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게 만든다. 자식이 부모를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당에 고발한다. 그러면 고발당한 사람은 즉시 끌려가 '증발' 한다. 이 '증발'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존재했던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 이 되는 것이다.

인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그때까지 해 온 모든 일에 관한 기록이 깨끗이 삭제되고 한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부정되고 얼마 후에는 아예 잊히고 말았다. 폐지되고 소멸하는 것이다. 대개는 '증발했다'고들 했다.

-p.32-

주인공 윈스턴은 그런 사회 속에서 당의 이념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의 생각을 일기장에 적어놓는다.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p.31-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되고 빅 브라더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존경만이 허락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그는 이 문장들을 큼직큼직하고 단정한 대문자로 반복적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런 그 행위는 나중에 발각되면 목숨의 위협을 줄 정도로 반역적이지만, 그는 당에 대한 비판과 경멸을 결코 버릴 수 없다.



놈들이 나를 총으로 쏘겠지 아무래도 좋아 목덜미를 쏠 거야

상관없어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놈들은 언제가 목덜미를 쏘지

아무래도 좋아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p.33-

당에 의해 사랑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지만, 윈스턴은 당의 눈을 피해 연인 줄리아를 만나고 그 사랑을 아슬아슬하게 지속한다. 그렇게 윈스턴은 줄리아와의 밀애로 사랑의 달콤함에 빠지게도 되지만 그 관계는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도 있지만, 서로 당의 이념애 반대하고 당이 인간의 말과 행동을 통제해도 마음만은 절대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서로 의견을 같이 한다.



“놈들은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없어요. 만약 당신이 인간성을 유지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무슨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해도 그들을 이긴 거예요.” - p.257~258

그렇게 윈스턴과 줄리아는 당의 전복을 꾀하면서 비밀스런 연애도 이어가지만, 그들은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토록 윈스턴이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된다.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은 자신의 행동을 감시했던 사상경찰이었던 것이다. 당에 의해 그의 반역 행위와 금지된 밀애조차 발각되어 그는 온갖 고문과 구타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의 정신도 개조하고 세뇌하여 결국에는 개인이 가진 고유한 정신을 말살해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를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를 다시 만드는 거야. 그에게서 모든 사악함과 환상을 불태우는 거야. 우린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저 외관상이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거라고. 죽이기 전에 그를 우리 일원으로 만드는 거지.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든 잘못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아무리 은밀하고 무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일세.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일탈도 허용할 수 없단 말이야.”

- p.389~390

인간의 정신을 개조해서 진심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 마치 그들은 인간의 정신조차도 마음대로 조작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면, 인간은 그 존엄성을 읽고 동물처럼 그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조지 오웰은 윈스톤의 고문과 그의 정신 개조 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네는 두 번 다시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네 안의 모든 것이 죽어 버릴 테니까. 자네는 두 번 다시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맛보거나 삶의 기쁨을 누리거나 웃거나 호기심을 느끼거나 용기를 낸다거나 정직성 같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넨 텅 빈 인간이 될 거야. 우린 자네를 쥐어짜서 속을 비울 테고, 그런 다음 우리 것으로 자네의 속을 채울 걸세.”

- p.392

그리고 그가 당의 이념에 반대하고 당을 비판하는 생각을 키워온 7년 동안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감시당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는 항복했던 것이다. 그것은 합의 사항이었다. 사실상 자신이 항복하기로 결심하기 훨씬 전에 이미 항복할 태세가 돼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다정부 안으로 끌려온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렇다. 그와 줄리아가 무력하게 서서 텔레스크린에서 나오는 쇳소리 섞인 명령을 들었던 바로 그 순간에도 그는 당의 권력에 맞서겠다는 자신의 시도가 얼마나 경솔하고 얄팍했던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7년 동안 사상경찰이 마치 확대경 아래 놓인 딱정벌레처럼 자신을 주시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한 모든 물리적 행동, 입 밖에 낸 모든 말 중에서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없었고, 생각의 흐름조차 그들이 추측하고 있었다.

- p.423

그리고 윈스턴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왜 자유가 구속이며 그가 어떻게 빅 브라더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지를 말이다.

총알이 그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말이다.



오래도록 바라던 총알이 그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아, 모질고도 부질없는 오해였다! 아, 저 애정 어린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유형의 삶을 살았다니!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p.457

3. 나가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다."

-조지 오웰이 죽기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 속에서 조지 오웰이 한 말-

세기적 대공황과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 당시,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부패한 사회주의를 비판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우리는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는지 지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현대 사회는 그 때와 비교해서 더 나아졌는가?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가? 과거 우리나라 박정희의 군사독재시대,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진 군부 정치 시대를 생각해 볼때, 이야기 속 빅 브라더의 독재 정치와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또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볼호해준다고 하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과 불평등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과 대선을 위한 정치권의 싸움 등 너무나 혼란스러운 느낌이다. 2년째 장기간 지속되고 갈수록 악화되는 코로나 시국과 그로 인해 빼앗긴 우리의 일상, 정치권의 비리와 음모 비방 등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가 많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책 「1984」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현대 사회 속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권력과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조지 오웰은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 이라고 말한다. 조지 오웰의 경고가 유난히 뼈아프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더이상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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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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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처럼 달콤하지만, 때론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랑의 양면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17년 만에 리커버판으로 나온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덕분에 17년 전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을 새롭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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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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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저/ 김난주 역

소담출판사/ 2021년 11월 10일

 

웨하스처럼 달콤하지만 웨하스 의자외 같은 사랑에 대하여



 


 

1. 들어가며

 

 

사랑은 무엇일까. 때론 사랑을 하면서도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의 종착점, 사랑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일상에 쫓겨, 육아에 쫓겨 그 사랑의 의미조차 제대로 느낄 시간도 없다는 느낄 때도 있는데, 오히려 사랑에 소홀할 때가 많은 데도 말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에쿠니 가오리는 이번 책 『웨하스 의자』에서도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두 남녀인 중년의 독신녀와 유부남과의 사랑을 사랑의 본질과 그로 인한 고독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곧 절망이고, 그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별뿐이다. 언뜻 보면 이해가지 않을 수 있고 고독을 느끼고 그 절망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2. 이야기  속으로

 

옛날에, 나는 어린아이였고, 어린아이들이 모두 그렇듯 절망에 빠져 있었다. 절망은 영원한 상태로, 그저 거기에 있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친하다.
오, 반가워.
절망은 때로 옛 친구를 찾듯 나를 만나러 온다. 잘 지냈어?
- p.10

 

절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은 본래 혼자이고 고독한 존재이기에 절망을 느끼는 것은 필연적인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사랑은 희망이고 행복이며, 내일에 대한 약속이기에 절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이 책 『웨하스 의자』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없는 한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인지도 모른다. 중년의 독신 여성인 그녀는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그 남자를 사랑해도 그녀의 사랑은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그 애인은 항상 그녀 곁에 머무를 수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하는 존재이며 그녀의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야한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엔 언제나 절망도 함께 있다. 마치 친구처럼, 사랑이 가버리면 그 자리를 절망이 차지해버릴 정도로 절망은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사랑을 '웨하스 의자'와 같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앞에 있지만-그리고 당연히 의자지만-절대 앉을 수 없다.

-p.72-73

 

웨하스 의자는 말 그대로 '웨하스'와 '의자' 가 합쳐진 웨하스로 만든 의자라는 뜻이다. 웨하스 과자로 어떻게 의자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의자에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런 의자가 존재한다고 해도 보기에는 예쁘고 달콤한 향이 나지만 그녀의 말처럼 절대로 앉을 수 없는 의자이다. 앉을 수 없는 의자는 의자가 가진 본질적 속성에 위배된다. 그리고 그런 의자는 곧 부서지고 부식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웨하스 의자의 속성과 그녀의 사랑의 모습이 닮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콤하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그 사랑을 내 것으로 소유할 수도 없고,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수가 없다. 결국 웨하스 의자처럼 그 사랑도 부서지고 부식되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언젠가는 끝을 맞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생각한다. 죽으면 이런 사랑과 절망과도 모두 안녕할 수 있고 평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하고 싶지는 않지만, 죽음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찾아오면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왜 자살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복잡하게 얽혔다가 풀리는가 하면 어지러울 정도로 방 안 공기를 휘젓는 교향곡을 들으면서, 나는 자신이 아주 홀가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죽음은 거의 과자 같은 가벼움으로 나를 유혹한다.

-p.118

 

그녀의 일상은 애인과 함께 하는 삶과 애인없이 혼자 지내는 삶으로 나뉘게 되고 그 삶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홍차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처럼 쓸모없는, 하지만 누구나 거기에 있기를 바라는 존재로 일상을 그저 살아낼 뿐이다. 일을 하고 점심 대신 허브차를 마시고 목욕을 하고 잠을 자고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녀에겐 의지하고 기댈 수 없는 부모님도 없고, 전화하고 가끔 만나는 여동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 외에는 사람들과 어떠한 인간관계도 맺지 않고 쓸쓸하고 고독하게 살아간다.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건 나 자신을 홍차 잔에 곁들인 각설탕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쓰일 일 없는 각설탕처럼.

-p.15

 

그런 쓸쓸하고 고독한 일상에 애인이 찾아오면 그녀의 일상에도 밝은 빛이 비친다. 애인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는 등 보통의 연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애인의 존재도, 애인의 사랑도 그녀의 근원적인 고독함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자신을, 애인 인생의 사랑방을 빌려 더부살이하는 사람처럼 느낀다. 그의 옵션으로, 그의 인생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 애인은 친절하지만, 친절하면 할수록 나는 자신이 가공의 존재인 것처럼, 그의 공상의 산물인 것처럼 느낀다.

-p.112

 

불쑥 외로워진다. 애인의 미소도 그 외로움을 치유해 주지 못한다. 외로움은 느닷없이 찾아와 입을 쩍 벌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마수에 걸려들어 꿀꺽 삼켜지고 만다.

-p.116

 

사랑하면 할수록 충족되지 못하고 더욱더 결핍과 고독감은 커지게 된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미로에 갇혀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마치 어린애가 부모의 보호와 사랑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야 안전함을 느끼듯, 그녀 또한 애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만 존재할 수 있다. 여전히 그녀는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 울타리 속에 갇혀있다. 

 

나의 인생은 때로는 아이의 그것처럼, 때로는 노인의 그것처럼 보인다. 절대 서른여덟 살 여자의 인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갇혀있다고 느낀다. 애인의 마음속에, 또는 아이인 내 머릿속에. 

-p.123

 

그래서 그녀는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녀가 어른이기를 주장하고 절망을 벗어던지고 혼자 우뚝서기 위해서는 애인과 헤어져야 하고 그 헤어짐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3. 나가며

 

 

'웨하스'라는 무르디무른 과자의 이미지처럼 허망함이나 가련함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마저 품고 자기를 긍정하는 강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도 넘어서서 말이에요.
-역자 김난주 -

 

이 책은 17년 전에 출간된 『웨하스 의자』의 개정판이다. 그동안 절판이 되어서 읽을 수가 없었는데 개정판이 나온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느끼는 쓸씀함과 외로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녀의 용기있는 도전과 선택에 뭔가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편안함과 안정을 찾은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의 외로움에 빠져 단숨에 읽어나갔고 그녀의 기쁨과 고독을 함께 느끼기도 했다. 비록 그녀의 사랑이 결말이 불확실하지만, 이제는 그녀 스스로 그 사랑을 잘 지켜나가고 그녀 자신을 찾을 것 같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녀의 말처럼, 사랑의 끝엔 절망이 있고 죽음이 있는 것일까.  사랑에 대한 관계를 재정립하고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알게 해주는 에쿠니 가오리 덕분에 나 또한 사랑을 보는 관점이 더 넓어진 것 같다. 변함없는 사랑은 없는 것일까. 

사랑은 하면서도 사랑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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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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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들의, 낀대들을 위한 80년대생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공감과 위로를 준다. 낀대들의 애환을 통해 과거의 나의 모습을 마주보게 된다.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 모두가 함게 공존하고 배려하며 사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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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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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당신은 꼰대입니까?

당신은 낀대입니까?

여기 낀대들의낀대들을 위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꼰대일까, 낀대일까? 요즘 아이들에게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일장 훈계와 잔소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  사용에 어려움이 없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에 이벤트 선물로 예스 이웃님들에게 보내는 선물을 포장하고, 내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쓰면서 새삼 행복해했다. 라떼는 말이야, 생일 선물과 함게 정성껏 생일 카드를 써서 주었었는데 지금은 카톡으로 생일 축하한다며 각종 다양한 이모티콘, 이모지들로 가득 찬 카톡이 그 생일 카드 대신이 되었다. 얼마 전에 선물과 함께 원고지 모양의 편지지에 정성껏 글씨를 쓴 한 이웃님의 손편지를 받았다. 이웃님들께 보낼 선물을 포장하고 편지를 쓰는 데 일주일이 걸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하셨다.

 

모든 것이 편해져 가는 요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쇼핑도, 대화도, 은행업무도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왜 나는 그 옛날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운 것일까. 이렇게 누군가에게 받는 손편지와 그들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책선물에 더 행복해지는 걸까. 그러고 보면 나도 낀대인 건가. 꼰대라고 하기엔 내가 그렇게 고리타분하진 않고 나름 열려 있는 것 같으니깐.

그래도 요즘 90년대 생들을 보면, 그들의 젊음과 생기, 활동성, 적극성 등이 부럽기도 하고, 그들의 너무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보면 '나 때는 저렇게 하지 않았는데' 라며 또 라떼를 부르짖게 된다.

그런데 라떼는 말이야~라고 함께 외칠 수 있는 동지같은 책을 만났다. 바로 김정훈 작가가 쓴 『낀대세이』이다. 이 책은 80년대 생인  저자가 7090 사이에 껴 버린 이 시대 80년대생들을 위한 에세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동지를 만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대변해주는 책이 있구나 하고 얼른 기쁜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마치 나의 이야기와 내 마음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2. 낀대 세상 속으로

 

낀대를 위한

낀대에 의한

낀대의 이야기

 

 

 

'낀대'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저자에 따르면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껴 버린 젊은 꼰대를 낀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말그대로 끼어있는 세대라는 의미이다. 삼십대인 그들은 소위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치이는, 양쪽 눈치 가 보느라 정신없는 '불쌍한 세대일 지 모른다. 신입도 아닌 애매한 세대,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 본캐와 부캐, 공교육과 사교육 등 이렇게 양 극단의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세대, 이쪽 저쪽 눈치 보느냐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일조차 잘 모르는 세대, 중간만 하는 게 최고라는 말을 듣고 자라 진짜 중간에 껴 버린 세대, 바로 그들이 80년대생이고 그들이 낀대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80년대생만 이런 변화와 생각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80년대생이 아닌 나도 낀대들의 생각과 현실상황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맞아, 맞아, 나도 그랬었어." "우리 땐 저랬어." 라고 말하며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릴 때 아련한 추억, 희미해져가는 추억이었는데, 저자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것을 생각했다고 하니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었다. 마치 '백 투더 퓨처' 처럼 나의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추억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젋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 시대  나를 직면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가볍지만 읽는 사람, 즉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과 힐링을 전해준다. 이 책은  ‘낀대, 왜냐하면―’, ‘낀대, 그리고,’, ‘낀대, 그래서?’, ‘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첫 번째 파트 '낀대, 왜냐하면' 에서는 80세대가 왜 낀대가 되었는지, '라떼는 말이야' 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두 번째 파트 '낀대 그리고' 에서는 낀대들이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각가지 에피소드와 그 속에 담긴 생각들과 공감이 담겨 있다. 세 번째 파트 '낀대, 그래서?에서는 그래서 탄생하게 된 낀대들의 이야기가, 마지막 파트에서는 이런 씁쓸함과 힘겨움에서도 꿋꿋히 살아온 낀대들의 인생과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어 부담갖지 말고 즐겁고 가볍게 읽어볼 수 있다.

 


3. 나가며

 

 

당신도 낀대였고 낀대이며 낀대일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낀대가 된다.

--- p.304, 「에필로그」 중에서

 

 

이 책은 시대에 역행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꼰대의 모습과 그로 인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80년대생들이 살았던 그 시대에 추억도, 그 시대 우리 청춘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의 나의 모습, 나의 생각, 나의 청춘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저자의 말대로 나는 낀대였고, 낀대이며 낀대일 것이다. 나는 이 낀대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 속에 우리가 살아온 삶, 우리의 삻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창 BTS 열풍이 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그들의 노래에 열광하고 카페를 가도, 길거리를 걸어도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유튜브 무한반복을 통해 하루종일 듣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들의 노래도 좋지만, 그 시절, 가사를 큰 소리로 따라부르면서, 노래방에서 18번 곡으로 불렀던 7080 노래들이 더 듣고 싶고 좋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도 어쩔 수 없는 낀대인 가 보다. 낀대이지만, 나는 이런 나의 모습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나이기 때문이다.

 

당신 또한 나와 같은 생각에 공감한다면,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낀대라면, 당신도 80년대생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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