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
카미유 드 안젤리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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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소녀의 성장 이야기 "

 

카미유 드 안젤리스 <본즈 앤 올>을 읽고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먹는 소녀가 피로 얼룩진 비참한 삶 속에서 자신과 닮은 소년을 만난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일까?' 처음에 이 책  『본즈 앤 올』 제목을 보았을 때 설마, 이 책이 식인자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식인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책을 읽으면 식인 행위를 빼고는 평범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대인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 끝까지 피로 빨갛게 물든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책  『본즈 앤 올』은 정말 식인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 즉 사람을 먹는 사람들 특히 소년과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여섯 살 소녀 매런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허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사람을 먹는 것은 살인죄보다 더 한 죄가 아닐까.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식인족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사람을 마치 음식 먹듯이 먹어치우는 식인 소녀라니 이거야말로 엽기적이고 싸이코틱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야기 전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녀가 식인 행위하는 것만 빼고는 평범한 십대 소녀의 성장 이야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 소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일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그런 비밀을 유일한 가족인 그 소녀의 엄마는 알지만, 모른 척 한다. 왜 그녀는 자신의 딸의 식인 행위를 모른 척하고 덮어주는 것일까. 그건 분명 잘못된 일인데도 한번도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잘못했다고, 사람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녀는 자신의 딸이지만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소녀의 곁을 떠난다. 아무리 딸인 식인자이지만, 딸인데 무책임하게 버릴 수도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매런의 엄마의 모습은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같은 엄마로서 이해하기가 좀 힘들기도 했다. 

 

소녀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에게조차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엄마조차 자신을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자신의 아빠는 식인자인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아빠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아빠의 고향이 미네소타주에 있다는 것만 알고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이킹을 하면서 그 곳을 향해 떠난다. 왠지 자신의 아빠도 어쩌면 소녀와 닮았기 때문에,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식인 행위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이 책 속에는 왜 그녀에게 사람에 대한 참기 힘든 허기를 느끼고 결국 사람을 먹을 수밖에 없는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마치 저자는 식인 행위 또한 취향이나 사람의 특성처럼 진술한다. 채식주의자처럼 '카니발니즘'을 취향의 문제로 다룬 점도 정말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식인자가 그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피로 얼룩진 불행한 그녀의 삶 속에서 소녀와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십대 소년 '리'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운명과도 같았고, 그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식인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성장하게 된다. 

 

“걱정 마.” 청년이 말했다. “네가 한 짓을 본 사람은 나뿐이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아직 아무도 그 직원의 차를 보지 못했어. 우린 무사해.”
‘우린 무사해.’ “혹시 너…….”
우리는 걸음을 멈췄고, 우두커니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맞아. 나도 그래.”
-p.142

 

아빠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소녀는 자신과 닮았고, 기꺼이 그녀와 그 길을 함께 하고자 하는 소년 '리'를 만난다. 매런은 리와 함께 미국 동부를 횡단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매런은 리와 함께 있으면 더이상 자신의 식인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리와 함께 있으면 매런은 안정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그 편안함이 리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미국 동부로 가는 여정 속에서 매런과 리는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매런은 자신의 아빠를 만나서 그녀의 정체성을 되찾게 될까. 그들의 여정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들이 어떤 결말을 향해갈지 자못 궁금하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티모시 살라메 배우도 출연한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된다.  

 

식인자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기묘하게 매혹적이었다. 여전히 식인 행위 자체는 협오스럽고 끔찍하지만, 그들이 식인자이긴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고 싶어한다는 그 평범한 깨달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협오스럽고 잔인한  소재를 가지고 성장 소설로 연결지은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구성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작품 속 매런의 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식인자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참 이상하긴 하지만, 역시 책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때론 거북하고 불편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식인 행위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그 행위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에 초점을 둔 것 같다. 그런 점을 유념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색다르고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2, 300페이지를 읽는 동안 보통 사람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고.
비록 그 보통 사람이 시간 여행을 하거나 외계인과 싸운다고 해도.
(…) 나는 책이 필요해. 내가 가진 건 책뿐이야.”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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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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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권력에 경고하는 정치풍자 소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 조지 오웰 정치풍자 소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인 조지 오웰에서 『1984』를 통해 전체주의에 다루면서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결국 어떻게 파멸되는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1984』는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이 책 『동물 농장』을 썼다고 한다. 1947년, 전체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를 통한 억압과 탄압이 행해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왜 조지 오웰이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하는 정치풍자 소설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동물 농장』은 이솝 우화의 전통을 살려 돼지, 말, 소, 양 등 농장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각 가축의 특징에 따라 우리 사회 계층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농장은 하나의 국가이며 그 농장에 사는 가축들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눌 수 있다. 지배계층으로는 전체주의적인 독재자이며 소련 공산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돼지 나폴레옹과 돼지 집단, 이 나폴레옹을 경호하고 잔인한 명령을 수행하는 개 집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피지배 계층은,우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하층 계급을 반영하는 말, 소, 양 집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이 가축들은 평등했었다. 그들에게는 '인간을 몰아내자' 는 합당하고 정당한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 아래, 그 가축들은 똘똘 뭉쳐서 결국 농장 주인인 존스씨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인간만 없다면, 농장에서의 삶은 편안하고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최소한 자신들은 인간의 노예가 아니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배층이 인간에서 돼지로 바뀌었을 뿐, 다른 가축들보다 더 똑똑한 돼지가 자연스럽게 가축 무리들을 이끌면서 리더가 되었다. 처음에 리더인 돼지와 나머지 같축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였다. 그들의 7계명 중 7번 사항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7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든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자, 혹은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가 동지다.

3. 동물은 누구든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동물은 누구든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동물은 누구든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동물끼리는 절대로 살해를 해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7계명은 마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모든 행동의 기준과 판단은 7계명에 의해서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농장 공동체가 욕심과 탐욕을 바탕으로 한 전체주의적 정치 방법이 도입되면서 돼지들에 의한 무단 독재 정치가 시작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처음에는 서로 똑같이 공정하게 배분되고 공급되던 식량이 나중에는  돼지들에게 유리하게 불공정하게 배분되었다. 7계명에서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했지만, 돼지들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이미 지배, 피지배 관계는 형성이 되고 부의 불균형에 의한 불공정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 것이다. 

 

돼지들의 주요 우두머리였던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의견 대립에서 불일치를 보이며 갈등 관계에 있다가 나중에 나폴레옹에 의한 스노우볼의 추방 이후 나폴레옹의 무단 독재 정치, 전체주의가 시작한다. 조지 오웰은 그런 돼지 나폴레옹의 모습을 통해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이나 독일의 히틀러 등을 풍자하고 전체주의의 허상을 폭로한다. 또한 불공정 소득재분배 과정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가 허구와 맹점을 드러내보인다. 
 

이 책 『동물 농장』의 질필 의도에 대해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허구의 소련 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일조를 하려는 의도로 『동물 농장』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런 저자의 고백과 『동물 농장』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얼마나 거짓되고, 이론과 현실이 불일치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뿐인 허울인지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 부분을 통해, 욕심을 부리게 되면 인간도 돼지도 그 모습이 똑같으며 탐욕과 욕심, 이기심, 오만함 등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이 모습은 탐욕으로 인한 것이며 그 욕심이 인간과 돼지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 뿐인 것이다.

 

"창문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지만, 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분간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p 190-

 

그 당시 전체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고, 폭로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는 시대 상황을 통해 볼 때 조지 오웰의 정치풍자 소설인 『동물 농장』은 당시 엄청난 반항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는 너무 강렬하다.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소련 공산주의에 진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 『동물 농장』을 읽으면서 어떤 정치가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요즘 러시아의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자행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전체주의의 공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책 속에서 조지 오웰이 던지는 메시지는 현재의 정치 상황을 점검하게 하고 올바른 정치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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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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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

 

베르나르 베르베르 <행성 1, 2 >를 읽고



"<고양이>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이 행성의 운명을 건 대결의 시작-

 

 

 『고양이 1,2』권부터 시작하여 『문명 1,2』권을 읽고 이번에 드디어  『행성 1,2』권을 거쳐 아쉽게도 <고양이>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고양이 바스테트의 활약과 모험이 무려 2018년 『고양이 1,2』권을 시작으로 2022년 『행성 1,2』을 마지막으로 4년 간 지속이 되어왔다. 무엇보다도 내용들이 이어져 있어서 <고양이 시리즈>를 완독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다음 책에서 고양이 바스테트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그런 기대감과 궁금함으로 고양이 시리즈가 하나하나 출간될 때마다 이유 불문하고 다 사서 읽곤 했다.

 

 

지금까지 인간은 이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처럼 지내왔다. 인간은 높은 지능과 뛰어난 능력 덕분에 다른 종보다 우월하게 인식되어 왔고 그 이유 때문에 다른 종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행성 1,2』권에서는 인간은 고양이보다, 쥐보다 더 하등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쥐가 번식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쥐가 사람보다 더 영리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제 3의 눈'을 장착한 쥐 티무르의 뛰어난 지능과 능력을 보기만 해도 쥐가 어디까지 영리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어떻게보면 고양이인 바스테트보다 쥐인 티무르의 능력이 더 뛰어나보이기도 한다. 이 내용을 보아 우리는 더이상 인간만이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저자는 티무르와 바스테트를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더이상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방심하다가는 언젠가 쥐나 고양이와 같은 다른 종들에게 그 주인 자리를, 지배자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티무르의 쥐떼 군단에 맞서서 고양이 바스테트가 고양이를 포함한 인간들의 집단을 구하게 된 방법은 무력 투쟁이나 폭력이 아닌 바로 소통이었다.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 행성 지구의 주인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현재 일어나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나 이상기후 현상 등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소통은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치료제입니다. 이에 반해 소통의 부재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죠. 어제 당신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걸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중략) 해결책은 이미 있었는데 내 부족한 상상력 때문에 그걸 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서 잠을 청했고, 꿈의 세계에서 깨달을 수 있었어요.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소통에 있다는 걸 말이에요.

- p.224, 『행성 2』권에서-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이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더이상 인간이 행성의 주인으로 군림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만약 『행성 1,2』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이 실제 현실세계에서도 말을 하고 그들의 의견을 나타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과거 쥐에 의한 페스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듯이,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자원 사용과 생태계 파괴가 계속된다면 쥐떼에 의해 인간 문명이 파괴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바스테트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더이상 이 마지막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지금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p.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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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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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리즈의 대단원 "

 

베르나르 베르베르 <행성 2 >를 읽고



"<고양이> 시리즈의 마지막 여정의 끝"

-이 지구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드디어 <고양이>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고양이 1,2』권부터 시작하여 『문명 1,2』권을 읽고 이번에 드디어  『행성 1,2』권을 거쳐 아쉽게도 <고양이> 시리즌 끝나게 된다.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고양이가 인간을 지배하면서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되고 먼훗날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작가의 메시지가 점점 구체화되면서 결국  『행성 2』권에 와서 그 모습을 갖춰가는 것 같다. 

 

『행성 1』권에서는 쥐떼를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여 미국 뉴욕에 도착한 고양이 바스테트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미국  뉴욕을 점령한 쥐떼들의 대결이 시작된다. 하지만, 쥐떼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번번히 싸움에서 지고 만다. 쥐떼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베스테트와 그의 무리들은 프리덤 타워로 쫓겨오게 된다.

하지만 그 타워마저도 안전하지 않다. 제 3의 눈을 가지게 된 스파이 폴의 정보에 따라 티무르가 이끄는 쥐군단이 타워를 공격할거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양이 영웅 바스테트는  쥐의 우두머리 '티무르'와 최후의 협상을 벌인다. 

 

인간과 고양이 등 바스테트를 따르는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죽음의 협상을 벌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동체의 대부분은 인간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서로의 사소한 잘못에도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논쟁만 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구안해내지 못하는 인간과는 달리 고양이 바스테트는 협상을 통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저자는 바스테트를 통해 대화를 통한 '소통'을 강조한다. 그 소통은 적인 쥐의 우두머리 티무르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야기 곳곳에는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인간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비판이 숨겨져 있다. 101게 부족들으로 나누어진 인간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기만 한다. 서로 합심해야 공동의 문제인 쥐떼의 공격을 해결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 인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고양이 바스테트는 티무르가 제안하는 테스트를 죽을 위기를 넘겨서 겨우 통과하고 티무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게 된다.

 

"소통은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치료제입니다. 이에 반해 소통의 부재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죠. 어제 당신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걸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중략) 해결책은 이미 있었는데 내 부족한 상상력 때문에 그걸 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서 잠을 청했고, 꿈의 세계에서 깨달을 수 있었어요.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소통에 있다는 걸 말이에요.

-p.224-

 

이야기 속에서 바스테트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 소통의 방법을 이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티무르의 쥐떼 군단에 쫓겨 보스턴의 다이내믹스 공장으로 도망가게 된다. 약속의 땅이며 안전한 보금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은 낙원이 아니었고. 그들은 또다시 티무르의 군단에게 쫓기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바스테트가 티무르의 군단을 무찌르는 방법으로 선택한 방법이 정말 놀랍고 획기적인 것 같다. 소통의 혼란이 오게 하는 바이러스를 사용하여 서로간에 소통의 어려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뇌의 브로카 영역에서 기능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쥐에게 주입하여 서로 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퍼' 라는 유전자 기술을 사용하여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전염을 시킨 후에 뇌의 기능 이상을 유발한다.  

 

과연 그들은 소통에 문제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공격과 모든 종들의 협력 작전으로 티무르의 쥐떼 군단을 물리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다가오는 쥐떼의 위협 속에서 이번에도 바스테트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구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지구 행성의 주인은 쥐일까? 고양이일까? 사람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고양이 바스테트가 총회 의장 후보로 나섰을 때 말한 공약 속에 있는 것 같다. 바스테트의 말을 통해 지금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지구 생태계 파괴, 이상기후 현상 같은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찾아보고자 한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지 않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조화 속에서 우주적 접속을 경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다른 생명체에 고통을 가하면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모두가 깨닫게 할 것입니다. 백과사전을 통해 저는 생명체 간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중략)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지금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p. 287-288


그리고 바스테트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할 때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 또한 지식을 통해 당면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드디어 <고양이> 시리즈가 끝났다. 그런데 왠지 고양이 바스테트의 이야기가 계속될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단원의 막이 내렸는데도 아직도 뭔가 더 남아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이> 시리즈를 읽는 동안 고양이 바스테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주변 길고야이를 보면 우리의 고양이 영웅 바스테트가 생각날 것 같다.  아쉬움을 남기며 우리의 영웅 '바스테트'와 작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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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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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갈증"

 

최미래 <녹색 갈증>을  읽고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선명한 갈증-

 

오직 나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와 그 속에서 존재하는 나와 닮은 듯 하지만 나와 반대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 최미래 작가의  『녹색 갈증』을 만났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주인공을 만나듯, 이 책의 화자인 '나'도 소설 속 세계를 통해 '윤조' 라는 소설의 주인공을 만난다. 분명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 마련인데, 이 책  『녹색 갈증』속에서 윤조는 화자인 '나'와 함께 존재한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가 사는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금 화자인 '나'와 '윤조'가 있는 공간이 소설 속 세계인지, 현실 세계인지 혼동이 되었다. 어떻게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존재가 현실 세계의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조'로 표상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나'란 존재는 오직 소설 속에 존재하는 '윤조'를 통해서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윤조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심한 갈증을 느낀다. 그런 갈증이 <빈뇨 감각>에서 잘 드러난다. 갈증을 느껴서 물을 마시지만 그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시니 요의를 느끼고 그래서 요의를 해결하고 나면 끝나지 않는 잔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그리고 그 심한 갈증은 나와 엄마, 언니와의 관계 속에서 온다. 명과 헤어지고 찾은 집에서 '나'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못하고 불안하고 짜증을 느낀다. 그런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물을 마신다. 마치 물을 마시면 목에 걸린 그럼 답답함이 내려가고 해소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마려웠던 느낌에 비해 소변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나는 다 눈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분명히 남아 있을 잔뇨를 기다렸다. 그동안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욕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세 사람이 욕망하는 건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p.97 「빈뇨 감각」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인 '녹색 갈증'은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녹색 갈증'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 책 『녹색 갈증』에서 말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에드워드 윌슨의 주장대로라면 자연과 관련된 공간이며 이 책 속 주인공이 주로 찾는 공간인 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산'은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연필을 굴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공간인 상상의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련된 인물들인 엄마, 명, 윤조 등도 가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공간이다. 

 

오직 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인 윤조, 윤조와 나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윤조'는 내가 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프롤로그>에서 나는 소설 속에 '윤조' 남겨두고 도망친다. 소설 속에서 어떤 결말도 짓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 속에 남겨두고 도망친 윤조가 다시 등장한다. 이제는 어린 모습의 윤조가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 윤조가 다시 등장한다. <뒷장으로부터>에는 어른이 되어 다시 나타난 윤조와 나의 엄마, 언니와의 만남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한 번도 '윤조'를 본 적이 없지만 나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며 윤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마치 윤조의 모습이 내가 닮고 싶은, 내가 바라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보석함'은 무슨 의미일까. <프롤로그>에서는 소설 속 세계 속에 윤조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보석함으로 등장하고, <뒷장으로부터>에서는 어른이 된 윤조가 내가 사는 세상으로 다시 올 수 있는 중간 매개체로 존재한다. 그 보석함으로부터 윤조가 다시 등장했으니깐 말이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빈 보석함, 오히려 비었기에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왠지 보석함이 화자인 내가 바라는 꿈, 희망, 녹색 갈증같은 세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재미없는 꿈을 꾸거나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해도 나는 습관처럼 보석함을 여닫게 될지도 몰랐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자꾸 나를 살고 싶게 하는지. 나비 모양으로 새겨진 자개는 볼 때마다 색과 빛이 달라졌고 보석함은 벽돌처럼 묵직해서 존재의 무게감이 확실했다. 온 힘을 실어 사람의 머리통을 가격한다면 강력한 무기로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기분에 따라 열리지 않을 때도 있으니 소중한 걸 보관하거나 끔찍한 것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일 것이며 어느 날은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입을 벌린 채 새로운 욕이나 이상한 이야기를 지껄일 수도 있겠다.

-p. 148-

 

저자는 작가답게 글쓰기를 통해 윤조를 만나고 자신의 갈증 또한 해소하려고 한다. 정말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글쓰기에는 나도 공감한다. 나 또한 글쓰기를 통해  책읽기에 대한 목마름과 끊임없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분명 쉽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읽으면서 작가의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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