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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시간과 언어를 중심으로 한 SF 단편집"
배명훈의 <미래과거시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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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SF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작가의 대표작이 될 것이다."
-배명훈 작가의 7년 만의 신작 SF 단편집-
미래 사회에서 언어는 어떻게 변할까. SNS의 발달과 사용으로 인해 우리의 언어 또한 변화를 겪었다. 빠른 시간에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습득해야하기 때문인지, 언어의 축약 현상, 우리말 각음절의 첫 자음만을 따서 사용, 의성어 및 의태어 사용, 이모티콘 사용, 불필요한 자음 첨가 등 많은 부분에서 언어가 변화하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말의 파괴 현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이런 용어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어느덧 일상어로 자리잡은 인터넷 언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 책 『미래과거시제』에서 배명훈 작가는 우리에게 시간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과학소설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견인해온 작가는 7년 만에 9편의 독창적인 SF 단편들을 이 책 『미래과거시제』 속에 모두 담았다. 그동안 SF 팬들과 일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배명훈 작가가 이 책에서 어떤 독특하고 재미있는 SF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이 책에 실린 9편의 독창적인 이야기들은 우리를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낯선 미래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이야기 속의 시간은 과거로 또는 미래로 흐른다. 또한 우리는 <수호곡선의 수요자>를 통해 심해도시 속 건설 현장으로 갈 수도 있고,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는 파열음이 사라진 어느 미래 시대의 대학교 격리 실습실로도 간다.
특히 <수호곡선의 수요자>에서는 공급곡선이 아닌 수요곡선을 따르며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를 하게 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수요로봇인 '마사로'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주로 공급적인 측면에서 로봇의 사용만 생각하는데, 수요적인 측면에서 로봇을 사용하면 어떨까. 로봇으로 인해 수요가 늘면 공급도 늘고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변신 로봇 큐비즘' 이라는 용어가 참으로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변신 로봇 큐비즘으로 그려진 고래상어 그림은 정말 로봇으로 변신이 가능한 것일까.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쓰여진 문장들이 처음에는 오타로 잘못 쓰여졌다고 착각했었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오타가 많지' 하며 의아해하면서 읽다가 제목과 잘못 쓰여진 글자들을 통해 글자들이 파열음이 없이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반대로 파열음을 넣어서 해독하면서 읽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 파열음이 없이 문장이 쓰여지니깐 무슨 외래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너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비말 차단이 중요시했고 그래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래서 작가는 비말이 발생하는 파열음을 우리 언어에서 제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파열음을 빼고 문장을 쓰니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역시 우리말 속에서 파열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된다.
표제작인 <미래과거시제>는 시간과 언어라는 요소를 잘 접목한 작품인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은 지금 과거-현재-미래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데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흐르는 세계가 가능할까. 그렇게 양방향으로 시간이 흐르는 세계에서 사용 가능한 시제는 어떤 것일까.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은경과 '미래에서 온 시제'를 사용하는 은신과의 만남 이야기가 흥미롭다. 미래에서 과거로 이동할 수 있기에 은신은 확정적으로 일어난 미래 일을 말할 때 '았/었' 대신에 '암/엄' 이라는 어미를 사용한다. 이 쓰임은 튀르키예 시제 연구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튀르키예 교수인 알트나이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시간과 언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임시 조종사>같은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도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오랜 시간이 걸려서 썼다고 하는데, 9편의 작품들 중 수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어렵게 로봇 조종술을 익혔지만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지내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수로 지내다 타국의 부름을 받고 떠나는 인물의 모험담을 판소리 형식으로 재미있게 엮었다. 판소리를 사용하여 이렇게 한 편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과 도전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외에도 <접하는 신들>, <인류의 대변자>, <홈, 어웨이>, <절반의 존재>, <알람이 울리면> 또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SF 이야기들이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 『미래과거시제』를 통해 우리는 언어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 시간과 언어라는 관점 속에서 바라본 미래의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와 만약의 세계 등 작가의 상상의 세계 속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며 즐거움을 느껴도 좋을 듯하다.
배명훈의 소설은 늘 읽는 이의 신경세포를 낱낱이 흩어놓았다가 재조립해서 끝내 익숙한 세상을 달리 감각하도록 만든다. 어쩜 이렇게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낭만적인 소설이 가능할까. 형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언어적 하드 SF에서부터, 소설 안팎의 세계를 뒤섞으며 현실 감각을 지워버리는 아름답고 슬픈 메타 SF까지, 한층 더 짜릿해진 실험으로 가득한 소설집.
- 김초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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