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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전3권 + 다이어리 1종 세트 (다이어리 3종 중 1종 랜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삶, 사랑, 비극-"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1~3세트>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314/pimg_7526911563341300.jpg)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
불후의 명작이며, 전 세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인 『안나 카레니나』 드디어 나도 불후의 명작이자 최고의 소설을 읽었다. 지금까지 몇 번 이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으로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에 소담출판사에 바이올렛 표지의 예쁜 옷을 입고 출간된 『안나 카레니나』세트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읽기가 수월했고 내용도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왔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책들과 내용을 비교한 결과, 이번에 출간된 소담 출판사책이 고어나 한자어 대신 쉬운 현대어로 쓰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3권으로 이루어진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높아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사랑과 이별 등 로맨스적 요소가 중심이라서 더욱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3권에 걸친 '안나 카레니나'라는 한 여성의 삶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선택,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위 말하면 그녀의 사랑과 선택을 '불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저자인 톨스토이또한 어느 누구도 안나에 대해 비판하고 정죄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맨 앞 표지에 로마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담아놓았다,
"복수는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로마서 12:19
누가 안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물론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이라는 신의 질서를 깨뜨린 안나의 불행한 삶을 보여주지만, 안나가 그 사랑에 행복해하고, 진정으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통해 그녀 또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은 한낱 여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사랑을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안나에게 찾아온 사랑은 운명이었고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안나의 연인인 브론스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감정일지 모른다. 그 사랑을 조절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안나는 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치 부부 사이의 불화를 중재하고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 것이다. 브론스키 또한 키티와 사랑에 빠졌고, 그래서 그녀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안나와 브론스키는 그들 곁에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모르는 존재였다. 하지만 안나가 기차역에서,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 예상했으랴.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안나가 그 사랑을 선택하기에는 그녀가 잃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페테르부르크의 고위 관리의 아내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사랑스런 아들의 어머니라는 역할도 세상의 비난과 경멸 등 그녀에게는 브론스키 그 사람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하지만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하게 된 후 안나는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브론스키의 말대로 안나가 그토록 싫어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 이라는 말에는 정말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사랑 속에는 앞으로 오게 될 안나의 운명까지도 담겨 있는 듯 느껴진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작은 손으로 재빨리 모피 코트의 호크에 걸린 소매의 레이스를 풀고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브론스키의 말을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나 또한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우정이 아니란 걸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내 삶에서 단 하나의 행복은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한 마디 말……, 그래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그녀는 속으로 천천히 반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레이스를 풀면서 덧붙였다. “내가 그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말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1권] p.320-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미 시작된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 그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국 사교계에 알려지고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안나는 결국 그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고 남편과 아들 곁을 떠나 브론스키와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결국은 안나에게 남은 선택은 이것 밖에는 없었으리라. 어쩌면 안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결말을 말이다. 그렇게 가족이 아닌, 안정된 생활과 귀족이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가 아닌 '사랑'만을 선택한 안나는 결국 모두를 버리고 떠난다. 사랑하는 그와 함께 말이다. 어쩌면 사랑의 도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사랑 또한 모래성과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안나는 몰랐을까. 그게 바로 사랑의 양면성인데 말이다.
이와 대조적인 사랑이 바로 레빈과 키티의 사랑이다. 2권에서는 레빈이 우여곡절 끝에 그가 꿈에도 그리던 키티와 드디어 결혼을 한다. 레빈과 키티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농촌 경영에 관심이 많고 농사 일에 최선을 다하는 레빈을 보며 키티 또한 농촌 생활을 적응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해 나간다. 레빈의 형이 건강이 나빠졌고 투병 생활 중 결국은 죽게 되고, 그런 형의 죽음에 레빈은 절망하지만, 그의 곁에 사랑하는 아내인 키티가 있어서 그는 형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슬픔도 이겨내고 더욱더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자신이 좀ㄷ더 강해지고 성숙해졌음을 깨닫게 된다.
형의 모습과 죽음의 접근은 레빈의 마음속에 형이 찾아왔던 그 가을 저녁에 자기를 사로잡았던 죽음의 불가해함과 동시에 죽음의 임박함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감정은 전보다 지금이 한층 더 강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불가피함이 더욱 두렵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가 가까이 있는 덕분에 이 감정도 그를 절망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는 죽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랑이 자신을 절망에서 구했고, 절망의 위협에서 이 사랑은 더욱 강하고 순결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 [2권], p. 578~579
레빈과 키티의 사랑은 안정적이고 편안해보인다. 물론 안나의 사랑처럼 불꽃같은 열정은 없지만, 천천히 타들어가는 모닥불처럼 그런 은근하고 꾸준한 사랑의 마음이 있고, 그 사랑은 그들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힘이 된다. 저자인 톨스토이는 안나의 사랑과 레빈의 사랑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랑은 레빈과 같은 사랑이지 않을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레빈이 그토록 꿈꾸었던 가정과 결혼생활을 이제 그는 키티와의 결혼으로 이루어었고, 이제 레빈의 삶은 완전해보인다. 레빈은 키티와의 사이에 아들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 그 행복으로 인해 그는 사람은 타인과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레빈은 똑바로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저 하늘이 둥근 천장이 아니고 무한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실눈을 뜨고 아무리 열심히 주시해도 둥글지 않고 유한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어. 그리고 무한한 공간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단단한 둥근 천장이 보이는 내가 당연히 옳아. 그건 내가 멀리 무한한 공간을 보려고 시선을 긴장하여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옳다는 거야.’
레빈은 이제 생각을 멈추고 무언가 자기들끼리 관심을 갖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신비스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행복을 믿기 두려웠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복받쳐 오르는 흐느낌을 삼키며 두 손으로 눈물이 가득 고인 두 눈을 닦았다.
-[3권], p.548
한편 외국으로 도피한 안나는 어떻게 될까. 3권에서 안나의 이야기와 비극적인 결말이 이어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 불꽃같이 활활 타올랐던 사랑은 결국 사그라들고 변하기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믿음과 신뢰는 비난, 불만, 잔소리로 이어지고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안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안나는 참 감성적이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이 자신의 의무나 역할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너무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안나가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된다. 항상 사랑은 사랑하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문제라서 우리가 그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인 톨스토이는 안나의 사랑과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스토리를 썼을까. 저자는 그 당시 귀족 사회와 위선적인 사교계를 풍자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속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나처럼 솔직한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저자인 톨스토이가 긍정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랑은 타인과 신을 위해 살아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레닌의 사랑인 것 같다. 안나의 삶과 레닌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완벽한 삶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레닌의 삶이 과연 완벽하고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에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톨스토이가 신앙에 일치하는 삶을 중요시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는 이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는 안나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초반에는 안나의 사랑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했으나, 레닌의 사랑과 그의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면서 안나의 사랑과 잘못된 선택을 비판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나는 비록 안나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 생각이 될 지 모르지만,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나의 사랑은 결코 용납되고 인정받을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안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썼을 당시인 1878년에는 이런 사랑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많은 비판을 받았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가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사회 속에 던진 시도는 대단하고 용기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그 당시 부유하고 학식있는 귀족의 위선적이고 공허한 삶을 풍자하고 인간 관계 속에 내재된 모순, 갈등, 사회적 부조리를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문학적,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불후의 명작이라는 명성과 세계적인 작가들의 찬사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나의 감명깊게 읽은 책 리스트 속에 이 책을 담아보게 되었다.
이제서라도 불후의 명작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