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필립 K. 딕 걸작선 10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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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다른 단편이나 장편을 다 읽어보질 않아서 모든 작품에 통용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필립 K.딕의 작품을 몇 편 정도 읽어봤다면 그가 개인과 세계 혹은 사회,집단과의 대결을 그리거나 그 대결 속에서 오해나 누명,혹은 추격을 사용하거나 그의 작품에 의식적으로 흐르는 서술체나 분위기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그의 작품들은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토탈리콜)>,<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블레이드 러너)>,<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영화화된 작품과 함께 다른 장,단편들까지 10여 편 정도 되는데,그들 대부분이 이러한 구성과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읽은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아마도 이런 류의 작품들 중에서 흥미로운 소재이긴 하지만 가장 허무하게 끝나는 결말을 보유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의식적으로 흐르는 서술체나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추격이나 누명 같은 부분도 나오긴 하지만 흐지부지한 결말과 잇기에는 너무 작은 구성이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다른 필립 K.딕의 작품들보다 읽기 쉬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그의 작품들은 위에 말한 의식적으로 흐르는 서술체나 분위기 때문에 난해한 작품들이 상당수 있다. <발리스> 같은 경우에는 소재부터 내용까지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고,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단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당히 읽기 쉬운 편에 속한다. 처음부터 사건이 펼쳐지고,흥미로운 내용이 펼쳐지지만 막판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 부분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줄거리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이자 TV방송 진행자인 주인공이 어느날 자신과 잠깐 사귀었던 여자로부터 습격을 당한 후 정신을 잃게 된다. 그러나 그가 한 싸구려 모텔에서 깨어나 상황을 살펴보니 자신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본인이 스타인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주인공은 위조된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에도 쫓기는 신세가 되고,그 상황에서 왜 자신에 대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러던 중 경찰에 잡히게 되지만 풀려나고,풀려나오는 길에 경찰 고위 간부의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의 집에서 갑자기 그녀가 자살을 하게 되고,이에 분개한 간부는 용의자로 그를 지목하여 누명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엄청나게 허무해지는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필립 K.딕의 작품을 읽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자신에 대한 기억이나 존재들이 잊혀지거나 삭제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누군가에 쫓기거나 혹은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면서 숨가쁘게 빠른 구성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다른 SF소설에 비해서 비교적 전개가 빠르고 큰 과학적 이해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필립 K.딕의 삶을 모른 채 작품을 읽게 된다거나 조금은 난해한 작품부터 먼저 읽게 된다면 빠르게 그의 작품을 지루해할 수도 있는 면도 가지고 있다.

 

이미 나는 이 작품으로 필립 K.딕의 첫 작품을 만나지 않아 그의 또다른 면을 느낄 수 있어서 막판 허무한 결말이라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이 작품으로 처음 필립 K.딕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의 기대치에 비해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필립 K.딕의 작품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 대신 비교적 읽기 쉬운 단편집이나 이전에 영화화된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유빅>,<높은 성의 사내> 같은 장편소설을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201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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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4 :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리플리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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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1권에 이어 곧바로 4권으로 넘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처음부터 리플리와 새로운 캐릭터 프랭크가 등장하기 때문도 그랬고,이번 4권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은 1권에서 가졌던 느낌과는 약간 달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왜 프랭크가 리플리의 집에 있게 되었는지,그리고 왜 리플리가 프랭크를 도와주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리플리와 프랭크에게 비슷한 구석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4권은 하이스미스의 다른 리플리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리플리의 내면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 시리즈에서 리플리의 잔혹한 면이 거짓된 다른 면과 함께 구별되어서 드러났다면,이번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리플리의 내면 대신 프랭크의 내면이 드러나고,그 내면을 리플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프랭크가 리플리의 프랑스 집으로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프랭크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16살 소년이었고,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리플리는 프랭크의 모습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프랭크는 자신의 아버지를 벼랑에서 밀어 살해했고 그 사건이 사고사로 처리되지만 이후 집을 떠나게 되었고 그 사건이 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불안해진다. 그렇게 해서 리플리의 집에 오게 된 프랭크는 어느덧 그와 가까워지고 아내인 엘로이즈와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한마디로 리플리와 또다른 리플리와의 만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프랭크가 베를린에서 납치되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후 프랭크를 구하긴 하지만,그들의 최후는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왜 굳이 프랭크를 베를린으로 데리고 가면서 납치되는 상황까지 만들었을까?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독일이 당시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진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독과 동독이 경제적으로나 다른 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작품에서 리플리와 프랭크의 차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리플리는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지만 피해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되어있고,반대로 프랭크는 도피 중인 신세인 것이다. 아마도 베를린이 등장한 것도 그 상징적인 표현을 위해 설정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게 아닌 가 생각한다.

 

2,3권을 읽지 못해 리플리가 이후에 어떠한 행동들이나 사건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이 작품만 봐서는 리플리의 행동에 어느 정도 변화를 일으킨 건 분명해 보이는 것 같다. 리플리가 프랭크를 도와주는 부분은 전작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 나도 그랬다. 뻔뻔하게 경찰,동료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봐 살인까지 저지르고 태연히 남의 돈을 얻어 부자로 사는 행동은 정말로 나쁘게 보이지만 이 작품을 먼저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또다른 단면을 가지고 있는 리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부분 때문에 과연 올해 나올 마지막 5편에서 리플리의 결말이 어떻게 나올 지 정말로 궁금하다.

 

20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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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증언 2
존 카첸바크 지음, 김진석 옮김 / 뿔(웅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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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저널>의 기자 매슈 코워트는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흑인 죄수 로버트 얼 퍼거슨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그가 보낸 편지는 자신은 플로리다 주에서 일어난 열한 살 소녀 조니 슈라이버의 살인범이 아니며 인종차별과 형식적인 재판으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자신이 보는 눈 앞에서 흑인이 백인을 살해한 장면을 본 이후 트라우마가 있었던 코워트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범인인 연쇄살인범 블레어 설리번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 그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고 이후 퍼거슨의 무죄를 밝혀내지만,블레어 설리번이 죽은 후 그의 요청으로 찾아갔던 집에서 그의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그제서야 코워트는 설리번이 자신에게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처음에 볼 때는 한정된 등장인물과 약간은 평면적인 구성 때문에 쉽게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전에 내가 존 카첸버크의 작품 중 읽었던 것이 <하트의 전쟁>이었는데,언뜻 보기에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누명을 쓴 주인공이라든가 재판의 맹점을 부각시킨다는 것과,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췄다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에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단번에 바꿔버리게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내 생각을 바꿔버렸다. 물론 1,2권으로 굳이 나눠야 했냐는 의문은 들었다. 대체적인 구성을 보면 이미 1권에서 연쇄살인범 블레어 설리번이 사형당하기 직전 진실을 밝히고,또한 로버트 얼 퍼거슨이 무죄로 풀려나면서부터 펼쳐지는 2권의 내용은 1권에 비하면 겉돌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액션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2권은 그야말로 대치 상황과 탐문,조사과정에서 비교적 일반화된 묘사에만 그치고 있다.

 

1,2권의 편차는 컸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나름대로의 재미를 갖추고 있는데,주인공 매슈 코워트,로버트 얼 퍼거슨보다 더 빛났던 블레어 설리번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등장은 비교적 작위적인 편이었지만,그 우연인 등장 이후부터 그의 역할은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약 이 작품에 그가 없었더라면 상당히 심심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존 카첸버크는 형사의 인종차별적인 조사행태라든가 법원,검사의 형식적인 행동 등을 비판하고 있는데,매슈 코워트가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저 방청석에 앉아서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은 아마도 그런 부분들을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존 카첸바크는 전에 읽은 <하트의 전쟁>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캐릭터와 적절한 상황을 잘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것 같다. 만약에 블레어 설리번이 1권에서 죽지 않고 2권까지 등장했더라면 좀 더 많은 스릴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2권의 마무리는 더 아쉬웠다. 2권에서 형사들과 코워트가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어딘가 모르게 급하게 마무리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이 작품은 이후 숀 코네리 주연의 <숀 코네리의 함정>이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원작에서 기자였던 주인공이 숀 코네리가 맡은 대학 교수로 바뀌면서 원작에 비해 심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악역으로 나온 에드 해리스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고 하니,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보고싶다. 이번 작품까지 그의 작품 두 편을 읽었는데,스릴에 있어서 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의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이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제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애널리스트>도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볼 것이다.

 

20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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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타노 쇼고 지음, 한희선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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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긴 집의 살인>부터 우타노 쇼고는 이후 나온 <흰 집의 살인>,<움직이는 집의 살인>과 이번 단편집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밀실살인게임> 시리즈 등 집을 소재로 한 밀실 트릭을 자주 발표했다. 이 중 아직 읽어보지 못한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를 제외하고 좋았던 작품은 <흰 집의 살인> 정도였다. <긴 집의 살인>은 데뷔작이어서 그렇다 치지만 <움직이는 집의 살인>에서는 움직이는 집에 대한 구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잘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읽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역시 수록작 다섯 편 모두 밀실과 관련있는 작품이어서 왠지 모르게 비슷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밀실은 나오지만 전혀 색다른 작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집의 살인 시리즈는 아니다. 그저 집을 소재로 관련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또 그 살인사건 이후에 또다른 반전이 작품마다 펼쳐지는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그의 전작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아주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매 작품 마지막에 펼쳐지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나도 살인사건이 끝난 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가 마지막 반전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아버렸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을 다 소개할 순 없겠지만 그 중 기억에 남았던 작품을 꼽는다면 두번째 수록작인 <집 지키는 사람>과 마지막 작품인 <거주지 불명>을 꼽고 싶다. 두 작품 모두 밀실 트릭이 나오지만 마지막에 강렬한 반전 하나 때문에 아주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었다. 30년 된 목조 건물 주택에서 주부의 시체가 발견되고 질식사로 밝혀지지만 남편은 알리바이가 있었고 모든 문이 안에서 잠긴 완벽한 밀실 상태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완벽한 트릭과 함께 오래전 납치되었다고 알려진 동생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좋았지만 여기에 뽑은 작품들에 비해 그 구성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우타노 쇼고의 이름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 모두 평작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우타노 쇼고의 집의 살인 시리즈를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약간의 실망도 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후 나온 여러 작품들에 대한 입소문을 들으면서 그동안 그의 작품이 엄청나게 발전했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읽은 그의 첫 단편집이었지만,트릭이라든가 막판 허를 찌르는 구성은 왠만한 추리작가도 해내지 못할 만큼 절묘했다. 또한 진지한 듯 하면서도 가벼워 보이는 듯한 내용은 큰 무리 없이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밀실 트릭하면 일본에서 가장 떠오르는 작가가 우타노 쇼고가 될 것 같다.

 

20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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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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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벼운 묘사로 시작한다. 한 형제 부부가 저녁 식사를 위해 고급 레스토랑에 모인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세르게-바베테 부부와 세르게의 동생 파울-끌레르가 그들이다. 그러나 가벼운 저녁 식사와는 달리 이들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들만이 아는 비밀,바로 자신의 아들들인 동갑내기 형제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노숙자를 죽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이 CCTV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 일은 아직까지 이들 형제만 알고 있다.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질 수는 없는 법인데,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작품 자체를 떠나서 일단 줄거리부터가 끌리는 작품이다. 만약 내 아들이 살인을 했다면 부모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무조건 감싸줘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자수를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직하게 하나의 선택만으로 밀고 가고 있다. 물론 작품 속 주인공들의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씁쓸한 선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작품 처음이 평범하게 시작하다가 중반 이후부터 급격하게 빨라지는 전개에 왠지 발라드 분위기에 댄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분위기랄까?

 

작가가 이런 구성을 취한 것은 분명하게 의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초반에는 여느 부모와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중반 이후의 그들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라고 해도 그들의 입장에 따라 착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모습은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읽는 내내 씁쓸했다. 대화 부분이 많이 나오지 않고 대부분 서술로만 작품을 끌어가고 있는 것도 그들의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작품들에서 중요한 점은 과연 결말을 어떻게 내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의 결말은 그리 시원하지 않다. 결론을 내긴 하는데,마땅하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었다. 뭔가 속이 뻥 뚫린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작품 구성 자체가 일부러 이렇게 되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위에서도 비슷하게 말했지만 처음엔 산뜻했다가 중반부에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마지막에 결국 탈이 난 것 같은 저녁식사를 한 기분이었다. 

 

결국 작품에서 두 형제의 아들인 미헬과 릭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대신 희생자로 그들의 흑인 입양아 베아우만 사라지게 되는데,조금이나마 결말이 났다면 책을 보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에는 가볍게 봤다가 다 읽은 후에 그런 생각이 후회가 들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더라도 잘못을 했다면 혼을 내야 하는 게 정상적인 부모 아니겠는가? 이 작품을 보면서 최근 중국에서 있었던 고위층 자제의 뺑소니 사건이나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모 사건이 생각났다. 다만,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지고 스릴러적인 장르에도 불구하고 큰 느낌 없이 흘러가고 있는 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작품의 여운은 크게 남았다. 아마도 그건 우리같은 사람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마음 속에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0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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