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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분 진짜 대단한 분이다. 아내를 아내가 아닌 여전히 '애인'이라 칭하고 각자를 집에서 거주하며 모든것을 나누는 가족이기에 막 태어난 아기까지 셋을 '집사람'이라 부른다. 태어난 아이의 모든 것이 너무 예쁘고 신기해 친구에게 자랑을 했더니 친구가 “뭐야 너도 맘충이냐? 애 엄마들처럼 브런치라도 먹으러 갈까?” (P.236)하기에 그는 어떻게 사회속에선 여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며 가족의 구성원에게 그렇게 부를수 있는지 충격을 먹어 얼어붙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굳어져 20년이 넘게 강제 주입 당하며 살아온 남성으로서의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사소하고도 깊이 여자라는 존재들에게 폭력을 주기적으로 당연시 여기며 행해 왔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그를 "함께 살 수있게 도와준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얘기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이성애–비장애인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해야 했던 내 안의 수많은 타자들(여성, LGBTQ,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게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계집애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저질렀던 혐오의 폭력을 멈추게 했다.'라고 한다(P.266) 그는 그렇게 아이와 시각장애를 가진 아내이자 ''집사람이며 애인''을 보며 다짐한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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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춤추듯, 반복하며, 실패하며, 조금씩, 앞으로, 한발씩, 그렇게. 페미니즘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세계의 이름이 아니다. 물음과 시도와 행위 속에서 늘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언제나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라는 이 질문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오류를 끌어안은 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희망했던 김선우 시인의 문장에 기대어 정체성으로서의 격렬한 페미니스트라기보다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열렬히 응답하는 사람으로서의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고.
..그렇게 당당히 페미니스트 입니다. 라고 말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아이가 맞이할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성별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예쁜 무지개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또한 나 역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써 누구보다 작가님의 지인 같은 심정으로 한없이 기쁘게 책을 읽었고 이 부부를 깊이 응원하며 너무 부럽기 그지 없었다. 나도 이런 사람 만나고 싶다.
오늘부터라도 기도를 해봐야겠네...?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