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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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접하는 신선한 책이다. 성장, 로맨스, 미스터리, 법정 스릴러 등의 '황금배합'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 탄생했다. 허나 고전적인 스토리 텔링이 주는 우직한 맛이 있어 딱히 낯설지도 않다. 이에 시대를 비판하는 화두들까지 드러나 있다. 인종과 계급간의 갈등,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방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생태계 속 인간의 위치 등. 대체 이 책의 정체가 무언가 싶다.


일흔 평생 야생 동물을 연구해온 과학자가 펴낸 첫 소설이다. 생물 다양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습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지만, 생태학적 관점보다는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를 두고 썼기에 문학적인 매력이 지식 뽐내기에 뒤쳐지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기를 '외로움'은 인간 본성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적 정치적 불의의 소산이라 한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급을 향한 차별과 편견을 지적하는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사회에 쉽게 속하지 못하는 어린 유색인 소녀 '카야'는, 육지도 바다도 아닌 그 사이 습지에서 홀로 살아간다. 조용히 침묵하지만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습지를 꼭 닮은 소녀. 인간의 무리에 들어가기 보다 습지의 한 생물이 되기로 선택한 카야는 뭍에서 밀려오는 인연으로 사랑을 깨치고, 물로부터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덕분에 카야의 삶 전반에 짙게 깔린 외로움이 마냥 우울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살아남는 본능이 생명체의 DNA에 새겨져 있듯, 카야는 소외와 차별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한다. 살아남고 더 강인해져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을 피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본인에게 돌리는 모습은 내게 많은 응원과 평온함마저 준다.


성장 드라마와 법정 스릴러의 조화, 소외와 차별에 대한 지적, 클래식한 읽는 재미. 여러 측면에서 <앵무새 죽이기>가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독성, 흥미진진함, 감정의 동요, 이야기의 짜임과 마무리 등 많은 측면에서 더욱 풍부함을 느낀다. 감동 가득 찬 가슴 속에 습지의 매혹적인 풍광이 깊게 새겨진 듯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만끽할 카야의 영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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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안전가옥 앤솔로지 2
시아란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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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에 이은 안전가옥의 두 번째 앤솔로지 시리즈는 '대멸종'이라는 주제로 뭉쳤다. 누가 듣더라도 재앙을 연상케하는 '멸종'이라는 단어 앞에 커다란 뜻을 지닌 수식어가 붙어 종지부를 찍는 느낌이 든다. 어찌보면 하나의 결말을 예고하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5개의 단편은 각각이 너무 새롭고 다채로워 시리즈로 묶어 놓지 않았다면 감히 연결짓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것이 여러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은 단편집의 매력이지 않을까.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 시아란>

공학박사다운 많은 천체물리학적 배경지식에, 공학박사의 것이라기엔 놀라운 인류학적, 문화학적인 지식들이 가미되어 정말 독특한 판타지가 탄생했다. 대멸종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앞세워 '저승'에서 이뤄지는 대책회의를 이야기한 것인데, 쇼킹한 컨셉과 뛰어난 완성도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으뜸이었다고 생각되는 이 작품은 후에 장편으로 재탄생하길 바라본다. 분명 베르나르의 <타나타노트>를 견제할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 심너울>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는 인간이 신이다. 책이라든지 게임이라든지. 그렇다면 우리를 만든, 소위 조물주에게도 우리네 세상은 게임 같은 것일까. 인간이 게임을 폐쇄해버리면 게임 속 세상은 대멸종을 맞이하는 법,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상상에 프로그램 코딩이라는 기술을 접목시킨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선택의 아이 - 범유진>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다룬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설화에 인류의 기원을 두고 인간과 돌고래가 대화하는 판타지이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인간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그런 현실에 근접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판타지가 가슴을 뭉클케 한다.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 해도연>

지구가 하나의 인격체가 된 이야기. 지구가 멸망하면 우리에게는 대멸종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우주 속 한 행성의 죽음일 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몸 속에 기생하는 온갖 생명체들에게는 대멸종이듯이. 이런 멋진 컨셉에도 반했지만 이 판타지의 백미는 지구 멸망을 다시 인류문명의 기원으로 가져온 부분이 아닐까. 베르나르의 <파피용>을 읽고 박수치며 전율했듯이 또 한 번 박수를 친다.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 - 강유리>

대멸종이라는 주제와 판타지라는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다. 옛적에 용이 날아다니던 정통 판타지 같은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공감력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멸망을 눈 앞에 둔 인물들의 절망적인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첫 작품에서 마지막 작품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개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판타지를 매우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그의 작품은 유일무이한 그의 천재성에서 비롯된다 생각했건만, 국내에서 그에 버금가는 판타지를 5개나 만날 수 있다니 이는 행운이고 '안전가옥' 출판사의 공모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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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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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추리물


클래식 추리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클래식한 구상에, 클래식한 등장인물, 클래식한 전개, 클래식한 로맨스, 클래식한 반전과 결말까지.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이나 깜짝 놀랄만한 복선과 반전에 박수 칠 일은 전혀 없다. 하지만 온통 뻔한 것들 투성이가 모여 신기하게도 좋은 완성도를 보인다. 화려한 무늬는 없더라도 정성들여 잘 짜여진 린넨을 보는 느낌이랄까.


적어도 내게는 생소한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시리즈의 향수 또한 불러일으킨다. 일단 이들의 추리물에 발을 들여놓고 나면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작가가 짜 놓은 판에, 천재적인 탐정들에게, 이리저리 열심히 휘둘리는 재미만 느끼면 된다.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님을 먼저 밝히고, 소위 말하는 '병맛 만화'에 사람들이 피식거리면서도 계속 찾게 되는 그런 매력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코난 도일'이나 '에거사 크리스티' 같은 작품들을 접하고 자란 이들에겐 반가울만한 작품이다.


천재성을 보이는 사립탐정 탈링과 조수 링추의 콤비, 이들보다 능력은 조금 부족하나 물심양면 돕는 런던경찰국의 화이트사이드. 셜록과 왓슨,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조합만큼이나 합이 잘 맞는 이들이다. 꽤나 긴 이야기임에도 얽힘없이 술술 잘 풀려나가 시원스럽다. 묘한 유쾌함을 주는 추리물, 스릴러와 공생하기 이전의 본연의 추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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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모험 1 : 소비에트에 간 땡땡 - 개정판 땡땡의 모험 1
에르제 글 그림, 류진현 외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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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벨기에 작가 '에르제'에 의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될 <땡땡의 모험>이 탄생하는데, 이는 그 첫 작품이다. "소년 20세기"의 기자 땡땡과 그의 충견 밀루의 첫 모험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USSR, 소련)을 향했다. 인디아나 존스가 모티브를 얻었다고도 하는 이 땡땡과 밀루의 콤비는 오히려 형사 가제트와 강아지 브레인 콤비에 가까워 보인다. 눈치코치 없이 앞서나가는 땡땡의 모험심과 그런 주인을 뜯어 말리고 뒷수습하기에 바쁜 밀루.


당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땠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과연 에르제는 소련에 관한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당시 소련에 대한 세상의 인식만 반영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를 수 없을만큼 만화의 내용 자체가 많지 않다. 널찍한 컷 안에 시원시원하게 커다란 캐릭터들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최소한 나는 잘 모르겠다. 대외적으로 선전하던 사회주의 체제의 이면에 감춰진 폐해? 공공연연하게 자행되던 소련 비밀경찰들의 만행? 글쎄, 이런 것들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한 컷 만평이 더 많은 바를 시사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 시대에 평가되는 것처럼,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한 명작'이라는 타이틀에 갇히지 말고 바라봐보자. 끊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에 지친 그 시절 유럽인들에게 소소한 위로거리였을 것이다. 만화가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당시로선 이 정도의 시사성을 띈 만화만으로도 신선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지식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던 그 시대에는, 땡땡의 허무맹랑한 모험 이야기가 마냥 어이없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한 세기 전의 유물로서, 선사시대 벽화처럼 역사의 한 기록으로서 소장가치는 충분하지만, 대단한 학습만화라 기대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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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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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닥불 같은 것


강도 높은 긴장감을 주는 소설이다. 충분한 스릴에 전율했고, 완벽한 퍼즐에 감탄했으며, 가슴을 후벼파는 작가의 글솜씨에 반했다. 앞선 작품 몇 개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는, 신인 작가다운 소개글이 이제보니 우스운 겸손이었구나. 속도감 있는 사건의 전개가 주는 스릴 외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거지를 표현하는 작가의 글 자체가 주는 짜릿함이 참 마음에 든다.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에 조심스레 견주어 본다.


방화범이 박탈해간 인생, 결국 사회로부터 떨어져 '쓰레기'로서 살아가는 남자. 하지만 한 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되찾을 수 있었던 인간의 자격. 주인공은 아마 모닥불에서 나와 연기 속으로 흩어진 재가 되었었나 보다. 연기 속에서 끊이없이 허우적대 결국 다시 불 속에 들어와 질 좋은 숯이 된건지도 모르겠다. 불 앞에 놓인 마른 장작보다 훨씬 더 강고한 숯. 영원히 장작을 태울 것만 같던 화려한 불은 결국 꺼지고 말이다.


선과 악의 구도를 두루뭉실하게 하여 반전을 꾀하는 이야기와 달리, 명확하다. 뜬금없는 배신도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랄 것도 없이 명확하다. 이 명확함이 통쾌한 스릴러를 만들었다. 완성도 높은 끝맺음이 소름을 돋게 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목 안을 묵직하게 하던 불씨를 아름답게 발화시킨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맨 앞 표지의 제목에 있는 불에 데인 듯 일렁이는 감촉을 발견한다. 읽는 내내 화마에 떨었을 독자에게 작가가 주는 깜찍한 이벤트인가 보다. 센스 만점이다. 소설을 읽고나서 영화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좀처럼 갖지 않는 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다. 영화도 흥행하여 작가에게 힘을 주고, 작가는 또 힘내서 다음 작품을 내주고, 나는 기쁠테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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