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신영 지음 / 솔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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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 돌아보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유럽의 역사, 그 중심지에 위치한 발칸 반도.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장소이면서 종전 후에도 쉽게 차가워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 역사를 다룬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쟁과 예술의 관한 것들이다. 아마 발칸 반도를 둘러싼 중유럽, 동유럽 국가들의 역사는 근현대에도 긴박하게 새로 쓰여지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국내에서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크로아티아 등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할 무렵, 그 역사의 민낯을 소설로 재구성한 이 책이 발간되었다 한다. 두브로브니크를 처음 접하지만 유고슬라비아의 시끄러웠던 역사는 항상 궁금했기에 책을 펼쳐 들었다.

로마 전성기에서부터 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던 발칸 반도. 역사의 흔적이 아직 채 식지 않은 이 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 이들의 이야기와 여정으로 책을 엮었다. 법대를 졸업하여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장을 역임한 남자 주인공은 아마 작가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이리라. 이 남자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주인공에게 젠틀하게 역사 강의를 하는 식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지식과 메시지가 너무 많았을까. 때문에 과하게 친절해졌다. 마치 드라마에서 수화기 너머의 이야기를 시청자가 들을 수 있도록 입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은 기분? TV 방송 <서프라이즈> 배우들의 재연을 보는 듯하다. 굉장히 흥미있는 이야기를 재구성이 아닌 재연에서 멈춘, 딱 그 컨셉. 스토리가 빈약하거나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한 것이 절대 아니라, 컨셉이 그러할 뿐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로서의 면모는 실망스러우나, 메시지 전달 면에서는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기억에도 잘 남는 책이 된 것 같다.

어린 초등학생 시절, TV 에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관한 소식을 자주 접했다. 내가 사는 땅에서 불과 몇 십년 전에 일어난 전쟁보다 더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전쟁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내전의 뜻을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다. 종교와 민족을 앞세워 이념이라는 허울로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인간들에게, 그 지도자들에게 일갈하는 작가의 따끔한 말본새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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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홀릭 1 -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은 몬스터
에밀 페리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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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몬스터들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더라도, 만화가 더 이상 어린이들만의 놀이가 아니라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다. 완성도 높은 세계관 속에서 탄탄한 스토리, 개성 있는 그림체가 그래픽 노블의 특징이라면, 소위 영화로 만들어지는 만화들,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등이 대표적일 수 있겠다. <<몬스터 홀릭>>은 '성인용' 그래픽 노블이다. 잔혹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겨우 얇은 여과지 한 장만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더해 찡그리며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어른들의 어두침침한 눈마저 필요한 작품이다.


캐네디 대통령의 저격, 마티 루터 킹의 암살이 발생했던, 유색 인종이 핍박 받던 1960년대 미국이 이야기의 주 무대이나, 거슬러서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 홀로코스트 사건까지 실재한 역사를 큰 배경으로 삼는다. 주인공 캐런은 맥시코인과 미국 원주민의 혼혈아로서 스스로를 괴물로 그리고 진짜 괴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괴짜 소녀로 묘사된다. 정의로운 인간은 죽임을 당하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녀의 어린 마음이 작품 전체에 베어 있다. 씁쓸하고 안타깝다.


주인공 주변에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고, 소녀가 이를 해결하려 하면서 미스터리 추리물의 성격을 띠는가 했으나, 글쎄다. 난해하다. 주변의 많은 것들을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살짝 비킴으로써 은유와 암시가 난무한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고, 반대로면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노블'로써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픽'의 측면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연습장에 끄적거린 데생의 컨셉을 갖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은 어느 건물 벽의 멋들어진 그래피티와 옛 유명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그 사이 어디쯤이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특히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내 그림들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점은 이 작품 중 압권이다.


미스터리, 추리, 호러, 그래픽 노블 등 다양한 선전문구가 붙었던 책인만큼 한두 가지로 규정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또한 어떤 한가지를 기대하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독창적인 개성과 매력은 존재감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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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황영미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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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작가가 1992년 등단한 작품부터 올해에 들어 오랜만에 내놓은 작품까지 8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다. 20년이 훌쩍 넘은 세월 동안의 작품들임에도 단편들 사이에 통일감이 확실하다. 이렇게 어떤 한 가지라도 같은 맥락이 있는 작품들을 한데 모았을 때 좋은 단편집이 탄생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책도 그렇다. 


단편들이 모두 산문과 소설 사이 그 어디쯤엔가 서 있다. 소설인 줄 알고 읽다가 산문인가 싶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한다. 소설의 구성을 보이나, 에피소드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 성찰 등에 대한 묘사가 첨예하기에 산문 같기도 하는 듯하다. 8개의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갈등을 터뜨리지 않고 끌어안고 있다. 그런 채 주변을 탐문하며 각자만의 해결을 본다. 조용히, 모든 것을 주인공의 심리 안에서 끝낸다.


그 누구보다  철두철미한 외과의사의 불안감, 의료 소송과의 갈등. 예술의 현실 참여 문제와 관련한 예술가의 갈등. 아내와 엄마가 된 한 여자의 시집살이에 대한 갈등. 땅과 그 위에 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 바다 위 고독한 배 안에서 또다른 고독과 싸워야하는 인물들의 갈등...


학창시절 수험준비를 위해 읽던 한국의 근현대 단편문학들이 생각난다. 심지 굳은 작가들의 굳건한 표현들, 그 아래 품고 있는 강렬한, 때로는 허무한 메시지들. 하지만 누가 짚어주기 전엔 내 스스로 풀어 헤치기엔 어려운, 그런 작품들과 비슷하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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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 - 지구의 생명 속으로 떠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헬렌 스케일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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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들려주고픈 생물 이야기


런던의 한 거리에 있는 왕립연구소, 여기에서는 지난 200여 년간 매년 유명한 과학자가 크리스마스 강연을 해왔다. 무려 200여 년간 말이다. 1966년부터는 TV 방영을 했고, 현재는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왕립연구소 크리스마스 강연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이 천문학 강의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지구상 생명의 경이를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1911년 '피터 차머스 미첼'의 "어린 시절은 생물의 전유물이지요."라는 주제의 강연을 첫 번째로 시작하여, 2000년 대에 이르러 지구 온난화를 심각하게 지적하는 강의까지 총 11개의 강연을 간추려 실어 놓았다.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스스로 자축하기 위해 제작한 팜플렛 같기도 하고, 과학 잡지에 실렸던 여러 기사들을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간략한 축약본이기에 편하고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쉽다. 뛰어난 강연들을 겨우 소개하는 데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책의 한계이다.


소개된 열한 번의 강연 하나하나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무려 100년의 터울을 둔 지식들마저 새롭게 다가온다. 또한 크리스마스 강연인만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내용은 어렵지 않으면서 설득력은 뛰어나다. 처음 듣는 생물들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 때문에 검색 엔진을 옆에 두고 찾아보며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강연을 하는 과학자와 듣는 아이들의 사진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내 자녀에게 주고픈 크리스마스 선물. 참 따뜻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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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사랑
빅토르 위고 지음, 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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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 직역하여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으나, 넓게 해석하여 '소외된 이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이 비참한 삶에서 절망하지 않는 모습을, 하층 계급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모습을,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이 모든 이들이 품는 행복한 미래에 대한 낭만적인 희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적 모순, 7월 혁명, 워털루 전쟁 등 당시의 시대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배경 속에서 쫓고 쫓기는 사건의 전개는 숨가쁘고 생동감 넘친다. 얽히고 설킨 복선과 갈등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고, 소외된 이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빛이 계속 따라다니는 듯한 따스함은 울컥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출판 당시에는 문학적 가치를 떠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대중소설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사랑받는 세기의 걸작임을 실감한다.


'인간이 예수로 변모해가는 과정'. 어디에선가 보았던 표현이다. 우리 모두 레미제라블일 수 있다.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무엇인가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우리 모두 예수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 내재된 선은 우리가 키우기 나름이므로.


자신을 함부로 불행의 편에 세우지 말 것이며, 내 마음 속 선의 위대함을 무시하지도 말지어다.



'레미제라블'을 우리가 흔히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접했던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이야기 중 장발장에 관한 조그마한 에피소드만을 떼어 놓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장발장'이라는 책에서는 훔친 빵 한 조각, 브앵브뉘 주교의 은촛대, 경감 자베르와 악연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이 에피소드는 이야기의 서두에 불과하며, 장발장에 관한 이야기이기 보다 오히려 브앵브뉘 주교의 선교에 관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작품 전체를 알게 되었지만, 책을 통한 후 접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도 축약본이지만 충분하다. 방대한 원작이 주는 피로로 지치고 싶지는 않기에.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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