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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를 치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우체국>이란 제목은 유치환님의 시 <행복>을 떠올리게 만든다.그래서 우체국이란 낱말봐도 뭔지모를 설레임으로 가득한 소설일 것도 같다.한편으로 표지 모델을 보면 괴팍스러운 우체국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한다.아, 여자의 직감은 정말 무서운 것! 책은 우리네 우체국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미합중국의 우체국 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대하는 낭만적인 우체국의 이미지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솔직한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말로만 듣던 <선데이서울>을 읽는 것 같은 황당함 그 자체다.
주인공 치나스키는 임시집배원으로 시작해 시험을 보고 합격해 보결 우편집배원이 된다.그리고 얼마 후 오크포드 우체국으로 발령이 난다.그를 기다리고 있는 업무는 정규 집배원들이 꺼리는 일들 뿐이다.개에게 물릴뻔한 사건,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강간하는 우체부 치나스키,아동 추행으로 몰리는 착한 우체부 G.G.동거녀 베티와 이별후 조이스와 동거,이혼.일상이 우체국,섹스,경마,술 사이에서 맴돈다.3년후 정규 집배원이 되고,정식 우편 사무원이 되지만,직장은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그와 동료들에게 욕설을 일상이고,음담패설이 대화다.우체국은 엄격한 감독과 기계적인 반복공정으로 쉴 세도 없이 직원들에게 능률을 강요한다.그는 노동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그렇게 우체국에서 12년을 견뎌낸다.
찰스 부코스키는 미국 주류 문단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이단아,그러나 전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작가다.그는 대학 중퇴후 스물네 살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오랜 기간 하급 노동자로 창고와 공장을 전전한다.그러다 우연히 우체국에서 12년간 일한다.그래서 소설은 부코스키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기승전결의 부재,운문처럼 압축한 문체,태연하게 드러내는 불건전한 사상등 파격 그 자체다.
새 두 마리가 새장 문을 보았다.저것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못 할까.조그만 머리들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음식물과 물이 여기 있긴 한데,저 열린 공간은 뭘까?..빨간 새는 훨씬 더 오래 망설였다.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어려운 게임이다.(P103)
우리의 시각과 윤리적인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은 황당함 그 자체다.무분별한 동거와 섹스,마약,경마,술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없다.어느까지 사실이고,어디까지 허구인지 분간이 안 된다.하지만 그의 분신인 주인공 치나스키의 삶은 전후 미국의 과학적 경영을 표방하는 테일러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고 포드주의에 입각한 경영이 팽배하던 시기다.그래서 그의 무분별한 방황이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가난한 노동자의 몸부림처럼 느껴져 안쓰러운 부분도 있다.하지만 소설이 어느 정도 절제된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