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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 / 진명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로산진은 어려운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별난 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오만방자한 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성가시고 시끄러운 영감이라는 평도 있다.
어디에도 나를 칭찬하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들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또 만족한다.
내가 사람들을 칭찬하지 못하는 것은 칭찬할 이유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산진은 유복자로 태어나 집안이 너무 어려워 세상에 나오자마자 남의 집에 맡겨져 이집 저집 전전하며 살게 되었고 소학교도 겨우 졸업해 보잘 것 없는 학력의 소유자였다. 그를 지칭해 사람들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싸움꾼과 신사의 대결'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奇行은 대단했는데 그가 살아생전엔 그의 명성과 위엄에 눌려 그에 대한 것들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1971년경 소설가 시라사키 히데오는 '로산진'이라는 전기형 소설을 쓰며 그를 아주 몹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로산진은 일곱 번이나 마누라를 갈아 치웠고, 자기의 아들을 낳게 한 여자가 30여 명 정도는 된다. 그는 하이에나와 갈가마귀와 바닷뱀 사이에서 태어난 악취가 분분한 괴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이것은 의도적인 과장, 조작된 표현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표현된 이유들 중엔 로산진의 행동, 성격 등 그 원인의 일부가 그에대해 그렇게 표현한 결정적 이유가 됐는지도 모른다. 그가 죽은 지 50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인간은 실격, 그러나 작품이나 미식 감각은 천재"라고 로산진을 비난했던 사람들이라도 항상 꼬리말을 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 아마추어', '무관의 거인', '멀티아티스트', '독학독보'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딱히 스승이랄 사람도 없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존심과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그는 스승이 되지는 않았다. 스스로가 전부였다.
로산진은 서예가, 조각가, 전각가, 화가, 요리가, 도예가 등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은 참 많았고 그의 세계는 경계가 없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삶의 팔 할은 요리와 그릇이었다. 76년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그가 추구한 세계는 참 넓다. 그러나 그것들은 흩어져 있지 않고 그가 이루어 온 그림과 글씨, 그리고 도자기가 실생활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다. 떨어져 있던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들이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었다. 그래서 로산진의 왕성한 창작이 이루어 놓은 어떤 분야도 따로따로 다가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121p)
그가 남긴 유명한 혁명구호는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그릇과 요리는 한축의 양바퀴'였다. 요리의 반쪽을 철저하게 찾아 주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80여 년 전인 1925년의 일이다.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의 저자 박영봉씨는 로산진의 예술세계나 요리, 그릇을 예찬하는 것이 이 책을 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것에 대한 되새김, 나아갈 바를 짚어보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예술도 그렇지만 요리, 그릇 또한 우리의 정신이나 자세를 만들어 낸다. 그릇은 요리의 화룡정점이며, 요리인의 정신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 요즘처럼 플라스틱과 발암물질의 하나인 포름알데히드가 함유된 멜라민 수지로 생산된 식기의 유해성 논란으로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정신은 점점 더 혼란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요리 따로 그릇 따로 노는 우리의 요리정신은 한 쪽이 텅 비어가고 있다.
문화의 흐름은 강물과도 같은 것이다. 강의 원류가 그 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물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 모든 것을 물줄기로 하여 흘러간다. 기타오지 로산진, 그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는 인간적으로는 많이 부족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독창성과 예술정신, 한국의 도예 기술을 흠모하고 한국의 그릇의 연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있는 가마터를 찾아다니고 요리의 궁극, 그릇의 궁극을 추구했던 그의 열정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요리를 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죽었다면 소용이 없다.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 번거롭고 엄격하다고 말하지 마라. 그릇을 사랑하고 다루는 일을 즐겨야 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리와 그릇은 하나로 맺어지게 된다."
요리와 도자기의 조화를 이끌어낸 로산진 그의 예술가로서의 이념과 장인으로서의 요리 정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