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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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깊은 골짜기
굽이굽이 돌아 운문사에 도착했다.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의 아름다움은 겨울에 있다고 했지만, 나는 늦은 가을에 찾았다. 그리고 긴 계곡을 끼고 돌아가는 길을 지나 만나는 운문사를 보면서 느꼈다.

‘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
초록의 생명력이 최절정을 이룰때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만난 푸른 솔밭길,
솔밭길을 10분 정도 걷고 나면 정겨운 낮은 돌담을 만난다.  그 돌담길을 따라 서 있는 붉은 단풍나무는 운문사를 찾은 많은 이의 포토존이 되고 있었다.

계절 끝자락에 만난 운문사의 가을빛은 땅 위에서 메말라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걸음에서 비틀어져 부서지며 소리내는 낙엽들이 처량했다. 이 가을도 이제 막바지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급작스럽게도 가을의 쓸쓸함이 겹쳤다.  마침, 걸치고 간 외투 또한 갈색 프랜치코트다. 

‘쓸쓸함의 이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건가‘
실없이 웃음이 났다.

청도의 운문사, 사리암

유홍준 교수의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

첫째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항시 승가대학 비구니 학인 스님들이 있다는 것.(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승가 대학 쪽은 개방을 하지 않았다. 담 넘어 보이는 넓은 공간과 나무들 보고 싶어 많이 아쉬웠다)

둘째는 장엄한 새벽 예불이다. (나에겐 불가능, 어찌 저녁 예불이라도 가능할까)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다. 이 아름다움은 눈으로 목격을 하였기에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 아픔의 흔적도 눈으로 목격했다.(일제 시대 송진 공출 때 상처입은 흔적들)

넷째는 운문사의 자리매김이다. 높은 산자락에 위치한 운문사는 넓은 평지 사찰이다. 그리고 분위기 또한 아기자기 하고 평온하다. 그래서 유난히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았다. 오늘 나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볍게 찾았다. 영원한 나의 누구씨랑 ,함께.

마지막 다섯째는 너무나 유명한 역사책 <<삼국유사>>
가 여기서 쓰였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가 발간된 곳은 인각사(麟角寺)였지만 ‘일연스님‘이 운주사 주지 스님으로 있던 시절에 쓰였다고 한다.

책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다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색의 아름다움은 체험하고 내려 온 것 같다. 무엇보다 사리암을 올랐다는 기쁨이다.

운문사를 돌고 반대편으로 나오는 길에 사리암 가는 길이 보였다. 여기서 사리암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30분 정도였다.  사리암 주차장까지 걸어가느냐 차를 끌고 가느냐의 고민에서 단호히 나의 두 발을 선택했다. 결국 30분을 걷고 사리암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또 사리암까지 올르는 계단 1008개의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경사와 계단 수에 숨이 턱밑까지 헉헉 거렸지만 올랐다. 그리고 사리암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커피 맛을 선사했다.

오른자의 여유와 함께 느긋한 발걸음은 하산하는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다. 높은 곳을 향해 올랐던 시선은 이제 낮은 곳을 향했다. 등산의 기분 중 최고의 기분인 성취감을 제대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산 정상을 오른 경험이 별로 없는 개인이라 그 짜릿함은 더 컸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길의 매력이다. 가는 길에서 만나는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더 좋아한다. 목적지에서 주는 기쁨보다 나에게 더 감흥을 주는 것이 가는 길에 만나는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사리암을 오를 때 그 작은 소소함을 놓쳤다. 눈앞에 보이는 사리암을 오르기 위해 헉헉 거리면서, 목적지만을 향하는 발걸음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려오면서 마지막에 찾은 여유는 나름 좋았다.
땅 위에 뒹구는 낙엽도 주워가며 내려오는 시간과 사진도 찍을 여유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장에 꽃힌 책을 찾았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시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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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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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김산해



‘길가메쉬 프로젝트‘

불멸을 추구하는 긴 프로젝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언급되어진 주제 중 하나다. 죽음은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지만 흥미로운 문제였다. 근대 후기 이전까지 죽음은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과 내세에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즉, 선지자들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신화의 주제도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길가메쉬의 여정은 결국, 실패로 끝이난다.
그는 한때,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명성‘을 위해 거침없던 도전적인 왕이었다. 젊은 왕 길가메쉬는 아직 ‘죽음의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미성숙 단계의 길가메쉬는 모두가 말리는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도 ‘훔바바‘의 괴력 앞에서 멈칫한다.
길가메쉬의 깨달음의 시작이다.
훔바바의 죽음의 시선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그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결국 비열하지만 자신의 누이를 훔바바에게 팔아먹는 치졸한 속임수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훔바바를 제압하고 우르크로 돌아온다.
길가메쉬 그에게는 친구이자 부하인 엔키두가 있었다.
그들은 이제 하늘의 황소까지 죽인다. 점점 더 오만해지는 길가메쉬를 신들은 벌을 주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 벌은 엔키두의 죽음이었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실체를 자각하게 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한다.
길가메쉬는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 또한 엔키두와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물리칠 방법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의 영생을 위한 불멸의 여정이 시작된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지만,영생으로 가는 기회는 얻지 못한다. 결국 길가메쉬는 죽음을 맞이한다.

길가메쉬의 마지막 허망함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것을 위해 쏟았던 노력에 대한 시간이다.  죽음뿐이라는 결말에서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후회는 허무와 허탈만 남은 그의 인생인 것이다.


˝길가메쉬.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 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와 몸은 씻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p347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길가메쉬의 삶에 대한 여정, 어른이 되어가는 성숙해 가는 과정도 보였지만, 그의 이름을 딴 이 길가메쉬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과 생명공학은 길가메쉬의 긴여정을 경험 중이다. 그 가능성의 힘, 지금 인류의 과학적 진보는 어디까지일지.
이제 과학자들은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기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서 그 원인을 분석할 따름이다. 과학혁명의 선도적인 길가메쉬 프로젝트는 인류의 불멸을 위한 것, 죽음을 정복하는 긴 여정인 것이다.
최근에 발견 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미 맞춤형 아기까지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가 윤리적 차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결국 새로운 과학 기술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적용될 것이다.
길가메쉬의 거침없던 욕망은 젊음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는 깨닫는다. 인류의 이 불멸의 프로젝트를 향한 무한한 자신감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수많은 미성숙의 길가메쉬
그의 오만과 그의 만용과 그의 집착을 다 가지고 있을지 모를 길가메쉬.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걸린 그 무엇처럼 커다란 세상이라는 거미줄, 그 속에 갇힌 채로 흔들리고 있다.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무서운 발걸음을 옮기는 거미를 주시하며 불안해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워나간다.

예외가 아닌 모든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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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뜨거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사계절 내내
내 옆을 지키지

라떼는 말이야
역시나 오늘도
뜨겁고 구수한 냄새로
그 존재를 발하고 있지

라떼는 말이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야
양분된 만남의 조화가 있어
화해가 있는 통일이 있어

라떼는 말이야
무엇보다 미학이 있어
적당함의 온도
적당함의 비율
적당함의 기교
이 모든 것의 시간이 녹아있어
하나라도 깨지는 순간
무너지는거지

라떼는 말이야
사랑이 있어
따뜻함 속의 하트는 미소야
일상의 소소한 그리움이 있어
일상의 즐거움이야
하루의 비타민이지
그건 소확행이야

라떼는 말이야
묘한 힘이 있어
영양가 있는 든든한 힘
카페인의 힘도 빠지지 않아
뜨거울 때
차가울 때
전혀 다른 에너지야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겁거나
하지도 않아
중용을 알지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가 있어
그만의 여정이 있어
그만의 에로틱한 매력으로
유혹할 수 있어
부드러움이야

라떼는 말이야
뜨거울때 제맛이야
그러니까 지금이 딱인거야
그러니까 즐길 수 있게 기다려 줄래

라떼는 말이야
이제 아름다운 영혼에 대해
말 할 수 있을거야
또 다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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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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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가을

통도사를 찾았다
산사로 들어서는 진입로부터

길은 마지막 가을 빛을 태우고 있었다

‘산사 순례‘

늘 푸근하고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조용히 사색의 길로 들어선다

자연과 어울림이 조화를 이룬
세계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불교 유산




‘‘인도와 중국엔 석굴사원이 있고,
일본엔 사찰정원이 있고,
우리나라엔 산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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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 [초특가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1
피터 웨버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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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1665년 작품

출연/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감독/ 피터 웨버



요며칠 가을비와 바람이 가져다주는 차가움은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안타까움을 던져 주었다. 이 가을이 가기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시간에 대한 미련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찾은 영화 한 편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17세기는 경제적 부흥과 동시에 문화도 황금 꽃을 피웠다. 특히 부유층의 예술가의 후원은 그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도왔다. 작품 제작을 의뢰하고 주문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인물 또한 당시 화가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요하네스 베르메르‘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1665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는 그의 작품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탄생하는 과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알려진 이 작품에서 주인공 소녀의 실존 여부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오묘한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는 명화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다. (참고로 책에서 소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트로니(Tronie)라는 회화 연구 기법으로 특정한 얼굴 타입을 상상하여 만든 모습‘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유심히 보면 베르메르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소품과 배경들이 얼핏얼핏 눈에 들어온다. 연출의 디테일함이 보이는 장면이 꽤 많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작품 <와인잔을 들고 있는 소녀> 에서 붉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는 젊은 여인과 그녀를 아주 음침한 눈길로 술잔을 거들고 있는 남성이 보인다. 영화 속 등장 인물이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보이는 아주 간사한 눈빛과 함께 후원자의 간교함이 드러나는 감독의 연출은 정말 흥미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작품 속 테이블 위 은쟁반에 있는 노란 레몬의 의미를 안다면 더 재미지다. 당시 레몬은 와인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회화에서 ‘레몬‘의 의미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다.

이 영화가 흥미진진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정말 조용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런 잔잔함과 여운을 즐기는 나로서는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영화는 당시 예술가와 후원가의 관계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서 작품 활동을 해야만 하는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리고 하인과 주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도 담고 있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든 이야기일지라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탄생 배경이 될 수 있는 스토리가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하녀로 일하게 되는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하녀라는 직분으로 ‘순응‘하면서 살지만, 결코 자신을 놓지 않는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작품에 작지만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느낌대로 ‘의자‘를 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트의 과감한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쾌감과 희열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트‘의 느낌을 읽고 작품에 담아내는 베르메르는 그의 그림에서도 의자를 치웠다.

조용하지만 둘의 관계는 시간이 갈 수록 애잔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서로의 마음에 들어선 감정들은 그들의 눈빛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리없는 애원, 선을 넘지 않는 서로의 절제에서 그들의 간절함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은 더 관능적이었다. 그래서 더 설레임을 자극했다. 자극적인 장면과 대사 한 마디 없지만, 온몸의 세포가 반응하는 시간이었다. 책이 주는 베르메르의 우울함이 영화에서 로맨틱한 감성을 던져 주고 상상력의 무한한 창을 열게 하는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과 영화 한 편으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과 그의 이야기로 감성 풍만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하루도 감사해야 될 것 같다.

이 지나가는 가을 감성을 정확하게 자극하고 적중한 영화를 만나게 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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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1-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에 맥주마시면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지네요!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ㅎ

이뿐호빵 2020-11-0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딱 좋은데요ㅎㅎ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