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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평점 :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김산해
‘길가메쉬 프로젝트‘
불멸을 추구하는 긴 프로젝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언급되어진 주제 중 하나다. 죽음은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지만 흥미로운 문제였다. 근대 후기 이전까지 죽음은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과 내세에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즉, 선지자들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신화의 주제도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길가메쉬의 여정은 결국, 실패로 끝이난다.
그는 한때,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명성‘을 위해 거침없던 도전적인 왕이었다. 젊은 왕 길가메쉬는 아직 ‘죽음의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미성숙 단계의 길가메쉬는 모두가 말리는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도 ‘훔바바‘의 괴력 앞에서 멈칫한다.
길가메쉬의 깨달음의 시작이다.
훔바바의 죽음의 시선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그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결국 비열하지만 자신의 누이를 훔바바에게 팔아먹는 치졸한 속임수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훔바바를 제압하고 우르크로 돌아온다.
길가메쉬 그에게는 친구이자 부하인 엔키두가 있었다.
그들은 이제 하늘의 황소까지 죽인다. 점점 더 오만해지는 길가메쉬를 신들은 벌을 주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 벌은 엔키두의 죽음이었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실체를 자각하게 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한다.
길가메쉬는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 또한 엔키두와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물리칠 방법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의 영생을 위한 불멸의 여정이 시작된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지만,영생으로 가는 기회는 얻지 못한다. 결국 길가메쉬는 죽음을 맞이한다.
길가메쉬의 마지막 허망함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것을 위해 쏟았던 노력에 대한 시간이다. 죽음뿐이라는 결말에서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후회는 허무와 허탈만 남은 그의 인생인 것이다.
˝길가메쉬.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 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와 몸은 씻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p347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길가메쉬의 삶에 대한 여정, 어른이 되어가는 성숙해 가는 과정도 보였지만, 그의 이름을 딴 이 길가메쉬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과 생명공학은 길가메쉬의 긴여정을 경험 중이다. 그 가능성의 힘, 지금 인류의 과학적 진보는 어디까지일지.
이제 과학자들은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기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서 그 원인을 분석할 따름이다. 과학혁명의 선도적인 길가메쉬 프로젝트는 인류의 불멸을 위한 것, 죽음을 정복하는 긴 여정인 것이다.
최근에 발견 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미 맞춤형 아기까지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가 윤리적 차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결국 새로운 과학 기술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적용될 것이다.
길가메쉬의 거침없던 욕망은 젊음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는 깨닫는다. 인류의 이 불멸의 프로젝트를 향한 무한한 자신감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수많은 미성숙의 길가메쉬
그의 오만과 그의 만용과 그의 집착을 다 가지고 있을지 모를 길가메쉬.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걸린 그 무엇처럼 커다란 세상이라는 거미줄, 그 속에 갇힌 채로 흔들리고 있다.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무서운 발걸음을 옮기는 거미를 주시하며 불안해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워나간다.
예외가 아닌 모든 것이 일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