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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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볍지 않은 SF




과학 기술에 대한 선망과 두려움과 이 모든 것들의 집약체인 이 장르는 또 지극히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게 보여준다. 너무 솔직해서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눈 앞에 펼쳐질 이상적인 꿈에 도취되는 속도를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때때로 철학자의 눈으로 인류의 성찰을 담은 이야기는 과학기술의 양면성, 윤리적 딜레마에서 항상 생각하게 만든다.



책상 위에 몇 권이 쌓여있는 소설들은 나의 이온 음료가 된다.
그래서 책탑에서 제일 마지막에 읽는 책이기도 하고, 뭔가 피곤해질 때 손을 뻗는 책이기도 하다. 아껴 놓은 비상식량 초코바 같은 것이다. 때론 카페인의 역할도 분위기 전환의 친구이기도 하다.  갑자기 구차하게 변명같지도 않은 것으로 핑계를 대려고 버벅거리고 있는 내가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조금은 뒷북 치고 있는 것 같아 머슥해서다.
이렇게 젊은 SF작가 김초엽을 조금 늦게 만난 핑계를 대고 있다.


한때 우리에게 가장 가까웠던 곳,
어느 순간에 와서 가장 먼 곳이 되버린 상황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안나가 맞이한 운명처럼 말이다.


열심히 한 시대를 살았던 안나, 그녀가 몰두한 시간 뒤에 찾아 온 것은 기약없는 기다림이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슬렌포니아 행성행 티켓은 그저 떠날 수 없는 그녀의 안타까움만 안겨 주었다. 자신이 맡은 연구만 끝나면 먼저 슬렌포니아로 이주한 가족에게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 놓인 안나는 가족과 생이별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계산기는 실효성과 합리성의 원칙 아래  이러한 개개인의 삶은 무시한다. SF소설의 과학적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것이다.


지구에 남겨진 안나의 삶은 작은 희망의 티켓을 들고 그저 기다리고 기다린다. 가족이 있는 행성으로 가는 길이 그녀의 목적이었고, 사실상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언젠가는,


이 막막한 단어의 숨막힘을 다시 한 번 경험한다. 퍽퍽한 밤고구마를 삼킨 답답함을 연상케하는 단어들이 꽤 있다. 그 중 ‘언젠가는‘ 이 단어의 답답함은 정말 막막하고 가슴을 치게 한다.  책 속의 안나와 대화하는 청년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리고 누군가의 답답한 심정에 감정 이입이 돼 웃픈 현실을 마주한다. 맞장구를 치면서 아주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안나는 자신이 연구한 냉동 수면 기술로 동결과 각성의 반복으로 이 긴 기다림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녀의 연구가 비록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에겐 달랐다. 그녀가 쏟아부었던 시간이었다. 그로인해 잊혀진 시간과 살아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나는 이 시간에 단단히 묶여서 풀고 나갈 수가 없었다. 안나에게 이 시간의 배신이 얼마나 고통이었을지 생각하면, 안나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열정과 그 시간의 배신 속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고통을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안나의 이 말이 가슴을 때리고 머리를 울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성의 객관성을 따진다는게 참 가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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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 가볍지 않은 SF는 장편 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

  일기예보처럼 당연히 그날의 미세먼지 체크는 일상이 되버린 지금이다. 매년 봄의 불청객 황사만을 걱정하던 시간이 있었다. 여기에  미세먼지라는 녀석으로 어느새 계절을 벗어나 황사마스크가  우리 일상에서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로  집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마스크는 일종의 의복이 되버린 현실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진보된 과학 기술과 발달, 이 모든 것은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그 맥락이 이어진다.


책은 더스트로 인해 인류는 대멸종의 시간을 버티고  7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인류 재건의 시기에 돌입한다. 인류가 만든 과오를 인류가 수습하는 단계인 것이다.
더스트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로 그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금의 조건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을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멸망과 재건의 시대

더스트를 피하기 위해 당시 세계 곳곳에 사람들은 거대 돔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돔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돔이었다. 당연 돔으로 피할 수 없었던 다른 생물들은 살아 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돔으로 피할 수 없었던 생물들이 인간 이외의 생물만이 아니었다.  언제든 우리에게는 억지로 소외되거나  제외되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어떤 종은 멸종을 맞이 했고, 어떤 종은 적응하며 변이를 맞이했고, 또 어떤 종은 거의 멸종 직전 회생의 기회를 얻는다.
살아 남기 위한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과정은 돔 안에서도 돔 밖에서도 치열했다.

죽음과 가능성

죽음과 탄생은 늘 공존, 극과 극의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늘 통한다는 사실이다. 멸종과 그 위에 다시 쌓아 올려지는 다른 종류의 삶은 인류의 역사이며 시간의 흔적이다. 지금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삶을 바탕으로 차곡차고 쌓여진 문명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더스트는 땅 위의 모든 살아있는 것을 손상시킨다. 작은 틈을 파고들어, 숨 쉬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

˝메말라 붙은 숲 위에 새로운 종의 식물들이 덧 씌워 졌다. 이제 예전과 같은 숲은 없었다.˝


더스트 폴로 인해 수십 년 전 대멸종을 겪은 인류는 재건 이후의 생태계 변화를 조사하게 된다.
개량종으로 뒤덮인 산, 자연은 인간의 무수한 개입으로 인해 파괴되고 또 멸종위기라는 재앙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위기에서 ‘적응‘하고 버티기 위해서 인간은 또 인위적인 개입을 하게 된다.  적응하고 변이된 생태계 또한 자연스런 적응이 아닌 인간의 개입에 의한 적응인 것이다. 이는 문제해결을 위한 영원한 답을 찾은 것이 아닌 일시적인 시간 벌기다. 이렇게 지금도 인간은 그때 그때 임시방편으로 모면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과 내분

모든 것은 이해관계에서 시작되었고 이해관계에서 틀어졌다. 어떠한 공동체라도 그 성립은 계약관계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거래의 성사가 이루어질 때 우리의 관계는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그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온실‘ 그 희망을 위해 서로가 감내해야 했던 힘듦도 참아냈던 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로 인해 무너진다. 안전하다는 경계 그 경계에서 치뤄지는 다툼들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의 목적은 이제 사라지고 서로를 공격하며 분열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흩어졌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에 대한 개입이 인류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그 가능성에 대해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 같다. 멸망과 재건의 과정에서 인류의 역사는 늘 쓰여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명감이란 단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보통 대단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들에 대해서 우리의 목소리는 늘 그들의 훌륭한 정신에 대해 칭송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들의 속내를 말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구한 인물에 대해 칭송할 때 책은 말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었다고.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했고 그 호기심이 족쇄가 되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것만이 다였다고. 거창한 사명감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세상을 구했던 모든 행동들이 이타적인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신도 살아야 했고 자신의 시대를 꽤 착실히 살았던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안다. 보이지 않는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부질없는지 우리는 때때로 느낀다. 나 자신이 가끔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예측할 수도 없지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아내며 하나씩 채워 간다는 것이다. 살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걸 생각하면 누구나 비슷하고 누구나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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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1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김초엽작가님 작품에 관한 글을 두번째 봅니다!ㅎ 이쯤되면 읽어야만 한다는 계시네요!ㅎ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이뿐호빵 2020-12-17 22:56   좋아요 1 | URL
ㅎㅎ젊은 작가의 감성과 함께
짧은 시간, 즐독하실겁니다~~

막시무스 2020-12-17 22:57   좋아요 0 | URL
근데, 지구 끝의 온실은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네요! 오프라인 전용인가요?

cyrus 2020-12-18 08:46   좋아요 2 | URL
To. 막시무스님 // 내년 초에 <지구 끝의 온실> 단행본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밀리의 서재 단독 전자책의 개정판으로 나올 수 있대요. 작가님이 소설을 다듬는다고 보시면 돼요. 이상 작가님 오피셜입니다. ^^

이뿐호빵 2020-12-17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그럴겁니다ㅜㅜ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 책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