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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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건 나한테는 어떤 의미일까. 어릴 때는 그저 책이 좋았다. 책만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특히 나는 판타지 소설을 참 좋아했다. 판타지 소설만 있으면 어느 한 방에 책과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나는 '내'가 아닌 '책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 안에 나 혼자와 책이 있는 그 느낌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커가면서 점점 책을 다 읽는 느낌이 싫어졌다. 책을 다 읽고 책과 나 혼자 있던 방에서 나와야 하는 그 느낌이,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그 느낌이 너무나도 싫었다. 책은 나에게 하나의 도피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은 평생의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점점 책과 거리 두기 시작했다. 어차피 읽어도 나에게는 안 일어날 일들인 것을 알아버렸을까.

그리고 멀리 이사오게되었다. 친했던 친구들이랑 다 떨어지고 원래 살던 곳과 다르게 주변에는 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돌이가 되어갔다. 그러다 도서관에 갔다. 내가 원래 무척 좋아했던 도서관의 그 느낌은 그대로였다. 책을 찾는 일은 옛날처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문제는 '독서'였다. 무척이나 많은 책을 빌려왔지만 결국 거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해 버렸다.

그 책들 중 이 책이 유일하게 내가 다 읽은 책이다. 벌써 5월이 다가오지만 2024년에 내가 완독한 두 번째 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몽클 몽클하게,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하루만에 다 읽는 초고속의 책 읽는 속도를 다시 보인 것도 아니고, 한달에 한 장씩 읽은 것도 아니고, 진짜로 내가 읽고 싶을 때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책 읽기의 행복을 찾은 것 같다. 딱 내가 찾고 있던 힐링의 책이었다. 막 책에 빠져서 확 읽고 싶은 사람들 말고, 힐링하면서 책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에겐 지루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나에겐 최고의 책이였다.)


사연이 많고 많은 우리의 주인공, 목해원은 인생에 지쳐서 시골로 온다.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일이 해원이에게 닥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하지만 작고 큰 문제들이 쌓이다보니 인생에 지쳤다, 이 문장이 딱 주인공과 걸맞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주인공에게 공감이 많이 되었을까. 어쩌면 나 또한 해원과 같은 성격이며 같은 생각을 많이 해봐서 그런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 힘들었을 때 많이 했던 생각이다. 모든 상황을 다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그렇게 해원은 그대로 시골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 동창의 서점 알바를 하고 (사랑도 하고) 북클럽도 가입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점점 행복해진다. 그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인 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또한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그렇게 특별한 일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마지막에 반전은 있지만). 오히려 우리 사이에 우리도 모르게 껴있을 아주 흔하고 흔한 사람들이며 어쩌면 우리가 껶은 일들보다 더 작은 문제들일 수 있다. (물론 해원이 겪은 일들은 결코 쉬운 문제들이 아니지만.) 하지만 다르게 바라보면 그들은 하나 하나 다 특별한 사람이었고 모든 일들은 하나 하나 다 특별한 일들이었다. 그들 곁에서 해원은 점점 행복해지니까. 해원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서로 도우며 행복해지니까.

맨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공감이 많이 가서 그랬을까, 하루 빨리 주인공이 행복해지길 바랬다. 하지만 읽다보니 천천히 행복해져 가는 주인공에게 나도 모르게 빠져있었다.(사실 읽다보니 어느새 행복해져 있는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천천히'라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 천천히 가도 된다고. 천천히 행복해져도 된다고. 천천히 괜찮아져도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행복해졌던 해원은 더 큰 문제를 겪으며 결국 다시 무너져 버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문제를 모두 다 해결 하지 않는다. 해결 하는 장면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뭔가 멋지게 주인공이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며 확 관계가 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책 속에서 해원은 결국 또 도망친다. 어떤 사람들은 도망 치는 것은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거기서 도망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때때로는 도망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만나는 방법. 그들에겐 독자가 모르는 여러 사건들이 더 있었겠지만 그들은 결국 해피 엔딩을 마주한다. 딱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해피엔딩이 아닌 우리도 갖을 수 있는 해피엔딩. 나는 그들의 결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망설임이 없는 해원과 평생 해원만을 사랑할게 뻔한 은섭, 그들의 로맨스는 읽는 내가 더 설렜다.... 해원이 다시 서울로 돌아갔을 때, 넋을 잃은 은섭의 서사도 무척 궁금하지만 그렇게 힘들었을 시간의 두배는 더, 아니 몇 배는 더 행복했길을 어느새 빌고 있다...

다만, 너무 해결 하는 장면을 안 보여주어서 그랬을까, 마지막에 이모와 해원이의 관계가 풀리는 장면은 안 나와 많이 아쉬웠다...

아무튼 이 책은 다시 내가 책과 화해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나도 이제 갑자기 확 환경이나 상황을 바꾸며 행복해지는 그런 거 말고, 천천히 지금 내 삶에 행복해지고 싶다.

+)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있어서 한 번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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