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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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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작품을 공모하는곳이 많아졌지만, 작품만을 놓고 보면 어떤 뚜렷한 주제와 그 문학상이 가지는 정체성과 맞물려 그 이름에 맞는 상을 타게 되었는지 모호할때가 많다.
물론, 작품이 좋으니 뽑았고 모인 심사위원들의 고견들이 부합된 결과라고 믿는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지만, 문학상이 내건 이름에 맞는 주제의식이 있고 정체성을 확립해 갈 때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있고 상의 권위를 세워갈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이래서 이 상에 부합한 작품을 뽑았다...심사후기를 눈여겨 보기는 하지만, 문외한들이야 전문가가 이렇다하면 이런줄 알고 저렇다하면 저런줄 믿게 된다. 소월 문학상이라고 해서 소월처럼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문학상이라고 해서 이상처럼 쓴 사람이 당선되는 것도 아니고 보면, 잘 쓴 글에 상은 가게 되어있다가 이의를 제기할 수없는 정답에 가깝다.
내가 출판되는 모든 문학상의 작품을 다 섭렵해 읽고 비교하고 호불호를 나타내는 고매한 눈을 가진건 아니다. 그럴 깜냥도 못되고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책이 나왔는지도 모르는채 살아가기가 일쑤다.
그러나,
세계문학상을 바라보는 내(철처한 개인적인) 시선은 기대에 항상 차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퍼질고 앉아 책을 펴게 되는 이유는 독자들의 기호를 알고 독자들에게 읽히는 작품을 선별하는 능력을 믿어서다.
재미는 있는데 뭘 말하고자 했는지 모를 주제의식이 떨어지거나, 주제의식을 너무 부각시킨 나머지 재미가 반감되는 책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눈 밝은 독자들이 알아서 소문을 내는 입소문 마케팅의 효력이 가장 잘 살아있는 문학상이 세계문학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은 7회밖에 수상자를 내지 않은 신생 문학상이라 여길 수있지만, 세계문학상을 탄 작가들의(모두 다는 아니지만..^^;) 활약들을 볼 때 뭔가 기대해도 좋을 문학상이라는 (막연한)믿음!!^^
7회 세계문학상을 받게 된 강희진의 '유령'은 소재면에서도 참신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아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할 것 같은 탈북자들의 생활이나 게임에 빠져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임홀릭들의 이야기를 (전혀 어울릴듯 싶지 않은 두 이야기지만) 잘 버무려 맛있게 담아놓았다. 김치에 치즈가루를 뿌려 데웠는데 이게 의외로 입에 착착 감길때의 맛이랄까!!^^
죽을 것 같아서 배고픈게 싫어서 부모한테 업혀서 내려오게 된 '남조선'이지만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감시와 감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생활총화'가 내 몸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북조선'도 그리울 때가 있다.
온전히 북조선의 인민일 수도 없고 완전히 남조선의 사람도 될 수없는 '젊은 탈북자'들의 생활은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만큼이나 안타깝고 허망하다.
발 디딜곳이 마땅찮은 그들의 삶은 언제까지나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령일 수 밖에 없고 그들의 삶 자체를 설명하고 인정 받기위한 존재증명의 힘겨운 노력은 유령으로 살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은 리니지 게임속의 혈맹 '바츠 동맹군'으로 결집되어 각자의 존재증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살인사건을 내세우면서 추리소설 형식을 빌렸으나 내용은 추리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봐 온 우리의 시선을 숨어(?)서 살고 있는 젊은 탈북자 그들의 고뇌와 어디에 놓아도 스스로 어색해하는 모습을 서치라이트로 조명해 보이는 사회소설로 읽힌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룰을 몰라 판을 벌여 놓아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유 아 다이' 와 함께 한 목숨을 금방 잃고 마는 연식이 좀 오래 된 나는 리니지 게임이라는 게임용어에 익숙치 않아 뭔 소리들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다.
마치, 남조선에 발들여 놓은지 얼마 안되는 북조선 꽃제비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의 정체성을 향한 몸부림은 가상현실에서 더 구체화되고 어쩌면 현실보다 더 리얼한 현실이 그곳에 있는 건 아닌지 넘겨다 보게 되었다.
이땅에서 아직도 힘들어 하고 있는 탈북자(이 말 말고 새터민이라는 말을 권장한다고 들었는데...)를 향한 시선에 온기를 불어 넣게 하는 책이었다.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