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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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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즐거운 사라'로 문단의 이단아로 찍혔(?)던 마광수 교수의 자살 뉴스가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즐거운 사라'는 없어서 못 파는 책이 되고 초판은 무려 25만원에 혹가하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무슨 개같은 경우인지. 죽어야 팔리는 책이었는지 죽은 후에야 가치를 인정 받는 책이었던 건지... 슬픈걸 넘어 화가 치밀었다. 마광수 작가를 좋아했던 것도 싫어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아픔이나 고통을 돌아보려하지 않았고 그의 입장에서 대변하거나 변호해 주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되려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고 외면당한 충격과 트라우마로 종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것으로 유추되는 바, 이제라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있는 이 개같은 경우를 감사해야 하는지 개탄해야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이외수 책을 펴 놓고 마광수 이야기라니?
나에게 마광수와 이외수는 같은 맥락의 사람이라서 그렇다.
1990년도 초반 두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색깔은 틀렸으나 시대를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색깔로 말하는 작가의 글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시기에 알게 된 두 작가의 작품들을 엎치락 뒷치락 탐독했던 시절, 이외수와 마광수는 그 시절의 삼촌들이고 젊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 선구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외수 책을 펴고 안타깝게 죽은 마광수 교수를 생각했던 거다. 아까 맥주를 한 잔(잔이 바케스라는 게 함정 ㅠ)했던 탓도 있고.
이외수 쓰고 정태련 그린 [아불류시불류]를 끝으로 이외수 책을 읽지 않았다.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듣긴 했지만 게을러서 SNS를 잘 하지 않는 나는 그의 근황에 대해서도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멀어져 있었다.
다시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을 통해 내가 멀어져 간 사이 암투병을 하면서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를 자르고 살도 엄청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나는 그의 책을 다시 펴 든 독자 일 뿐, 팬도 뭣도 아니다.
암투병을 잘 이겨내고 있고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 고마울 뿐이다. 누구든 그래야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좋은)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건강하고 오래 살아주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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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에세이는 가벼운 듯 싶으나 깊은 철학이 있고 무거운 듯 하다가도 허허웃게 하는 유머가 포진해 있다.
인생을 좀 아는 사람만이 쓸 수있는 촌철살인의 내공이 가득하다.
잠언서처럼 읽히기도 하고 철학서로 읽히기도 한다. 가오만 잔뜩 세우고 알맹이는 부실한 호구가 아니라 행간에 스민 인생 전반에 걸쳐 경험한 땀과 눈물로 인해 독자들에게 짧고 쉬운 글이지만 진한 여운과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공감 백배로 좋아요를 주저없이 누르게 되고 수백만의 팔로어를 거느린 SNS의 제왕이 되나보다.
오래 같이 일해 온 정태련 화가의 그림이 글과 함께 어우러질때 그의 글은 더 풍성해지고 운치가 있어 보인다. (이전의 세밀화에 익숙하다가 이번 책의 그림은 여러 장르의 시도가 섞여(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ㅠ) 생경했지만 글과의 호흡을 맞추려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다.
그가 펴내는 에세이는 너무 비슷해서 한 권을 읽거나 두 권을 읽거나 별 차이가 없다.
그만한 생각, 그만한 감동에서 그친다.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가끔 이외수 팔로어 지인이 보내오는 글도 이 책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글쓰는사람은 지적 허영 다음으로 잘 쓰겠다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린 것 만은 확실하다. 어디에도 신선함이나 앗,하는 문장은 없다. 그날의 소회와 자신의 생각과 일상의 풍경으로 책을 채우고 있다.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도 좋고 아니라고 우겨도 허물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책 제목처럼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이 되어 이전 작품가 변한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의 글에 철학이 있고 허를 찌르는 깊이가 있음은 부인하지 않겠으나, 같은 주제를 가지고 동음이의어거나 다의어로 바꿔가며 이미 너무 많이 써왔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자꾸 들으면 질리고 식상한 법이다. 일상의 소회나 개인적인 생각은 그날 그날의 SNS로 소통하고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사람들에겐 그에 맞는 글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소회나 풍경을 철학을 입혀 쉽게 읽히도록 하는게 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할 말은 없으나, 나는 책을 사는데 주저하게 될 게 틀림없다.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니 다행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맹진을 하고있다니 그의 새로운 작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같은 에세이가 아니라 인생 역대작이 될 소설이길 진심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