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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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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은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에 있는 산이다.
와이오밍주가 미국 어디에 붙어 있는지 관심도 없었지만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를 보고 찾아봤다.
북으로 몬태나, 서쪽 아이다호, 남서쪽 유타, 남쪽 콜로라도, 동쪽 네브래스카와 사우스다코타와 맞닿아있고 엘로스톤 국립공원이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음,,영화는 영화니까 영화같은 영상을 연출한다. 척박은 강함으로 거침은 웅장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의 효과로.
브로크백 마운틴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터부시되는 이야기의 내면에 흐르는 두 남자의 진정성이겠지만 광활한 서부의 풍경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척박하고 거친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서로를 향한 숨소리! (가슴이 떨리지 않으면 자신의 감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길.)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본 것은 광활함 그 자체였다. 풍경도 사람도 모두 광활했다.
광활함-
내가 처음으로 느낀 광활함도 그곳에서 였다.
라스베가스의 동생 집에서 콜로라도를 거쳐 유타로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눈이 닿는 끝까지의 거리가 가도가도 끝나지 않는 지평선으로 이어지고 찌를 듯 서있는 전나무들, 우렁우렁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 100여개의 화물칸을 달고 달리는 화물 기차- 우리나라에서 볼 수도 있는 풍경이지만 화면비율이 100배 정도 확장되어 압도하듯 다가왔다. 황량과 광활이 교차되던 풍경과 깊고 조용한 것과는 먼 강물소리, 밤하늘의 쏟아지던 별빛... 이국의 땅이란게 실감났고 광활이라는 단어가 이런 거구나 몸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그래서 저 지명들 사이 낯익은 이름들이 괜스레 반갑다. 그래, 알지.. 알지..저 지명들을 아! 하며 지나던 때가 있었지.
추억과 기억이 닿을 수 있는 낯선 곳이 있다는 거, 괜히 혼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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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치고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몇 보지 못했다.
책에서 상상할 수 있는 극대치를 영화가 다 담아내는데 역부족이기도 하지만 원작대로 영화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원작을 먼저 읽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원작 이상의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잘 생긴 배우들 덕도 있었지만 아이오밍(이라 여겨지는)의 브로크백 마운틴 풍경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두 남자의 안타까운 상황을 충분하도록 잘 메워주었다. 내가 보았던 풍경이 기억이 오버랩되어 영화가 더 깊이 아프게 다가왔었다. 좋았고 슬펐다.
11편의 단편들로 채워진 애니푸르의 소설집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이 대부분 와이오밍이고 자연에 기대어 살거나 자연을 극복하며 사는 카우보이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생경한
배경이 많고 이야기가 단편이라 그 문화를 알지 못하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기도 힘들고 감동받기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었다.
'가죽 벗긴 소'같은 경우에도 1998년 최고의 미국 단편 소설이자 존 업다이크가 뽑은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평가 받았다고 했는데 읽어보면 이야기가 짧아서도 그러하겠지만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어디서 감동을 받아야 하는지 난감한 때가 있었다. 목장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일에 대한 목가적 환상만 있을 뿐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고단함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유가 가장 컷으리라. 도시의 이야기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뿜는 거친 호흡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였다. 애니 루프의 건조하고 단단한 문장들이 이야기에 쉽게 빨려들어가 섣부른 감동에 젖어드는 것을 자제시키긴 했지만 씹어 읽을 수록 깊게 느껴지는 뻐근한 충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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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표제작이기도 한 '브로크백 마운틴'에 오면 여태껏 견뎌오던 거친 숨소리를 깊은 호흡으로 느끼고 만다.
시대적 정서를 뛰어넘기 어려웠던 젊은 두 카우보이의 사랑.
그냥 그런 동성애를 그린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짠해지는 애틋함과 아름다움.
오랜 세월을 그리워하면서도 여름의 짧은 만남을 기다릴수 밖에 없는 두 카우보이의 안타까운 마음이 브로크백 마운틴의 풍경과 거칠고 거침없는 잭의 어이없는 죽음과 겹치면서 울컥해 진다.
I swear...
에니스가 크로스백 마운틴에서 잭과의 추억이 담긴 낡은 셔츠를 잭의 옷장에서 가지고 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다.
그리고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견디는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칠 수 없는 거친 자연속에서 견디며 사는 진짜 서부인들의 날것의 삶과 사랑이 담긴 책이다.
책을 읽기 어렵다면 영화라도 꼭 보길 추천한다.
그러고 나면 책이 꼭 읽고 싶어질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