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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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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얇은 편인가?
어디가 좋다고 하면 가봐야하고 뭐가 맛있다고 하면 먹어봐야 한다. 홈쇼핑에서 마지막 방송이라고 쇼호스트들이 세상이 끝날 것 처럼 호들갑을 떨면 세상이 끝날세라 서둘러 전화기를 들고, 어디 추천 베스트셀러 라더라 하면 베스트셀러에서 내려가는 순간 책 내용이 바뀌어 재미가 없어질 것처럼 바로 주문을 한다.
대부분 생각했던것 보다 못하거나 실망스럽고 어떤것은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과대과장 광고라 솔깃해지고 마는 얇은 귀와 속고도 또 속는 바보같은 내가 한심스러워 망연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진짜 좋다더라'식의 카더라 통신을 또 유포하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일, 싹-잊고 조급증과 안달증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진짜가 걸리기도 한다.
내가 귀가 얇은 건, 이 진짜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버리거나 또 속을지도 몰라 하는 사이에 놓치는건 아닌가 하는 불안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진짜를 만났을 때의 기쁨과 반가움- (이제야 너를 만나다니! 잡은 손 놓지 않고 안은 팔 풀지 않으리...세월을 돌아 돌아 만난 첫사랑과의 해후가 이러지 않을까)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의 투표로 선정한 2016년의 소설 1위! [쇼코의 미소]
아마존 베스터셀러 몇 주, 나오키상 수상작, 노벨문학상 수상, 이상 문학상 수상...이런 유수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들이(물론 읽어본 책 보다 읽지 못한 책이 훨씬 많다 ㅠ) 나와 모두 맞는 건 아니었고 감동적이거나 깊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상을 받았으니 받을 만 했겠지만 어렵거나 내 취향이 아니어서 덮은 책도 있고, 읽었으되 기억이 나지 않는 책이 대부분이다. 귀도 얇고 기억력은 더 얇아 과대과장 광고에 속지 않으려 조심을 했건만, 이번에도 1위 타이틀에 훅, 갔다.
그러나, 이번엔 훅, 간 걸 얼마나 다행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제목도 왜?설 스러운 [쇼코의 미소]를 읽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내내 행복했고 책에서 뻗어 나온 손을 잡으며 위로를 받았고 종래에 약간의 좌절감으로 우울해야 했다. 소설을 써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은 쓸 수 없으리라는 열패감 같은 걸 느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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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쇼코의 미소]는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공감과 소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칫 부서지기 싶고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졌으나 소소한 일상의 기억과 나를 향했던 따뜻한 눈빛, 함께 했던 시간들의 축적이 서로의 등불이 되어 어두운 시간을 헤쳐 나가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나와 쇼코, 나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할아버지로 확장되는 관계의 흐름을 잔잔히 침투시킨 [쇼코의 비밀]도 좋았지만, 낯선 땅에서 만난 한국의 영주와 케냐의 한지, 이국의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의 시작과 멈춤을 그린 [한지와 영주]가 더 좋았다. 사랑했던 시간과 아파하는 시간을 사박사박 걷는 동안 그 행복감과 아픔의 감정들이 읽는 내게로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저럴 때 있었지...내 얘기인 듯 읽혀서 아릿해지기도 했고.
작품의 배경이 이 땅에서만 펼쳐지지 않고 일본, 독일, 러시아로 이국적인 색채가 더해져 대화도 내용도 다양해지고 풍부해 먼 이국의 바람과 햇빛이 느껴지는 것 같아 더 좋았다.
케냐의 한지, 일본의 쇼코, 베트남의 응웬, 러시아의 율랴, 한국의 순애언니.. 다국적의 사람들이 가진 개성과 저마다의 사연은 어디에 사는 누구건 자기 몫만큼의 아픔과 상처는 있구나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하면서 작가가 작품을 위해 얼마나 오래 고민했고 많은 곳을 다녔으며 깊이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뒷통수를 치는 반전도 없고 기이하거나 깜짝 놀랄 사건없이 그저 일상적이고 고만고만한 일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서사의 힘만으로 감동을 주고 위로를 받는 이야기들이다.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재미를 이끌어 가기는 쉽지만 서사만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얼마만한 필력과 내공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행간에 숨어 있는 따뜻한 숨결을 놓칠세라 빨리 읽을 수가 없었고 빨리 읽지 않았음에도 책은 어느새 마지막 장이 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 책을 쓰다듬게 된다. 왜, 이제서야 내게로 왔니? 하며 -
얇은 귀를 감사해 하며 올해 읽은 가장 좋은 소설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차기작을 기다리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