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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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잠깐 짝을 했던 아이는 전교 1등을 하던 애였다. 섬이었고 시골이었던 학교에서 서울대에 원서를 쓴 아이였던지라 학교도 선생들도 관심의 대상이 되던 아이였다. 공부와 거리가 멀고 노는 일이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머리를 디밀던 나였는데 어쩌다 전교 1등과 짝을 하게 되었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짧은 기간 동안 전교 1등을 지켜 본 결과 (그땐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지라 학이시습지 열호아의 경지가 어떤건지 알 지를  못했다.) '얘는 공부가 없었다면 참 심심했겠구나' 였다. 잠깐씩 졸기도 했지만 진짜 공부만 했다. 잠깐 공부하고 내내 퍼질러 노는 나랑은 차원이 다른 아이였다. 나와 다른 차원의 아이가 있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지만 나와 짝을 차원이 다르게 대하는 선생들의 태도는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 있고 차원에 맞는 대우가 있다는 것을!


세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면 김홍신은 잘 몰라도 '인간시장의 장총찬'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어지럽고 암울하던 시대에 가난하고 없는 자의 편이 되어 신출귀몰 협객으로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정의의이름으로 나쁜놈을 처단하고 억울함과 부당함을 해결해 주던 서민의 영웅 장총찬!

모두 그에게 열광했고 시대의 희망이자  우리의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장총찬을 탄생시킨 사람이 김홍신 작가다!

'인간시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김홍신이 이후 국회의원이 된데는 장총찬의 그림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의정활동도 열심히 했고 평가도 좋아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이었지만 그 열정과 소신으로 글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아쉬움이 있다.  

다시 글을 쓰는 작가로 돌아 온 김홍신은 한국 문학사에 있어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에게나 붙은 수 없는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작가이자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는 차원이 다른 작가인 것이다.

차원이 다른 작가의 신작 [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고희에 이르러 쓴 사랑 이야기다.

추억과 상처를 끌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향기를 찾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름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잠언의 한 구절 같은 말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작가의 세례명이기도 했었던 '리노'와 '모니카' 그리고 리노의 아들 '시몬'과 모니카의 딸'아녜스'로 이어지는 2대에 걸친 이루어 질 수없었던 사랑이야기다.

평범하지 않은, 운명적인 인연과 해독제가 없는 사랑 얘기를 써 보고 싶어서 작가 추억의 일부를 꺼내고 상상을 한껏 보태어 뜨거운 열정도 휴머니즘으로 발전해야 아름다움이 지속된다는 생각으로 원고지를 닦달해가며 쓴 소설이라고 한다.  

어쩌지-

차원이 다른 작가에게 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실망했다.


TV드라마에서 물리도록 봐 온 출생의 비밀, 가난한 연인을 위한 헌신과 어쩔 수 없는 이별, 뜻밖의 죽음, 병마로 인해 눈 녹듯 사라지는 갈등요소, 모두가 해피엔딩.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의 소설이니.

그렇지만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듯, 독자들에게도 차원이 다른 소설가에게 바라는 차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장총찬이 밧줄을 메고 건물을 기어오르고 지하실 문을 박차고 악의 소굴을 일망타진 할 때 먹혔을 이야기다.

그땐 아직 순애보가 살아있었고 신파가 먹혔으며 이렇듯 많은 막장 드라마가 선보이기 이전이었으니!

순애보가 나쁘고 신파라서 유치하다는 게 아니다.

순수한 사랑의 주제는 좋았으나 접근 방식의 낡아서 슬펐다.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스럽고 억지스럽게 꼬였던 운명들이 한 순간에 실타래 풀리듯 풀려 갑작스런 해피엔딩이라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된다면 그렇듯 많은 막장 드라마가 재탕 삼탕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차원 높은 눈으로 보면 이 모든게 다 이해고 용서인 걸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라는 속담을 쓴다면 차원 다른 작가에게 행하는 청맹과니 독자의 무례이자 시건방일까.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내 짝을 결국 서울대에 입학을 하지 못했고 재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차원이 다른 선생님으로 차원을 나누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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