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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 ㅣ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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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라는 상이 일본에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2000년 초에 만들어진 상인데 일본 미스터리 장르의 저변화와 작품의 수준이 이런 상으로 인해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오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장르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일본 미스터리하면 벌써 미미여사나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이름이 퍼뜩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수준이야 내가 말할 깜냥이 못되지만 저변화에는 아직 이렇다할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베스트 셀러 소설가 중에 미스터리만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거나 매니아들만 알고 있다는 게 반증이다. (내가 눈 감고 있어 보이지 않은 탓일 수도 있고ㅠ)
아무튼,
상 이름이 재밌어 몇 권 찾아 읽어 봤는데 내용도 재밌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쓴 나카야마 시치리도 2009년 8회 [안녕, 드뷔시]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은 작가였다. (이런 상을 알지도 못했고 작가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으니 읽어 봤을리가 없는 건 당연,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통장은 텅장이고 장바구니는 계속 무거워지는 추세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상 시작했을 당시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게 슬플 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제목에서 느낌이 뙇! 병원 이야기겠구나 싶어진다.
읽어 보니 그렇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을 덧 붙이자면 시신을 부검해 진실을 규명하는 법의학을 주제로 한 의료 미스터리다.
띠지에도 큼지막하게 적혀있듯, '죽은 자의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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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제외한 모든 말, 오로지 진실만 이야기하는 시체들을 사랑하는 법의학자 얘기들이다.
유명한 미드 CSI 그리섬 반장의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 우리를 만난다면 그의 인생 최악의 날이다.” 라고 천명하며 팀을 지휘, 과학수사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을 때, 명불허전이 (우리나라 드라마 명불허전과 상관없다) 무엇인지 보여준다.
드라마지만, 저런 믿음이 가는 과학 수사대가 있는 나라 괜히 부러워지기도 하고 우리나라 과학 수사대는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러더라.
법의학 교수 미쓰자키, 미국인 조교수 캐시, 연수생 마코토가 주축이 된 법의학 팀이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사건들을 시체의 해부를 통해 진실을 파헤쳐 가는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다.
한 편 한 편이 새로운 내용이지만 주축이 된 팀원들이 그대로라서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시청하는 느낌도 든다. 당연히 이 법의학 팀이 있으니 사건이 제대로 규명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 불안하지는 않다. 그런만큼 미궁으로 빠져 고뇌하는 스릴이 그만큼 줄어든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리고 이건, 법의학이고 시신을 사랑하는 팀원들의 이야기니 억울하게 죽었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반전의 반전을 거쳐 홀연히 살아올리가 절대 없다는 냉정함이 있다.
소리없는 죽은자들의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캐내어 우리에게 들려줄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부라리고 있으면 된다. 의사들이 쓰는 전문용어가 빠질 수 없어 등장하는데 세세히 찾아 읽기가 귀찮아 그런게 있구나, 있겠지..설렁설렁 넘어 간 적도 많아 독자로서의 바른자세를 가지지 못했음도 고백한다.
의학 상식이 전무한 사람이라 아, 이런 약을 쓰면 이런 역효과가 나고 이런 상태에선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구나.. 학이시습지 효과가 있었던 걸로 감사하지만, 대단해!는 아니고 괜찮네! 였다면 나는 독자의 바른 마음가짐까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되는건가?ㅠ
시리즈로 다음은 [히포크라테스의 우울]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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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려니...혼자 궁금해 지는 게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데 한 획을 그은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 될 당시 이야기다.
안 잡나? 못 잡나? 웬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의혹이 증폭되고 카더라 통신들이 활개를 칠 때 유벙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병언이 맞다, 아니다 음모설과 루머가 역시 핏대를 바짝 세울 때 법의학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시신은 맞고 사인은 모른다"
그랬더니 또 어떻게 믿냐? 사인을 밝혀내야 하는 법의학자들이 사인을 모른다니 정권의 하수인들 수작이다 -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여전히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고 유병언이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우연히, 그때 참여한 법의학자 중 한 사람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시신이 유병언이 맞다는 걸 자신의 법의학 (20년인가 30년) 명예를 걸고 얘기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다.
진실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길을 잃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고--- 그때 그 법의학자의 목소리가 진실에 가깝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겼다. 그래야, 우리가 당할 혹 모르는 억울할 죽음들을 그들이 밝혀준다고 믿고 '나쁜놈아, 두고봐라 꼭! 밝혀질거다' 하는 마음으로 죽을 수 있을테니까!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기.^^
근데 유병언이 맞다면 백골이 진토 되기 직전까지 왜 발견이 안되었는지 더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