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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ㅣ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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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사랑의 체험 수기' 공모 이런 게 있었다.
사랑이 삶의 체험 현장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일이도 아닌데 무슨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인양 수기를 공모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이렇게 공모된 수기들은 심사를 거쳐 우수작은 상금도 주고 책으로도 만들어져 나왔으며 김자옥씨가 진행하는 '사랑의 계절'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도 방영되기도 했다. 해피엔딩의 사랑보다 비극적이고 애달픈 수기일 수록 더 인기가 많았었다.
주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해마다 공모를 진행해 문학상을 받은 책이 출간되는 것 처럼 한 해 한 권씩 출간되었는데 인기도 좋아 누가 한 권 사면 돌려 읽고 그랬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때 당시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들이 책을 사면 몰래 훔쳐보고 라디오(오전 10시쯤 방송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평소에는 잘 못 듣고 방학 때 열심히 들었다)에 귀를 쫑긋 세운 언니들 옆을 알짱거리다 시끄럽게 한다고 욕도 얻어먹고 그랬다.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인데도 전설따라 삼천리, 조선시대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누구나 가져마땅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놓고 드러내면 욕먹고 있는대로 얘기하고 다니면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 되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듯 언젠가는 '게이 소설 부분을 따로 공모하던 시절이 있었지!' 웃으며 얘기한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 아이들은 "예에~?"하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지도 모른다. "시대의 가치관이라는 게 감정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단다" 얼버무리는 수밖에!
[그해, 여름 손님]은 20th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 수상작이다.
이런 문학상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람다 문학상(Lambda Literary Award)에 대해 잠깐 검색을 해 보니 성적(性的) 소수자 문학에 수여하는 상으로 1989년 제정되어 여러 장르를 포함하는데 레즈비언 미스터리(Lesbian Mystery)와 게이 남성 미스터리(Gay Men's Mystery) 부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989년이면 우리나라 올림픽이 막 끝나고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3저시대 초호황을 누릴 즈음인데 누구도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이상한 놈 이라고 손가락질 안받으면 다행이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변화의 물결은 대원군때 부터 쭈욱 서양으로 부터인가?
책 출간을 앞둔 젊은 학자를 초대해 원고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돕기로 유명한 부모님을 둔 열 일곱의 소년 엘리오와 그해 여름 이탈리아 해안의 멋진 별장으로 초대된 스물 넷 미국인 철학 교수 올리버와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다.
성 정체성이 아직 굳어지지 않은 열 일곱 엘리오의 격랑같은 감정의 출렁거림 위에 지적이고 멋있기 까지한 올리버의 절제된 이성과 선심쓰듯 보여주는 감정을 적어 나갔는데 기대(? 뭘?^^)했던 것 만큼의 수위는 아니었다. 엘리오 상상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격한 묘사나 전개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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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소설이라..동성애를 그린 소설이라는 건데 어떻게 썼을까? 약간의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으나 실망에 가까웠다.
(수위가 높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엘리오의 동성애 감정을 눈치 챈 아버지가 한 말은 비난도 질책도 아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격려의 말이어서 충격적이었다. 만약, 내 자식이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봤지만 나도 내 자식도 소설 속 주인공은 되지 말았으면 싶다는 생각으로 끝냈다.
실망의 이유에는 젊은(엘리오는젊다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미성년자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는 금기시 된 사랑에 대한 고뇌와 마음의 성찰보다는 전달되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낭비적 묘사가 너무 많았다. 선택할 수있는 사랑이 아니라 그것밖에 대안이 없는 사랑이어야 함에도 잠깐 호기심에 어려 관계를 맺었으나 너 아니어도 상관없었다는 식의 이성과의 섹스에도 주저 않고 종래엔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허탈 했다.
동성애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나'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소설들은 읽고 나서도 가슴이 저릿해 온다.
'해피 투게더'나 '번지점프를 하다'같은 영화는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의 벽들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내가 생각하던 버전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제 점수는요~ 별 셋이다.^^
처음부터 다리가 짧게 태어난 사람에게 너는 왜 절뚝거리면서 걷니? 묻는게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들은 뒤로는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을 그들로 인정하는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
노력하지 않고 그냥 보는 사람이 아직 안되는 게 부끄럽지만 앞서 말했 듯 가치관이라는 게 감정을 따라가질 못하는 이유다.
미국판 사랑의 체험수기를 읽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