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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4년 9월
평점 :

책이라고는 무협지 밖에 읽지 않는 사람과 살고 있다.
좋은 책이 어딨고 나쁜 책이 어딨겠냐만 현실에서 발을 반 쯤 뺀 무협, 그들만의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무협의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매력이 숨어있구나' 싶어진다 - 기 보다는,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있는 고수를 (고도가 아니다)기다리고 있는 저 철들지 않는 양반을 어쩔꼬 싶어진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래, 내가 무협의 심오하고도 판타스틱한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니 보이는 것이 없어 그렇겠지. 오늘도 자기 반경 50센치 내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결계를 치고 어느새 책과 함께 잠드는 사람을 보며 나의 폭넓지 못한 독서를 탓하는 수 밖에.
나의 폭넓지 못한 독서는(눈치 챘겠지만) 장르문학에 대해 박한 점수를 주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이야기를 통해 삶이 성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현실적인 이야기만 성찰의 주제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휙휙 날아다니거나 시공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뭔가 '에이, 이건 거짓말이잖아'하는 마음의 장벽으로 인해 몰입이나 깊은 감상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편견이 무섭다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 고치기가 힘들다는데 방점이 있는 것 같다.
추리와 미스터리가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긴 하지만 각각의 특성이 있으니 이란성 쌍둥이쯤 되지않나 싶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태에서 시작되었으되 엄연히 다른 모습이니까! (깊이 생각할려니 머리 아프다.)
그렇다치고,
뭔 말을 하려고 세설이 이리 길어지느냐 하면, 이 책을 통해 장르 문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일본엔 이런 상도 있구나 싶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의 작가 1순위를 했고 100만부나 팔린 베스트 셀러다.
2006년부터 화자가 되기 시작한 책을 10년이 넘은 이제서야 알았으니 내가 장르 문학에 눈 감고 귀 닫고 있었던 게 분명해진다.
장르를 떠나 재밌는 책은 언제나 옳다!
재미있는 책을 좋아하고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 책을 싫어하는 내 기준에서 미스터리 독서 이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10살 아이가 방학식 날 학교에 오지 않은 동급생의 유인물과 숙제를 갖다 주러 갔다가 자살한 친구를 보게 되는데 선생님과 다시 찾아 갔을 때는 시체가 없어지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이야기 중간 중간 깨알 같은 복선이 깔려 있고 크고 작은 반전이 있지만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사건이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엉키고 말려 정신을 바짝 차리리 않으면 '무슨 말이지?'하며 책장이 전진 후진을 반복하게 되더라.(장르문학에 길들여 있지 못해서다.) 마지막 종착점에 다다르면 미스터리와 판타지의 경계에서 잠시 멍해지면서 묘한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나, 앞에서 끌어왔던 이야기의 힘에 밀려 배신감은 반전이라는 이름으로 읽히면서 독자를 충격 속으로 몰아 넣는다.

트라우마가 있는 이 어린 10살의 소년이 토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좀 안됐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는데서오는 결핍이 엉뚱한 대상에 마음을 드러내고 위로 받으며 지낸다. 자신의 이야기는 자기가 만들어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써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서 파국은시작되는데... 이런 애가 옆 집에 산다면 무섭겠다. 하지만 정작 같이 사는 부모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거나 조금 알고 있어도 모른 체하고 있다.

앞 표지의 해바라기, 거미줄, 고양이, 올가미에 발을 들여 놓은 표정을 그려넣지 않은 아이와 뒷표지의 백엽상, 거미까지!
책을 덮고 나면 이 모든 게 하나 하나의 복선이자 모티브이고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눈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하루에 다 읽었다.
요샌 나이 탓인지 핸드폰을 많이 봐서인지 눈도 빨리 침침해지고 책에 가속도를 붙이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냥 잡으면 마지막 장을 봐야 덮어지더라.
추리가 일어난 사건이 결과를 하나씩 맞추어 나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라면 미스터리는 미궁으로 빠질 건 빠지게 놔두고 그림을 맞출 건 맞추어 가는 - 추리보다 여백이 많은 장르라는 걸 느껴졌다.
마지막은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속편이 나와도 재미있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어 약력을 보니 다른 미스터리도 많이 썼고 상도 많이 받았다. 찾아 읽어봐야 겠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권하면 교육상 정서상 도움은 안되도 두꺼운 책을 나도 읽어 낼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과 게임보다 책이 재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최초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 권장 필독서에서 느낄 수없는 흡인력이 있다. 독서토론그런 용으로 생각 할거면 못 본 걸로 하시고.
뒷 표지 설명에 빠진 게 있었네. 책 값은 12,000원!^^(그다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