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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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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섹시하다. "뜨거운 피"
내 일찌기 김언수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어 본 바, 19금 표현에 있어서 이 작가만큼 감칠나는 표현을 쓰는 작가를 몇 보지 못했으니 이건 기필코 에로틱한 소설이었으면 좋겠구나 바라마지 않았다.
말초신경 자극으로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로 콧구멍이 벌렁벌렁, 흥분의 도가니탕에서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 기운은 빠지지만 묘한 중독으로 또 와야지 싶은- 내용이길 바랬으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직역의 의미로 내용을 구성하는 시대는 지나갔나보다.
아나 곶감--- 당했다.ㅠ
그리고,
진짜 나는 이 소설에 당했다.
아~씨!! 너무 재밌었다. 올해 이 보다 더 재밌는 소설은 읽기 힘들거야 싶은 불안한 마음이 확실히 들 만큼!
책을 읽는 이유가 재밌는 책을 읽고 싶은 원초적인 이유가 전부인 나는 이런 재밌는 책을 읽고 나면 그만 우울해진다. 당분간 이만한 재밌는 책을 찾기 힘들것이고, 뭘 읽어도 이 책과 비교하게 될 것이고, 지금 느낀 이 압도적인 감동의 쓰나미도 오래 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더구나,
이게 김언수(김연수가 아니다. 김연수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으니 헷갈리지 말자!) 작가의 최근작이라는 거. 초기작이었다면 차기작 최근작을 닥치는대로 찾아 김언수 섭렵의 시간으로 잠깐 빠질 수도 있었겠으나, 이전에 나온 소설들은 다 읽었고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속상할 뿐이다. 나는 인내나 기다림의 미덕에 대해 알지 못하고 무얼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도 아니라 금방 오늘의 감동 따위 내일 아침 밥 먹고 배부르고 나면 까맣게 잊고 딴 재미를 찾아 헤맬것이 분명하니 이 감동의 쓰나미가 밋밋한 장판이 되기전에 얼른 한 글 적어 두자.
그런데,
뭘 적지!? 그냥 욕 나오게 재밌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는데...
재밌어서 재밌다고 하는데 어떻게 재밌냐고 물으신다면 - 하는 장금이 말을 되풀이 할 수도 없고
재밌는데 참 재밌는데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없네 - 건강보조 식품 광고를 흉내 내기도 우습고.
애니웨이,
재밌는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거나 읽고 싶은 사람 있음 이 책을 권한다. 만약, 도서관에 빌려 볼 수도 있었으나 (우연히 내 글을 보고)굳이 내 돈을 주고 샀는데 재미가 없으셨다면 주저없이 환불을 요청하시라!(나한테 말고 책을 산 서점에^^) 그러기도 쉽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기대한 이상으로 틀림없이 당신 구미에 맞을 것이고 김언수라는 작가를 각인시키는 작품일 것임으로!(김언수 홍보팀이냐고?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 그는 내가 슬프지만 태어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과 성향에 따라 재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 내 취향인지 아닌를 판단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뱀발 설명을 짧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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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에 보면 [숭고하지않은, 그래서 더 뜨거운 피를 가진 남자들의 인파이팅]이라고 적혀있다.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냥 월급쟁이가 아니라는 걸 나는 항상 책의 띠지를 통해 느끼게 되는데 어떤 책이든, 누구의 말이든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엑기스를 뽑아내기란 머리카락을 다 뽑아내는 것 만큼 힘든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띠지의 내용대로다. 숭고하지 않은- 그러니까, 책 내용대로 멋있는 놈이 이기는게 아니라 씨발놈이 이기는 세상의 조폭 새끼들 얘기다. (나는 그렇게 편견이나 선입견이 심한 사람은 아니지만...흠,흠, 조폭은 새끼라는 명사가 뒤에 붙어 줄 때, 그들의 몸에 새긴 현란한 문신과 굳은 인상, 거친 그들의 업계 용어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거 같더라고!)
남쪽의 작은 마을 구암 바닷가를 끼고 벌어지는 조폭 이야기다.
조폭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거리 의리, 언제고 등에 칼을 꽂는 배신, 그런 중에 양념같은 사랑, 조직의 와해와 이합집산, 이권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그런 중에도 조폭새끼로 살아왔을 지언정 조폭새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지만 쉽지않은 조폭 본연의 임무에 회의감을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어쩌면 영화에서나 소설에서 질리도록 봐왔던 비슷비슷한 내용이고 결말이다.
칼 들었다고 나쁜 놈도 아니고 꽃 들었다고 좋은 놈도 아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다 그 놈이 그 놈이고 이권을 위해선 아무렇지 않게 아무나 담구고 법이나 질서? 좆 무서워 시집 못가는 년 있냐고 되려 묻는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조폭 이야기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나물에 그 밥같은 김언수식 조폭 얘기가 욕나오게 재밌었냐면, 결국은 그의 문장력이라고 해야겠지만 그에겐 실전을 보고 자란 사람만이 쓸 수있는 현장용어의 감칠맛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야,야 ,, 모여봐! 내가 우리동네 양아치 조폭 새끼들 얘기 해 줄테니까 들어봐!" 하면서 독자들을 모은 다음 유리창 바깥에서 피튀기는 현장을 지켜보게 하는 리얼함이 살아 숨쉰다는 거다. 이야기를 듣는 건데 이게 어느 순간 3D 입체 영화로 변하면서 그들의 숨소리, 표정, 현란한 동작들이 오감을 통해 실시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거다. 그러다 보면 손가락은 연신 입속의 침을 책장으로 나르고 있고 책을 덮었을 땐 한 쪽이 두툼해 져있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진짜다! 내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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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1. 보시라 책이 뒤로 갈 수록 침으로 인해 두꺼워지다가 종래엔 아주 흠뻑 젖어 찢어졌지 않은가?ㅠ
(내가 얼마나 책을 아끼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책 띠지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책 읽다 접는 놈, 책 읽다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다 다시 읽는 놈, 책 읽으면서 음식 먹으면서 책에 기름 묻히는 놈 - 그날로 핸드폰에 전화번호 지워버린다!! 그런 내가, 내가,,,책이 아무리 재밌기로 이런 만행을 저질럿다고 믿어지지 않.. 안.. 아 -- 우리집 개누무시키, 널 가족이라 믿은 내가 오늘부터 개다.ㅠㅠ)
이 작가가 만만찮은 내공을 가진 작가라는 걸 알았던 건 문학상을 받은 [캐비닛]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는데 이 소설은 제목이 어느 정도 내용에 충실했다고 본다. '세상에 이런일이'나 '진기명기'에 나오는 희안한 사람들 얘기가 줄줄이 비엔나로 엮여 나오는데 웃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몇 년 전에 한 출판사 카페에 일일연재로 올린 [설계자들]은 [뜨거운 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누아르(이건 조폭이라기 보단 살인청부업자 얘기다) 소설이었는데 매일 연재된 글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 주던 작가의 성실과 성의에 감동했었던 기억이 있다.
[설계자들]도 좋았지만 한층 업그레이드 되고 심층 진단된 [뜨거운 피]가 훨씬 좋았다.
(내가 이 책을 10권 넘게 사서 책이라곤 교과서 외에 본 적이 없는 놈들에게 돌려서 읽힌 후 술자리를 마련해서 독서토론까지 했다는 걸 작가는 모르고 있을 거다. 혹시 알게 된다면 싸인 본으로 한 권 보내 주시길..ㅋㅋㅋ)
여름 휴가 시즌이다!
재미와 스릴을 느끼고 더위와 시간을 잊고 싶을 때 이 책을 펴시라!
내 선택이 그러했듯 당신의 선택도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