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5
이응준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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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띠, 별자리... 구분지어 정의하고 틀에 가두어 생각하려는 것에  불편해 하는 나는, 내 혈액형이 뭐니 어떤 성향이고 띠가 대체로 그렇다더라 하는 얘길 듣곤 하지만 그런가?하고 괘념치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혈액형이 뭐라서 어떻다느니, 무슨 띠라서, 무슨 별자리라서 그런 얘길 (재미라곤 하지만)신봉하는 사람과는 얘기를 하기 싫어진다. 그런 틀이 사람을 가두어 더 편협해지고 크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관심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내가 태어난 별자리 정도는 알고 있지만 별자리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를 궁금해 본 적이 없다. 사실 별자리가 몇 개인지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이응준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을 읽으며 전갈 자리라는 별자리가 있었구나..했다. (만약, 전갈 자리가 아닌 도마뱀 자리거나 돌고래 자리라고 했어도 나는 의심없이 그런 태생의 별자리가 있었구나..했을 것이다.)


11월 겨울밤, 전갈자리의 인생을 강요 당해 태어난 사람의 얘기다.

전갈은 절지동물 중에서 제일 먼저 육상을 정복한 무리라고 알려졌다고 하니 그 삶이 치열하기도 하겠지만 녹록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전갈자리 주인공의 생도 그러하다.


작가는 잔인한 어둠에 갇힌 한 사내의 몰락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의도한대로 효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재벌 2세로 추정되는 이 사내는 베트남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향락과 탐닉에 빠져 산다.

섹스, 마약, 술, 여자 어느것 하나 정신적 공황을 메워 주지 않지만 타락의 끝에 다달아야 타락을 끝낼 수 있을 것 처럼 방탕하고 방종한 삶을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실천해 간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신병원에서 야윈 가슴 가운데에 쪼개진 유리창을 꽂고 자살한 재벌의 첩이었던 엄마가 있고,

사랑하지 않지만 재벌가의 명분을 유지시켜 줄 G라는 약혼녀가 있고, 거부 할수 없는 팜므파탈의 베트남 여인 T가 있다.

효신은 자신이 타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한국에 돌아갈 수 없음도 알고 있다. 

마지막 기회로, 한국행을 택하고 악마의 아내인 T를 거부하기위한  자유의지를 선택 했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시피 파멸이라는 늪이 그를 쉽게 빠져나가게 하질 않는다. 계획했던 대로다.

타인의 행운에 기뻐하는 시간보다는 불행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인정한다.

11월 추운날 전갈자리 태생의 한 사내 이야기의 끝을 읽으며 그의 불행에 대해 마음 아팠지만, 그의 불행에 시간을 할애하며- 처참하지만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전갈자리니까 태생이 암울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운명에 대해 도전하며 이겨 내려는 노력을 한다면 전갈자리가 아니지...생전에 믿지 않았던 별자리 특성을 갖다 붙이고  몰락과 함께 그가 원했던 붉은 장미로도 제비나비로도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When this marine dies he will go to heaven becuse he has wasted his youth in hell.

베트남 시장에서 산 지포 라이터에 새겨진 문구처럼  그가 지옥에서 청춘을 낭비한 만큼 죽어서 천국에 임했기를 바랐다.


책 뒷편에 실린 이응준 작가와의 인터뷰는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되었지만, 이응준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어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내가 전갈자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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