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형제 세트 - 전2권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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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국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대표 주자였고, 중국문학은 더더욱 멀기만 한 이웃나라 문학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루쉰의 '아Q정전'을 통해 죽의 장막에도 인간 냄새가 나는 소설이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고 있었구나..생각하면서 중국 문학에 대한 편견이 허물어지기진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중국문학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당신이었다.

그러다 케이블(이었던 걸로^^)을 통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인생'을 봤는데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한 가족의 몰락과 희생을 보면서 원작자인 '위화'라는 작가는 이름만 알고 있는 내가 아는 이상의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출간 된 '허삼관 매혈기'로 명불허전 세계적 작가로 자리하고 문학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위화는 루쉰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하정우가 감독겸 배우로 영화를 만들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지만 개인적으론 원작의 감동이 컷던지라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형제'는 중국의 한 시대를 관통하는 소설이다.

문화대혁명의 홍위병 시절을 건너 개방의 물결로 인한 자본주의의 흐름을 타고 우주시대로 나아가는 중국의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까지의 이야기이다.

이광두와 송강 - 두 형제가 이 새대의 흐름을 어떻게 버텨오고 헤쳐나가 종래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게 되는가?를 위화는 서사적이고도 해학적인 필체로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1.2 권이 단편소설처럼 짧게 느껴지게 한다. 

작가 위화의 힘이다.

사건은 '우리 류진(지명)'의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다 들킨 이광두가 훔쳐본 엉덩이들 중'우리 류진'의 최고 미인 임홍의 엉덩이가 있었다는데 시작된다. 임홍의 엉덩이 생김에 류진의 사내라는 사내의 관심이 모두 쏠리면서 열다섯의 이광두는 사람들 앞에선 후레자식이 되고 뒤에선  임홍의 엉덩이를 팔아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이권을 챙기는 장사꾼이 된다. 하지만, 이광두의 엄마 이란에겐 역시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다 재수없이 똥통에 빠져 죽은 이광두의 아버지를 떠올려 '그 아비의 그 자식'이라는 오명을 가슴에 피멍으로 남기게 한다. 똥통에 빠진 이광두의 아버지를 학교 선생인 송범평이 꺼내 장례를 치르게 도와주면서 후에 이광두 어머니 이란과 송범평은 결혼을 하게 되고 이광두와 송범평의 아들 송강은 형제가 된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둘의 형제애는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깊어 송범평이 죽고 이란이 죽은 후에도 서로 의지하며 어려운 한 때를 헤쳐 나가지만 임홍을 함께 사랑하게 되면서 둘 사이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형제임을 잊지 않는데 ...


이야기의 배경은 문화혁명을 이어 밀려오는 자본주의의 물결을 가난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온갖 쌍욕과 우격다짐, 어거지와 권모술수 속에서 상전벽해의 드라마를 펼쳐가는 동안  모든 이들이 결코 절대악이거나 철천지 원수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해학의 미와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사람들 속에 심어 놓고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흔들리기 쉽고 휩쓸리기 쉬운 민초들의 습성을 잘 표현한데 있다고 본다.

후레자식과 우라질 놈, 좆 같은 죽일 놈들이 천지인 동네에 그래도 애틋한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인정이 있어 이 소설은 저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종래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 준다


이광두의 눈부신 성공도 송강의 처참한 종말도 - 하늘이 뒤집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상황속에서도 - 변하지 않는 형제애를 확인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로 각인된다. 혁명과 시류가 인간성을 훼손시키고 형제를 이간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뜨거운 피를 가진 형제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대가 격변할 때 우리가 봐야하고 당해야 하고 때론 가해자가 되어 행패를 부려야 했던 일들이 용서되고 융해되어 인간들의 본 모습을 이해하고자 하는 여지가 남아 있고 눈물과 인정이 깔려있다.


지주의 이름표를 달고 홍위병의 고문을 받는 송범평의 애틋한 사랑, 그런 송범평의 사랑에 보답하듯 7년 동안 머리를 감지 않는 이란, 토끼표 캐러맬을 먹지 않고 이광두에게 주기 위해 먼길을 달려 온 송강, 송강의 진심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이광두- 이런 인물들 속에서 처녀막을 팔면서도 한국 드라마를 꼭 봐야하는 맥도널의 주식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기꾼 주유와 중고로 구입해 온 일본 양복의 상표에 따라 자신의 계급을 정하는 류진의 사람들, 외국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전세계를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여 뽑치 등...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인간군상들의 내.외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읽는 재미를 더 했다. 우리 이웃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공감하고 씁쓸해 하며.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만큼,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질 때 그 가치가 그들을 혹은 우리를 더 빛나게 하는구나를 느끼게 해 준 위화의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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