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벌써 4년이 지났구나...시집을 덮으며 생각한다.
박경리라는 한국 문학의 큰 발자국이 멈추인지도....
'시간이 덧없다' 여긴 건 아마도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인류가 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선 예외없이 느낀 화석같은 말 일것이라 혼자 또 생각한다.
'님'이라는 호칭을 빼고 그냥 '박경리'라고 쓰기엔 그 이름에 베인 아우라가 너무 크고 짙어 '박경리 작가 님'이라고 긴 호칭을 굳이 적으며 그 분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들이 어떠했었는지 시 속, 숨어있는 행간을 들쳐보고 곱씹으며 찾아보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자정적(自淨的) 과정이기도 했다."
작가의 서문에 쓰인 글속에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겪어야 했던 삶의 신산스러움이 어떠했을지 큰 산처럼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노작가의 묵묵함속에도 우리는 알 지 못했던 파랑들이 많았음을 짐작케 했다.
문학사의 큰 획이자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한 [토지]로 대변되는 박경리 작가가 쓴 시집이라는데 대한 호기심이 첫 번째였다면 표지에 굵은 글씨로 인쇄된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에 들어 있는 나이들어감에 따라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에 대한 공감이 두 번째였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눈이 침침해짐에 따라 더 또렷이 보이는 인생사의 향방과 삶에 대한 애환.
그걸 긴 호흡으로 적어내기엔 나도 숨이차고 마음만 조급해져 짧은 단상들로 정리해 두고픈 그런 마음....
크고 깊은 작가의 뜻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나는 그런 마음에 이 시집이 더애틋하고 삶의 잠언서처럼 읽힌다.
박경리 작가를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지만, 작가가 발표해 온 시가 꾸준했음을 이 책에 실린 시들이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 2008) )의 작품을 뺀 그동안의 작품을 정리한 시집임을 알고는 작가의 시에 대한 애정을 다시 훑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시인이라는 남의 명칭을 도용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며 겸손해 하는 서문도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넘지 말아야 할 장르가 따로 구분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차츰 나는
해명을 하지 않게 되었고
홀로 되었다
외로움은 치욕보다
견디기 힘들지않았고
소쩍새 울음이나 들으며 산다
[P.86 진실 중에서 ]
해명을 위한 치욕보다 외로움이 수월해지는 시간이 오고 소쩍새 울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어쩌면 우리가 우리에게 진실해 질 수 있는 '우리들만의 시간'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시가 전체적으로 화려해서 빼어나거나 언어적인 매력이 넘쳐서 입과 귀에 착착 감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삶을 지나온 발자국마다 새겼던 아픔이었구나, 슬픔이었구나, 기쁨이고 설렘이었구나...를 식지않은 감동 그대로 가슴까지 전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건 시적 허용이 아닌 작가의 사실적 경험이었을거야' 모두 그렇게 읽히고 마니...
경지를 넘은 언어의 탁월함인지, 작가의 삶의 마디를 새겨둔 일기같은 기록이었는지 물을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찬찬히 시를 읽고 읽으며 나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나와 같은 이유로 아파했던..
이제서야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 큰 시인께,
잘 쉬고 계신지, 평안하신지....안부를 여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