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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ㅣ 너머의 역사담론 1
오항녕 지음 / 너머북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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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젊은 개혁 군주 <정조>가 시대의 트랜드처럼 매스컴과 책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더니 요즘은 <광해군>이 뜨고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의 물결을 타면서 오늘로 관객 700만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그야말로 대박!!
전 국민이 한동안 빠져있던 <정조>에서 벗어나 <광해>로 옮겨지고 있다는 반증처럼 보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광해군은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 스물일곱명의 왕 중에 업적에 따라 붙여지는 '조'나 '종'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군'에 머무른 왕이었다.
연산군의 기행적인 행각은 이야기로 구성되거나 극으로 만들어져 심심찮게 봐 왔던터라 이미지가 새겨져 물어 것도 없이 나쁜X라 생각하지만 광해군에 대해선 시대적 이해와 연루된 사건의 전말을 잘 알지 못하면서 같은 '군(君)'이니 같은 군(群) 아니었겠어..하는 이미지의 혼동으로 도매금으로 치부된 감이 없잖아 있다.
광해군의 '흐린 판단'에 면죄부를 주거나 변명을 들어보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상필벌의 입장에서 공과 과를 알아보고 우리가 몰랐던 그의 정치적 입장과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얘기다.
오항녕 교수가 펴낸<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나쁜남자 광해군에서 그래도 나름 애썼던 남자 광해군으로 인식의 폭을 넓히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오던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일본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하면서도 (타국의 역사지만)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역사의 주도권을 잡은 후 기록한 사람들의 시선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말인 즉,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라 평했다.
은택이 백성들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았을지 모르나 기세등등하게 떠오르는 후금(청)과 대의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며 섬겨왔던 명 사이에서 작은 조선이 버텨낼 수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의 아주 명을 무시하지는 않되 청과의 관계에도 소원함을 보이지 않았던 광해군의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는 IMF와 FTA의 국제적 실리가 걸린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기위해 애쓰는 현시대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교훈을 준다.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위해 대동법을 실시해 균등한 세금을 책정하려고 했었고, 허균으로 하여 동의보감을 편찬해 백성들의 고통에 눈감지 않았음에도 그가 악덕을 행한 폐위될 수밖에 없는 왕으로 남은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형인 임해군을 옥사시키고 영창대군을 증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하는 일들로 이어지면서 정사를 돌보며 경연에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뇌물에 연연해하고 궁궐짓는 망치소리만 요란한 궁으로 만들었다.
선혜청을 차리고 대동법을 실시했지만 방납에 개생하던 기득권층의 방해와 광해군 내내 지속되던 토목공사가 원인이 되었다.
물자와 인력이 대대적으로 도원되는 궁궐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세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은 당연하면서도 좋은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 갑절로 다가온다.
이 책은 광해군때의 기록인 광해군 일기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내용과 지은이의 역사적 관점을 적절히 조합해 우리가 광해군을 제대로 평가 할 수있는 잣대를 제시해준다.
그가 무조건 재평가 받고 이시대가 본받을 만한 괜찮은 군주였다고 적지도 않고 폐위됨이 마땅한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고 적지도 않는다.
사료를 바탕으로 잘잘못을 일러주고 이러이러한 행동이 이런 사건의 결말을 가져온 원인이 되었고 그런 일들속에 연산이 처신했던 업적의 공과를 우리에게 치우치지 않는 관점으로 보여준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 입장에서 쓴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시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서인들의 기록이어서 인조의 입장에서 쓴 기록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역사공부를 하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은, 누가 편찬했기 때문에 그 사료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편찬한 사료든 '어떤 이유로 믿을 수 없다'고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는 오항녕 교수의 말은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새겨듣고 잣대로 삼아야 할 귀한 말이다.
내용이 연산군을 주인공으로 세워 이어가는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라 사료를 바탕으로 한 지은이의 생각을 덧붙인 책이라 속도가 나거나 한번에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있는그대로의 광해군을 대중들 앞에 소개하기위해 객관적인 자료와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광해 개인이나 편견을 가지고 대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새로이 고쳐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광해군이 왜 위험한 거울인지 숨을 뜻을 알아보고 위국안민이 자기손에 달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시대의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