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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부음을 듣는 일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 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 없듯 마음으로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해도 예사로울 수 없는 소식이 부음이다.
그 부음의 대상이 엄마라면...
몸피를 만들어 주고 나서도 그 발치에 붙어 언제나 따라다니던 든든한 그림자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지는 걸 보는 것과 같은 일일까? 부음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구분짓는 도드라지는 칼금 같은 말이다.
경원과 뫼르소
<잘가요 엄마>의 경원이 이복동생으로부터 듣는 새벽녘 엄마의 부음에 대한반응은 거실로 스며드는 빗소리가 더 을씨년스러울 만큼 담담해 보인다. 부음을 듣고 난 후, 멍하니 텔레비젼의 음란물을 바라보고 있는 경원에게서 엄마의 장례식 뒷날 태연히 여자친구와 동침을 하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오버랩 됨은 아흔네 해를 산 엄마의 죽음을 장수 했다는 말을 들을 만 하다고 자조적으로 위안함이 쓸쓸하게 느껴져서 였다.
어머니 시신 염습 장면을 보고 싶지않아 공황상태로 열여섯 시간을 할 일 없이 보내는 경원이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관을 들여다 보길 거부하는 뫼르소와 또다시 겹쳐져 보일 때는 그가 예의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이어서라기 보다 엄마와 멀어져 지낸 시간들이 빚은 서먹한 관계를 메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않은 아들의 당황스러움이 아닐까 싶어 등을 토닥여 주고 싶어졌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기 마련이니까!
엄마와 가족
경원에게 가족은 엄마 뿐이다.
경원의 주변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과부하가 걸린 어머니의 노동(P.108)에 빌붙어 사는 외삼촌네가 도사리고 있고, 팔장을 끼고 천정만 바라보며 유행가를 부르는 새 아버지와 이복 동생이 있지만 경원이 생각하는 가족은 오로지 '엄마' 한 명이다.
가족이라는 오종종한 울타리 안(불행히도 그의 집엔 울타리가 없었고 그래서 그의 유년이 더 춥고 밖으로 떠돌기 쉬웠는지도 모른다.)에 들어서면 시린 가슴이 따뜻해지고, 부대끼며 사는 중에 정이 들어가는 피붙이들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경원에게 가족이란 생채기난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대며 엄마마저 빼앗을 것 같은 불안한 위기감만 주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남편을 두 번이나 '갈아치운' 엄마는 평생을 그 열패감 속에서 당신의 그늘이 아들에게 해를 주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잘못에도 야단치지 못하고 서운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 사랑표현 방법을 대신한다.
스스로 뛰쳐나와 방치되던 유년의 아린 기억은 사촌누이라 믿었던 애숙과의 재회로 엄마를 향한 애증의 매듭이 풀리고
엄마가 엄마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납득 받으며 경원은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닦는다.
잘가요, 엄마
아무렇지도 않게 떠났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은 엄마를 보내는 늙은 아들의 사모곡은 격정으로 치닫거나 통곡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데면데면하고 무덤덤하기 조차하다. 유린 당하고 희생 당한 것과는 상관없이 앞 만 보고 묵묵히 살아 온 엄마의 삶과 닮아있다.
잠잘 때 외엔 한 번도 몸을 눕히는 걸 본 적이 없는 엄마의 주검 앞에서야 엄마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고 큰 부피로 나를 감싸 안고 있었는지 회한으로 깨닫는다.
잘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당신의 고통을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고독했던 엄마의 삶과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고독 속으로 들어갔던 아들이 한걸음씩 밖으로 나와 슬며시 포옹하는 작별을 맞는 듯 하다.
또 하나의 즐거움
작가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아픈 개인사를 드러내 보일 때 독자는 작가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된다.
근거모를 행복감이다.
큰 줄기를 내 얘기와 접목해서 썼을 뿐 가공의 인물들과 행간을 채우는 작은 일화들은 소설적인 요소를 아주 배제하진 못했으리라 여기면서도 마치 이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이야기리라 철썩같이 믿으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소설속 주인공 이름이 경원이라 나왔을 때, 왜 주영이가 아니지? 잠시 배신감이 들기도 했으니!^^)
그러면서 그 동네의 살풍경한 이미지와 유쾌하지 만은 않은 학창시절의 기억, 동네 한 명씩은 꼭 있었던 (정태처럼)조금 모자라고 어리숙한 모습을 한 아저씨, 맛있던 짜장면, 누군가에겐 고통의 시간이었던 소풍,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씩 있는 가족사 ..
작가와 떨어진 시대를 살아 왔음에도 글 속의 이야기는 아무런 이물감 없이 내 이야기가 되고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 누가 보면 이상해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자 웃다, 가슴 아파하다..읽는 즐거움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이었다.
끝내지 못할 인사
'잘가요'라고 말함으로 관계를 매듭지을 수 있다면 살아가기가 훨씬 수월해 질 것이다.
누구에게 하든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힘든 법이어서 두 번, 세 번 인사를 거듭하게 된다. 하물며 나를 낳아 준 엄마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임에랴... 서로 드러내 놓고 사랑을 표현 한 적없는 모자간의 마지막 인사가 이처럼 쉬울리 없다. 그래서, 조금 더 슬프다.
엄마라는 이름 속에는 기쁨이다가 슬픔이고 위안이다가 회한인 형언키 어려운 감정들이 함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식상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 대명사가 주는 위안이 얼마만한 것이었나 새삼 그 크기를 가늠해보게 된다.
엄마를 향한 '잘가요, 엄마'라는 마지막 인사는 끝내 보내지 못해 자꾸만 읊조리게 되는 계속되는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
엄마를 먼저 보낸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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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