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다보면 스토리의 전개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이건 발로 쓴 책이군' 싶어질 때가 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책을 읽을 때 <발로 썼다>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이건 그때 말하는 <발>하곤 다른 <발>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될 때 쓰는 <발로 뛰면서 쓴>의 표현이 함축되어 있는 <발>이다!

쿵쿵쿵..발자국 소리까지 책 안에 담는 다는 건 역시 작가의 필력 덕분이겠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스며든 펄떡이는 생동감은 필력으론 다 담을 수 없는 땀냄새을 느껴본 작가의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쿵쿵 울리는 발자국 소리와 시큼한 땀냄새가 베인 '체험 삶의 현장'같은 소설이다.

이 책 이전에 미우라 시온의 <흰뱀이 잠든 섬>을 읽었는데, 몽환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결합된, 발은 땅을 밟고 있는데 머리는 구름에 휩싸인 ...난해한 괴리들이 공존한 내용이어서 스토리의 몰입에 속도를 붙이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맨손체조만 하다 책을 덮은 기분이었다.

<흰 뱀이 잠든 섬>보다 앞서 나온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의 평이 좋아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만난 책이라 기대가 컸었는데 맨손체조만으로 책을 덮다 보니 '강한 바람'에 맞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가무사리 숲'으로 나를 데려가 주는 바람에 다시 '강한 바람'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불고 있는 중이다.^^

책 날개에 밝혔 듯,

외조부가 미에 현에서 임업에 종사하고 있어 어렸을 때부터 100년 후에 팔릴 나무를 기르는 일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고 한다.

어렸을 때 부터 호기심만 키워 온게 아니라, 외조 부가 귀찮을 정도로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베고 하는 일들에 대해 묻고 직접 지켜보고 (아마는)작업장에서 같이 일도 해 보았음이 틀림없다.

외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모른채 책을 읽는 동안 ' 이 양반, 글쓰기에 지쳐 우연히 임업 관리소에서 일하다 너무 재밌어 이걸 소설로 옮긴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무시로 들었으니까.

바다물 다 마셔봐야 짠 걸 아냐? 간만 봐도 알지! 한다면, 바닷물을 다 마셔도 짠 정도를 딱 바닷물 만큼 표현해 낼 수없는 나로서는 할말없다.ㅠ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 하는 것도 없이 아르바이트나 적당히 하면서 살려고 생각하던 '유키'가 자시도 모르게 '녹색 고용' 제도에 접수되어 있어 일손이 부족한 임업회사의 연수생으로 가무사리 마을로 가면서 펼쳐지는 1년 동안의 이야기다.

'나아나아'( 천처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를 풍기는)라는 사투리를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마을이다.

('나아나아'는 어쩐지 전라도의 '거시기'를 연상시킨다.^^)

삼림 조합 사무실 소속의 가무사리 지구 나카무라 임업 주식회사에 배치(?)된 유키의 1년은 새롭고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베고 관리하는 동안 가무사리 사람들과의 근끈한 유대감, 자연에 대한 경외와 아름다움, 빠지면 서운한 로맨스와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자연친화적 성장소설로 읽혔다.

미우라 시온의 책을 읽은 건 딱 두 권 뿐인데, 공교롭게도 두 권 다 속세와 단절된 동네 얘기라서 그런지 자연과 무속신앙에 대한 얘기가 많다.

일본이 많은 무속신앙을 숭배한다는 얘기를 얼핏 알고 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신들은 근엄하고 무게 잡힌 경건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흔히 음식을 먹기전에 버릇처럼 행하는 '고수레'와 같이 친근하고 삶과 밀접해 있다. 날을 정해 찾고 예의와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신이라기 보다는 오래 친하게 지내 챙기지 않으면 서운한 친구같다.

'신과 함께 호흡하는 순박한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 쯤 되는 공통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전에 읽었던 책보다 이번 책이 훨씬 재밌다. 생명력 넘치는 가무사리 숲으로 소풍을 다녀온 느낌이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겪은 걸 재밌게 들려줘야 겠다고 생각하며 쓴 듯한 글의 흐름도 유쾌하다.

숲에서 숲의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언제였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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