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 2006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1
이근미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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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 쯤의 세상은 얼마나 눈이 부신지 '눈이 부시다'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꽃잎이 흩날리고 새잎을 틔우기 시작하는 나뭇가지에 부는 연두빛 바람을 보고 있으면 '열일곱 소녀' 같구나.. 중얼거리게 된다.

 

'열일곱'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법이라 그런걸까?

이제야 알게되는 열일곱의 눈부심을 정작 그때는 모든게 시큰둥하고 주변의 시선은 버겁거나 부담스럽고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다 나를 가두어 놓고 길들이려 하는 것 같았고 누구의 도움도 원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라도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를 바랬던 날들이었다. 그런 열일곱을 지내온 나지만,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이 언제였나? 물어오면 아마도 열일곱이 아니었나 대답하게 된다. 열일곱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던 그 숨막히던 날들이 내 안의 나를 키우고 내가 나를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했던 시간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기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일곱은 그때는 몰랐던 반짝거림이 내 속에 가득해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나이가 되는게 아닌가 싶다.

 

이근미의 '17세' 는 열일곱 가출한 딸에게 보내는 열일곱 엄마의 비망록이다.

왜냐고 묻지 않고 가르치려하지 않고 원망하거나 애원하지 않는 담담한 어조로 내 얘기만 하는 이메일이다.

엄마인 무경과 딸인 다혜의 공통점이라고는 생일이 0707로 같다는 것과 열일곱 살에 가출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전부다.

다혜를 낳고 세 살 때 이혼해 혼자 살아 온 무경에게 갑자기 찾아 온 사춘기의 다혜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고 다혜도 무경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 적 없었다.

다혜의 가출로 다혜에 대한 무경의 안타까움이 더해지면서 다혜를 부르기 위해 내는 목소리가 다혜는 모르는 무경의 열일곱 살의 얘기다.

 

그땐 그랬다...고 하면 언제나 캐캐묵은 고리짝절 시절 이야기가 되고 마는지라 그 시절을 건너오지 않은 아이들은 잘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재밌어 하지도 않는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산업체 학교에 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거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들도 많았다거나하는 얘기는 먼나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듣고 지금 당장 입고 있는 옷이며 신발 얼굴에 바를 화장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런 아이를 붙잡아 눈 앞에 앉혀 놓고 이렇게 힘든 세월을 나는 견뎌왔다 도대체 넌 뭐가 부족하냐 이러쿵 저러쿵 훈계를 늘어놓아 봐야 소귀에 경읽기다. 너처럼 나도 불만 가득했던 나이가 있었고 제일 벗어나고 싶던 첫 번째 공간이 집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공통분모로만 접근해야 귀를 잠깐 팔랑해 보이고 입을 벙긋한다.

내 엄마도 내가 열일곱이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물어보고 싶어질때가 많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펴 든 이근미의 <17세>에서 정작 위로 받은 것은 나였다.

무경의 야무지고 깊은 생각들이 안쓰럽고 대견해 보듬어 주고 싶었고, 눈치껏 부지런할 수 밖에 없었던 빨리 난 철듦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과 희비엇갈린 삶의 갈래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들과 같은 식구가 된 듯 마음이 아팠다 행복했다를 반복했다. 생존과 경쟁이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피부로 터득한 체험을 통해 큰 울림으로 전달하는 힘이 있다.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자 얘기구나..하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엄마 잔소리에 들어있는 사랑의 깊이를,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의 뼈있는 설득을 읽게 된다.

아니, 그런 모범답안을 읽어내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엄마도 태어날 때 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가출도 하고 고민도하고 방황도 했던 나이가 있었구나, 그런 시간들을 거쳐온 사람이구나..만 알아줘도 고마울거 같다.

 

눈부신 계절에 창밖으로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면서 읽은 <17세>!!

17세,라는 나이는 더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하고 향기짙은 모습의 저 꽃과 같은 나이구나..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열일곱 살 아이의 책상에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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