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야 진메야
김용택 지음, 정순희 그림 / 살림어린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더분한 듯 멋진 모습, 개구장이같은 맑은 눈빛,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누는 격없는 대화...김용택시인의 모습은 언제나 인간미가 흐르는
모습이었다.

인간미가 흐르는 시인이 쓰는 시는 넘치는 기교없이도 마음을 보듬어 줄 줄 알고 화려한 수사가 없음에도 마음에 스미어 더 좋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김용택시인의 팬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시인이 있을리없고 요즘의 현대시들은 하나같이 어렵고 어려워 시의 깊이를 파내려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동받기엔 나는
너무 시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 온지라.. 시라는 게 좀 무섭고 멀게 느껴질 즈음 읽은 김용택시인의 시들은...흠, 좋았다. 참 좋았다.

설명없이도 고개가 자꾸 끄덕거려지고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고 시 속 목소리가 가진 그 마음이 어땠을지 나도 알 듯 싶었다.

베껴 써 보기도 하고 더러는 짧은 싯귀를 인용한 엽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받는 사람도 물론 좋아해서 더 좋았다.





그런 김용택 시인이 장편소설을 썼다니..

퇴직했단 소식을 들었는데,글의 방위를 넓혀가나보다..싶었다.

물론 그의 글의 시에만 국한되어 있진 않았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장편 동화라니...아이와 함께 읽던

<콩 너는 죽었다> 시집 이후 다시 아이와 읽을 수있는 동화를 만나게 되는구나..싶어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아이도 같이 좋아한다면 우린 오랫동안 얘기를 나눌 통로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그런데,

이 책....의외로 연륜이 있다.

15년 전 <옥이야 진메야> 산문으로 나왔다가 동화로 고쳐 쓰고, 청소년용 <정님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가 다시 이번에 살림출판사의 <옥이야 진메야>로 나온
아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책이었다.

김용택시인의 글의 방위는 그러니까..내가 알기전부터 확장되어있고 터가 넓었다는 말이다.

그의 글은 동화도 시같고 시도 동화같다.

어떤 글에나 아련함이 묻어있고 눈에 익은 풍경들이 들어있다.





섬진강변 진메마을을 항공사진으로 찍어 줌 인으로 끌어당긴 듯한 묘사는 진메마을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마을 이곳저곳에 있는 돌, 나무, 산, 강 배경이 되는 곳곳마다 얽힌 전설과 사연들, 니집 내집 할 것없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풍경과 사람사이에서 잔잔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가는 옥이와 나의 이야기는 동화를 너머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왔던 그때 그시절의 비망록이라
해도 좋을 듯 싶었다.





벚나무 밑 칠판만 매달고 수업하던 교실, 엿 바꾸어 먹던 총알, 빨치산 아버지, 사진을 찍어주러 다니던 사진사, 비닐우산, 칡잎에 싼
산딸기, 징검다리, 섣달그믐날 밤 치던 굿,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던 운동회의 생생한 표정들...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모습들이지만 나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아이는 신기해 하는 모습들을 얘기해주며 읽어가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다.

고즈늑한 풍경속이지만 시대의 아픔을 비껴가지 못한 채 꾹꾹 억누르고 살아야했던 옥이네 사연들이 아프게 겹치면서 책은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같이 하면서 이해를 돕게하던 그림들은 또 얼마나 곱고 이뿌던지!!

벚꽃 흐드러지게 핀 운동장에서 꽃비를 맞으며 수업하는 아이들,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비닐우산 을 함께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옥이와 나,눈싸움 풍경, 운동회때 달리기하는 엄마들 모습, 모닥불 앞에서 굿판을 벌이던 농악놀이, 진달래 핀 산에서 지게를 내려놓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이 모든 그림이 그림 아닌게 없었다.

야, 그림같다..하는 말이 그대로 그림이 되어 보여졌다고 보면 된다.

보는동안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어쩐지 아련해지는 그리움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림들이 수묵담채로 담겨 책의
감동을 배가 시켰다.





양장본이라 약간 무게가 있기도 했지만, 227쪽으로 아이들 보기에도 얇은 책은 아니다.

아이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뚝딱 읽고 일어설 분량이 넘는대다 갖가지 옛 모습들이 그려질 때마다 '옛날엔 이랬다더라...' ' 엄마도 이런
때가 있었어...'

'할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얘기로 책에 나오는 풍속과 풍경을 설명하다보면 이 책은 하루를 잡고 읽기엔 너무 많은 얘기거리를
만들어 내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내내 아이와 눈을 맞추며 내 얘기를 들려주며, 할머니 얘기를 곁들이며 함께 읽어나가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아이도 얼마나 재밌어하며 듣는지..아이와 나는 어느새 책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써가는
중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진메마을 풍경은 옥이와 나의 추억이 덧칠되면서 더 아름답게 채색되어갔다.
책을 읽는 동안의 내 마음도
덩달아 아름답게 물들었음을 책을 덮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어른이 읽으면 그 시절을 살아 온 내 이야기에 아련해 질 것이고,

아이들이 읽으면 그 시절을 살아 낸 어른들의 얘기가 새롭게 다가올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진달래꽃 향기가 맡아졌다가 싱그런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소나기의 시원함이다가 어느새 흰눈이 마음을 덮는 따뜻하고 고요한
느낌으로 각인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