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1
휴 앰브로스 지음, 김홍래.이영래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삶에 대한 의지와 판단, 예측 가능성과 경우의 수들이 깡그리 무시되는 곳이 전쟁터 외에 또 있을까?

신앙이 깊다고 살아 남으리라는 보장없고, 유능하고 젊다고 총알이 피해가지 않는 살육의 현장! 

명예를 지미고 국가에 충성한다는 거창한 명분들을 등에 엎었으나, 결국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싸움일 뿐이며, 죽여만 살 수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승리인 전쟁! 그래서일까..전쟁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보면 유난히 드라마틱하고 인간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얘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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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퍼시픽'은 제법 유명한 미국 드라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고 드라마속에 나오는 모델이 실존해 있어 감동은 배가 된다. 이 책은 드라마'퍼시픽'을 좀 더 보완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과달카날 전투에서 글로스터 곶의 밀림, 펠렐리우 요새, 아오지마를 건너 오키나와에서의 승리까지를 고향으로 돌아갈 때 까지의 전투를 그린 대 서사적 전쟁 이야기다.

 

오랜 군 경력을 갖고 있는 저명한 가문의 후손 '오스틴 쉬프티 쇼프너', 해군 항공 조정을 맡은 '버넌 마이크 마이클', 앨라배마 주 모빌에 살다 친구의 설득으로 자원입대한 '시드니 C 필립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 '마닐라 존 바실론', 건강의 문제가 있었지만 해병대의 새로운 V-12 해군 학사장요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해 해병대 일병이 된 '유진B.슬레지'4명의 해병과 1명의 해군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전쟁터이긴 하지만 언제나 불을 뿜고 피가 흐르는게 아니어서, 위문공연에 환호하고 로맨스를 꿈꾸고  농담에 웃고 떠드는 모습을 읽을 때면 그들도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젊은 남자들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 졌다.

 하지만, 전투중에 잃은 병력보다 말라리아로 잃은 병력의 수가 많아, 보이는 적 외에 도사리고 있는 전염병과의 싸움도 만만찮았음을, 쇼프너 일행이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을 계획하고 감행하는 여정(이 장면을 드라마로 봤어야 하는데..)은 긴박감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게 해 주었다.  

존 바실론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만큼 같은 해병으로 근무했던 레나 리기와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병약하고 입대하는 것 마저 불투명해 보인  유진 슬레지가 강한 해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읽어 나가는 것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자료사진이 책 후미에 소개되어 있어 실물과 오버랩시킨 책읽기가 가능 했었다는것과 한국 전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맥아더 장군이 바탄에서의 패배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전용 비행기에 'BATAAN'이라는 이름을 새겨 놓은 사진은 재밌고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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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과 내 가족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들을 보고 "그들도 용감하고 훌륭한 군인이었다!"라고 적기는 힘들것이다.

잘 훈련된 모습은 우리를 죽이기에 혈안이 된 모습으로, 용감한 정신은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밖에 보일 수 없음이 적을 보는 바른(?) 시선이라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너무나 미국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라 지독한 일본군의 폄하와 자국에 대한 치우친 평가는 약간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미국이 이렇게 적었는데, 과연 일본의 입장에서 쓴 '태평양 전쟁'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싶은..흥정을 붙이는 구경꾼 마음이 들었다. 분명 그들도 전설처럼 전해오는 가미카제 자살 공격기의 역할과 성과에 대해 할말이 많을 것인 즉.

이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나..싶기도 하고.^^

 

책을 빠르게 읽어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재미와 장르를 떠나 한 권의 책을 사흘 이상 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퍼시픽 1.2권 모두 두께가 그다지 두껍거나 전문지식을 요하는 어려운 장르의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두 권을 다 읽기 까지는 열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책의 구성과 문체에 있어 '빨리 읽으면 지는거다!!'를 모토로 삼고 펴낸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가독률을 떨어뜨렸다.

드라마로 보면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은 서사적 건조체로 전선의 이동경로를  따라 가 상황을 빠지지 않고 기록한 전투일지처럼 적고 있다. 실존 인물의 증언을 토대로 한 논픽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화면에서 죽 훑기만 하면 되는 내용을 날짜와 시간 투입한 대대와 연대, 지명과 동원된 무기, 섬멸한 적의 숫자를 일일이 읽어내는 건 기록을 위한 전투 상황부지 소설의 자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은 소모품이다. (퍼시픽 2권 P.369)

인격과 인권이 깡그리 무시된 말속에서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만들어 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쟁과 스포츠가 다른 점은 2등을 땅에 묻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땅에 묻히는 소모품이 되지 않으려면 살아 남는 것이 곧 승리하는 것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이 간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 병사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나 똑 같은 승리자라고 말하지만, 살아 돌아가지 못한 병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희생자같아 마음이 무겁다.

 

여담이지만, 책에 나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전쟁에 참전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고 누구도 억지로 탈골을 시키거나 생니를 뽑아 전선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명예로운 죽음과 자랑스런 훈장을 최고로 여기는 젊은이들 뿐이다.

 

소설적인 장치를 내가 너무 믿고 있는건지, 우리에겐 너무 자주들리는 병역기피 뉴스가 믿고 싶지 않은 건지..나도 헛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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