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 바다 건너 뭍길 따라 붓으로 그려 낸 명나라 풍경 책 읽는 고래 : 고전 4
최부 원작, 김충수 지음, 이해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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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게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얼마만큼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채 순간 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체면이고 체통이고를 떠나서 일단 살고 봐야 하니, 무엇에나 매달리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게 대부분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모습을 추하다거나 의연하지 못하다 욕할 사람이 있을까?

 

표해록!!

최부가 제주도에 '추쇄경차관'( 나라에서 시키는 노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간 사람을 찾아내어 잡아오는 관리)로 부임해 있던 중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풍랑 속에 배를 띄운 최부일행이 중국땅 닝보(영파)에서 왜구라는 오해를 받아 고초를 이겨내고 조선의 땅으로 귀국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표류기이자 기행문이다.

 

여행길에서 지나친 수많은 다리, 호수와 방죽, 성곡과 성문, 사당과 누각, 사차과 탑, 시장과 역참, 행정 관청과 군사시설, 각 고을의 풍경과 풍속등을 꼼꼼하고 상세하게(P.20) 여섯 달 동안 보고 들은 그야 말로 귀에 들은 것 모두 눈에 보이는 것 모두를 적은  여행기가 표해록이다.

'여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정보야 말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는 열쇠가 아니더냐.'(P.20) 이 한마디가 이 책이 지닌 가치와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여정속에서도  기록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최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짐작이 된다.



표해록이 이렇듯 세밀하고 촘촘하게 명나라를 그려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찌기 역사 편찬에 참여 한 경험이 바탕이 된 이유도 있었지만, 성종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서였기 때문에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기록해  우리나라에서 보다 외국에서 그 가치를 더 높이 인정하는 책이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특히, 명나라때 운하를 어떻게 개통한지를 적은 '미산만익비'의 비문을 옮겨 적어 두었는데, 최부가 중국에서 돌아온 지 몇 년 뒤, 황하의 홍수로 비석이 사라져서 중국의 어느 문헌에도 남아 있지 않은 비문이 표해록에는 남아 있었다는 얘기는, 꼼꼼한 그의 기록정신이 표해록이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는 책으로 남게 되는 원동력이 됨을 알수 있다.

 

힘든 일정 속에서 일기를 매일 적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줄 짐작이 가지만, 그에 버금가는 꼿꼿한 조선선비의 모습을 저버리지 않는 당당함에 또 한 번 놀라게된다. 황제를 뵐 때 예의에 어긋난다고 상복을 벗어야 한다는 중국 관리와 상중에 상복을 벗는다는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는 조선의 예법을 주장하는 모습, 해적을 만나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조선의 관리임을 당당히 밝히는 최부의 말과 행동에서 내가 비굴하게 굴지 않고 당당해야 나라도 당당해 진다는것을 배우게 된다.

 

표해록을 쓰기에서 지금까지 5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서서히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평가를 달리하는 움직임들이 다소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에게 이렇듯 훌륭한 기록문화의 유산이 있음을 알릴 수 있음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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