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나쁜 책이란 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붙잡아 끄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나쁜책의 정의를 어디에 기준을 두었는지 알 수 없고, 읽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 다를 뿐이지 나쁜책은 없다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마음을 붙잡아 끄는 책이라는 정의는 내가 읽은 후 느낀 '제리'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파괴적이고도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

표지에 적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일축해 놓은 한 문장이다. 책의 엑기스를 세 방울로 응축시켜 놓은 어울림직(?)한 표현이군..하며 일단 일목요연한 정리에 한 표 던진다.

(설핏 파괴적이다가 나름 충격적이며 확실히 반도덕적인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시대를 풍미한 파격적인 소설의 대부분은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그 시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가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그랬고, 몇 해전 마광수의 소설들을 예로 들어본다. 예술이다 외설이다 혈전이 오가고 법정까지 가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어보면 도대체 어느부분이 논란거리 일 수 있었단 말인가? 싶어지는 책이 되어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빨리 변하고, 그런 세상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논란의 대상까지는 아니어도 '제리'는 자본주의의 어둑신한 뒷골목에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불꽃을 향해 몸을 내어주고 마는 날아오르지 못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필요 이상으로)사실적으로 그렸다.

노래방과 호스트바, 클럽, 주점에서 원나잇 스탠드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마음이 없이도 몸만 있으면 가능한 섹스, 정체성을 찾기위한 몸부림인 듯 온 몸에 박아대는 피어싱들, 반성도 없고 발전도 없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가진것 없이 외모에서도 주눅 든 노래방  남자 도우미 제리의 쓸쓸한 독백을 통해 내일을 향한 꿈의 공허함과 쾌락이 갖는 반복되는 갈증을 말하고 있다.

 

목표가 뚜렷하고 반듯하고 떳떳한 삶만이 얘기가 되어지고 글이 되어진다면 우리는 위인전이나 읽으며 그렇게 살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며 자괴감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에는 위인전에 기록되는 삶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가 더 많고 (내경우에) 그들의 얘기가 더 솔깃하며 재밌다. 그래서, 제리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마음을 붙잡아 끄는 책이었다.

 

어여삐 봐 줄 수 없고 권장할 만한 삶은 아니지만, 분명 이렇게 그저 살.아.내.기를 계속하는 (스스로 택했든 아니든..)슬픈 젊음이 도처에 있다는 것, 그들을 비난하고 배척 해야 할 대상에서 이해와 연민으로 손잡아 주고 싶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힘이다.

쾌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벗어날 생각조차 없어 보이지만,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했던 시인의 말처럼^^) 바닥까지 추락해 본 젊음만이, 어두운 시간을 몸으로 걸어 본 젊음만이 더 찬란한 생을 향한 꿈을 꿀 수있다는 걸 역설해 보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진부한 말이지만,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겠는가.. 생각없이 쾌락에 몸을 던지는 그들이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지..그만 용서해주고 싶다. 

그러나, 정작 (비루하기 짝이없는 나 따.위. 독자지만..)용서가 안되는 건, 착 달라붙지 못하고 겉도는 비유의 구태의연함과 습작시절에 마쳤으면 좋을 뻔한 묘사들로 인해 가독성에 자주 태클이 걸릴때 였다. 아, 이건 뭐야...고등학교 문예반때 자주 쓰던 표현이잖아..싶어지면

들킨거다. 하산명령이 떨어진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쓴다는 건 직무유기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제리..오렌지 빛깔의 자그마한 고무공이 입안을 굴러다니는 느낌...(P.16)!!

아, 오그라든다.--;;(나만 그런건지 ㅠㅠ 그렇다면, 오렌지 빛깔의 자그마한 고무공을 입안에 굴려 본 경험이 없는 무지한 독자의 무식한 평이라 생각해주시라.)

그리고,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갈등의 모호함, 각인되지 못하고 의미전달도 미흡한 인물들(특히, 엄마),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몸은 너무 농염했고 정신은 늘 흐려있으며, 이가 빠진 듯 짜임이 헐거운 플롯들...아쉽다.

 

글을 쓰는 일은  영혼에 상처를 내어 그 상처에서 뽑은 피로 적어가는 작업이라는 걸 안다. 써 갈수록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이 책에 마음을 붙잡혔고, 읽는 동안 내가 앉은 자리를 책 속의 젊은이에게 내어주며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기도 했으니...나와 같은 마음이 '오늘의 작가상'을 받게 한 이 책의 저력이 아닐까..여겨진다.

차기작을 기다리며 또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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