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흔히 '까놓고 얘기해서~' 이런 표현들을 쓸 때, 나는 그 '까놓는다'라는 약간 외설적이면서도 전세의 반전을 야기하는 표현 앞에서 단박에 기가 죽어 할 말을 잃을 때가 많다. '아, 더 이상 협상의 의지도 여지도 없구나..'싶은 서슬에 움찔하기도 하지만 '정말 속이는  것 없는 진심이구나.'하는 액면 그대로의 마음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비슷한 경우에 표현을 바꿔 '솔직히 말하면~'이라든가 ' 진짜인데요~'라는 식으로 주위를 환기시켜 협상을 역전시켜보려 애쓸때는 '솔직하지 않은 뭔가가 또 있다는 거 알아요.' 혹은 '다음에 나올 진짜는 또 뭐죠?'하며 의심의 경계를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현에서 오는 결연한 의지도 있겠지만, '발가벗고 나선다'는 연상의 작용이 주는 말에서의 적나라함!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어서 빨리 통하고 기가 죽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춤추는 목욕탕에서 만난 세 여인 복남, 호순,미령!

딸이면서 며느리이고 시어머니이면서 친정엄마인 세 여인의 각자의 슬픔에 관한 얘기다.

미령의 남편인 현욱의 고통사고로 인해 사건은 발단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스스로 가두고 있는 아무도 모르는 내면의 슬픔을  각자의 방법으로 딛고 일어서려는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까놓고' 상처에 대해 얘기한 적 없고 그런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한 방법도 모르지만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슬픔(P117)을

박복남 여사는 벗겨질 때가지 닦아 내길 좋아하는 '때밀이'로, 정호순 여사는 자신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지 못하는 '뻥 치기'로  미령은 교통사고로 잃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편의 의자에서 발견된 이구아나와 끝없이 상념을 주고받는 일로 대신하며 슬픔에서 빠져나올 비상구를 찾고 있다.

 

'사는 일은 늘 슬프지만, 나름의 향을 지니는 일은 그 슬픔을 깨닫는 일'(P.114)이라는 걸 질펀한 거짓말로 악착같은 생활의 의지로 보여주는 여인들. 까놓고 보여주는 몸에서 때를 밀어내듯 서서히 상처를 한 거풀씩 걷어내며 치유의 길을 찾아가는  세 여인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읽는내내 즐겁고 재밌다.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와 고통들조차 사랑스러워졌음은 물론이고 나도 몸이 한 뼘 자라고(P.235)  마음까지'온욕'으로 따뜻하게 데워짐을 느꼈다.

 

적나라해서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읽으면서 살짝 얼굴이 빨개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삶의 더께가 눅진눅진 묻은 표현들..아프고 고통스런 삶을 조명하면서도 스포트라이트를 세 여인 내면의 구석진 부분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아직 지명도가 높지 않은 작가임에도 글쓰는 역량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로 작가의 이름을 눈여겨 보게 했다.

 

우울증을 앓았다는 작가의 후기 때문인지 책의 바닥에 깔린 침잠된 목소리가 작가의 목소리로 새로 읽혔다.

책이 춤추듯 팔리길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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