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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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기!

(병적인 집착이 아닌 자연스런 호기심의 발로에서 본다면) 이 만큼 스릴있고 흥미진진한 일이 있을까? 싶다.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법한 가까운 사람의 일기장이나 편지, 마음가는 상대의 행동과 말..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관심의 한 방편이자 관계의 발전을 위한 나약한 쪽의 (음흉한 맘은 없었다는 듯..--;;) 은밀한 관찰.

 

그러므로해서 공통분모를 찾아  마음의 경계선을 허물고 이해의 폭을 넓혀 진심으로 다가서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썩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훔쳐보는 상대가 한 사람이 이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 이미 병색이 완연해 법적 구속력을

빌리지 않고는 안되는 스토커 쳐다보듯 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왜 이렇듯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제스츄어를 누가 들어도 파렴치한 행위에 갖다대며 허락의 끄덕거림을 종용하는지

이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열네 작가들의 열네 사랑의 이야기.

우리시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적은 전전반측의 밤과 함께 한 애틋한 기억들을 마주하는 설렘.

이 사소하고도 은밀한 이야기들을  눈을 번뜩이며 들이대며 듣는다는 건, 사랑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진정한 자세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조용히 쉿, 소리를 낮춰 훔쳐보듯 두근거리면서 들어줘야만 하는게 마땅한 예의!!

유연한 제스츄어의 변명같은 이유다.^^

 

열네 편의 사랑 이야기.

작가의 이름을 보며 작가의 작품을 먼저 생각했다.(물론, 작가들을 다 알지는 못하고 작품들을 다 읽어 본 것은 아니다.)

작품들에 나타나는 굵은 개성과는 달리 사랑의 기억 앞에선 한결 늦춰진 호흡으로 잔잔해져 있음을 느꼈다.

'옛 얘기하듯 말할까, 바람이나 들으렴~ ' 유행가 가사가 언뜻 생각나기도 했으니..^^

 

아팠던 기억이지만, 되돌아보면 아름답게만 여겨지는 기억이 사랑만 한 게 있을까?

만화 주인공에 빠져 살던 작가가 만난 현실속의 남편, 귀뚜라미 선배와의 사랑, 한 줄 메모 한 줄 단어에 각인되어 있는

사랑의 여운, 아련하면서도 속되지 않는 황혼의 사랑, 사랑도 사치스러워 했던 가난한 연인의 아픈 모습...

피식 웃기도 하고 아, 그래 그래...이런 마음 이런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낼 때가 있었지,

제발 헤어지지 말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한 편 한 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게하는 향기로운 시간이었다.

 

가슴의 생채기들이 남긴 흔적들이 작품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언뜻언뜻 비춰졌음을 착시로 느끼며,

잊고 지냈던 기억속의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와 (고산병에 걸리면 이런다고들 한다던데..--;;) 

'그 때 그 일 기억나?' 마치 옆에 있는 양, 묻고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연두빛 시절을 건너와 격정을 가라앉힌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달고 애틋했지만,

훔쳐보는 이의 진정한 스릴을 만끽시키기엔 다소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음을 투정해 본다.

내로라하는 작가들, 그들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면  독자들의 기대치를 안고 써야했던건 아니었나 반문해 본다.

아무리, 울림이 크고 공명이 긴 사랑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나온 책에 내 얘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적는다는 건 약간 비겁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누구를 사랑해 본 기억없이 작가가 되기란 하루살이가 열흘 살아내기 보다 가능성이 희박할테니.

 

'내 생애 가장 황홀했던 사랑의 순간'  '우리시대 대표 소설가들의 리얼 러브스토리'

 

책에 걸린 타이틀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데는 다른곳에선 들을 수없는, 수록된 작가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것이지 작가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의 사랑이 그렇게 애절하고 안타까웠다면 그건 작가 역량에 맞게 각색해 작품으로 나왔어야 했고,

내 사랑이 치명적일 수있어 우회를 선택한것이라면 과감히 이 책에서 작가의 이름을 빼든지, 책의 커버에 적힌 문구를

바꾸는게 독자를 현혹시키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작가의 내밀한 얘기도 스스럼없이 보여 그 설레던 순간의 떨림이 독자에게까지 온전히 전달되도록

공들여 써 준 작가가 더 많았음에는 무한 감사를 드린다.

(감사를 넘어 충성스런 독자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약속까지 얹어드리고 싶다.^^;;)

책의 디자인과 곁들인 삽화는 사랑을 읽어나가기엔 최상의 연출들이었다.

책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하는 돋보이는 편집도 책 읽는 또하나의 기쁨이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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