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사는 곳 - 정인 소설집
정인 지음 / 문학수첩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을까마는 그 상처들이 기억하는 골과 주름이 모두 같은 형태는 아니리라.

물결무늬 잔 주름으로 기억되는 상처에서부터  뼛속까지 스며들어 다리를 꺽고 골수를 뽑아내는 상처까지

그 아픔들의 무게는 자신 외에는 가늠할 수 없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더 깊이 울어야 할 때가 많다.

 

'그 여자가 사는 곳'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들은 모두 지친 모습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들이다.

낮은 목소리들은 모두 깊은 공명을 가졌고 휘발되지 않을 침잠된 무게를 가졌다.

다문화 가정의 문화적 이해 결핍과 실직자들 애환, 결혼 이민자들의 인권에서 인권이 뭔지도 모르는 소년가장까지..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불편한 우리를 더 불편하게 한다.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언제나 무겁고 나보다 더 큰 슬픔을 느껴 본 적 있냐고 충혈된 눈을 치뜨다

그들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날세워 우기던 내 고함소리는 부끄러운 엄살이 되는 걸 느낀다.

 

리엔..

해바라기처럼 웃고 있는 리엔의 동그란 얼굴(p.12)을 생각해보면 그녀를 알게 된 게 다행인지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는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디에 서 있었든 살아내는 일 모두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거라고 위로해 주고 싶다가,

누가 너의 인생이 너 아닌 다른 누구의 행복을 위해 무시되어도 좋다고 일러준 적 있느냐고 질책하고 픈

마음이 교차하는 것 만큼이나!

 

고개를 숙이고 낯빛이 어두운 우리 주위에 살고 있지만, 보고 싶은 곳만 봐 오고  관심이 없어서  

둘러보기 주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대면시켜 준 작가의 한 뼘 더 깊은 시선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등장하는 모든 이의 인생이 하나같이 안타까운 결말인 것은 몸에 좋긴 하지만 쓴 약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것 같은

고통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한 줄 얹어주는 결말이 간혹 있었다면 읽는 동안 덜 불편했을테지만, 

진실은 때론 불편 하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도 익히 아는 까닭에 더 깊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시사채널로 보며 조목조목 객관적으로 따져 현실을 짚어가는 방법보다

이렇게 극화된 주관적인 슬픔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늘이 깊은 날은 햇빛도 밝게 비치는 날이라는 걸 그들이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는 날이 오리라 꼭, 믿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