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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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가다듬는 일을 먼저해야 할 때가 더러있다.

긴장으로 굳어진 근육을 느낄 때, 격정의 전후, 운동회날 달리기 출발선 앞...

 

뜬금없이 어린시절 운동회  물통 나르기 게임이 생각난다.

물통에 담긴 물을  빠르게 온전히 도착점까지 옮겨야 했던 흔한 게임!

알다시피 속력을 내다보면 물은 출렁거려 넘쳐나기 쉽고, 물만 바라보고 가다간 게임은 끝난다.

혹, 넘어지기라도 하면 완전 스타일 구기고 웃음거리 마저 되어야 했던..

 

테레즈 라캥!!

무겁게 출렁거리는 이 느낌을 나는 도착점까지 온전히 가져 갈 수 있을 것인지,

물만 바라보다 타임 아웃이 되는 건 아닌지.. 심호흡 먼저 하게 된다.

 

에밀 졸라, 그의 눈빛은 깊고 집요하다.

아닌 체 마라!! 한거풀 벗기면 똑 같은 얼굴이다!

스케치하듯 투영해 보이는 표현들의 잔치는 차치하고 서라도,

광기로 번들거리는 욕망의 내면과 껴안을 수록 파고드는 영혼의 서늘함을 잘 발라 놓았다.

 

병적인 무기력과 에고이스트이 변함없는 침착성을 가진 카미유,

부드러운 무심함과 무섭도록 냉정한 얼굴의 테레즈,

느글거리는 웃음 뒤 계산된 친절과 무모한 우악스러움을 가진 로랑.

그리고 또,

젊은이의 가혹한 욕망을 알지 못하는 병약한 카미유,

모든 의지를 극도의 친절과 극기의 수동적 도구로 만드는데 집중하는 테레즈,

그 틈을 파고드는 게으름뱅이에다 동물적 욕망과 편하고 오래가는 향락만을 추구하는 로랑.

 

배신의 그늘속에서 자라나는 탐욕의 그림자와 음모와 광기로 번지는 파멸의 전주곡.

헝클리고 폭발하는 감정의 갈래들은 혼란중에도 호기심을 부추켰고,

게걸스럽고 원초적인 욕망을 훔쳐보는 재미는 뜻밖에도 나쁘지 않았다.

 

최근, 개봉된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라 주목을 받고 있지만,(원작으로 더러 오해하기도 하는데 절대 아니다!!)

같은 얼개에서 나온 성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독립된 개체인 이란성 쌍둥이쯤으로 읽혔다.

 

자연주의 문학의 서설이 되었다거나, 당시 '포르노그래피를 펼쳐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쌍한 히스테리 환자’라는 등의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거나 하는 논하고 규정짓기 좋아하는 분들의 말에선 돌아앉자.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던 그의 유연하고 생생한 붓 끝만 보기로 하자!

140여 년을 뛰어 넘어와 내민 손이 이리 뜨겁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수있단 말인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중풍으로 말을 잃은 후에야 모든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는 라캥부인의 내면묘사야 말로 이 책이 스토리 텔링의 써비스도

잊지않았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의 섬뜩한 한 줄 표현!!

대미를 장식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걸, 에밀 졸라 그의 명성답게 졸라(용서하소서--;;)멋지게 보여준다.^^

 

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넓고 성근 이 그물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로랑과 테레즈, 그들이 나누어 마셨던 물 한 잔, 은연중에 꿀꺽!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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