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가 표지에 적힌 작가 약력을 자꾸 들쳐보게 되는 책은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더뎌진다.

이게 훌렁훌렁 줄거리만 타내며 덮어버릴 책이 아니라는 걸 눈이 먼저 알아서다.

말의 맛과 오감을 만족시키는 비유, 박동이 느껴지는 추진력...

아, 이거 쫌 왕건인데...싶어지면 눕혔던 척추를 바로 세우게 된다. 

천천히 먹어야 포만감이 오래간다는 말, 틀린말 아니구나..후다닥 먹고 소화시킬 새 없이 또 삼킬 걸 탐하던 습관을

재조절하는 계기가 되기도한다.

이래저래 기쁜일이다.

 

24시간 굳세게 눈에 불을 켜고 언제라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

입만 열지 않으면 모종의 신비감과 수수한 전문가나 장인의 지성미가 넘치는 꽁지머리의 제빵사가 경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

그 거대한 오븐 속,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아가리 속으로 발을 들여 놓은 성추행범으로 몰린 말더듬이 16살 나!!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면 100%효과가 납니다.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실연의 상처를 빨리 잊게 해 줍니다.

노 땡큐 사브레 쇼콜라..싫은 사람에게 먹이면 '먹고 떨어'집니다.

도플갱어 피낭씨에..또 하나의 내가 하기 싫은일을 대신해 줍니다. 확인하지 마세요. 도플갱어를 확인하는 순간, 둘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으니. 어느 쪽이겠어요?

악마의 시나몬 쿠키..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에게 먹이면 무슨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 줍니다.

타임 리와인더 머랭쿠기..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부두인형..미워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 저주를 내리게 해 줍니다.

 

"있고 싶을 때 까지 있어도 돼."(P.115)

피신처는 피신처일 뿐,집은 아니다.

정체성을 가질 수없는 장소, 부빌 곳 없이 겉돌 수밖에 없는 손님 나.

그가 운영하는 빵집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악마의 속삭임이 베인 빵의 효력을 지켜보게 된다.

빵의 결마다 사람들의 어떤 욕망이 배어 있는지, 그 위에 얹어놓은 잼마다 어떤 악의가 끈적하게 매달려 있는지!!

 

이스트를 들어 붓는 들, 삶 자체가 부풀려지고 근사해 지는 건 아니다.

내가 준비한 재료로 공들인 만큼의 모양과 크기의 빵이 구워져 나오 듯 내가 감당해야 할 아픔은 내 몫이다.

사악한 고양이 혓바닥 3종 세트를 넣은 빵을 먹고, 만사형통 행복 3종세트가 내게로 오기를 바랄 순 없지않은가.

냉혹한 마법사는 현실을 비틀려는 위험한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내 몫의 고통을 담보로 잡는다.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마법사의 일갈은 통렬하면서도 통찰력을 가졌다.

오우, 브라보!!

 

위로와 고통이 잘 배합된  마법사의 빵을 통해 한 뼘 키가 자라고 내면의 공명까지 커진 내가 돌아간 집.

나의 말더듬이는 예행연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목구멍이 탁 막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게 만든 눈앞의 광경.

골라먹는 재미가 숨어있을 줄이야!! 과연, 위저드 베이커리 답다.

보너스~!! 

Y의 경우, N의 경우.

타임 리와인드 머랭쿠키를 하나 짚고 나는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긴다.

 

"닥치고 다 관두고 예, 아니요로만 대답해라."(P.15)

(미리 복선처럼 깔아 둔 작가의 일갈. 무섭구려~)

 

간단하지가 않다.

여섯살, 이 모든 혼란스런 상황의 시발이 되는 장소에서 단호히 No를 택하는 내가 되어야 할 지,

상처투성인 현실속에서 부딪히며 조금씩 나를 찾아가 스스로 일어서는 내가 될 것인지.

나도 예, 아니오를 아혼 번쯤 반복하고 귀싸대기를 맞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 낼지도모르지만,

"궁굼하지도 않아. 인간의 일은."(p.79)

위저드 베이커리 꽁지머리 마법사, 그의 시니컬한 답변처럼 인간의 일을 그리 간단하게 답할 수가 없다.

 

 

재료를 버무려 빵을 만들어낼 때, 윤기가 흐르는 외형과 유혹하는 냄새, 입에 감기는  맛을 다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위저드 베이커리에 주문한 빵은 제빵사의 예민한 감각을 동원해 정신을 집중해 구운 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유효기간이 따로없는 고소한 냄새와 쫄깃한 맛이 독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식지않고 있으니.

(의심없이 읽는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마법을 썼을지도 모른다.^^)

 

차기작이 주목되는 작가이다. 주저없이 별 다섯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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