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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평점 :
제목에서 느껴지는 호전성.
호전성의 느낌은 곧 호기심으로 바뀐다.
모욕의 매뉴얼은 언제 필요한 것이고, 어떤 것이었을까?
'모욕'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히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이다.
모욕을 당할 때와 모욕을 줄 때, 어느편에 있든지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불편함을 예기하면서도 매뉴얼을 준비하는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좀 천박한 호기심으로 책을 폈다.
여름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자신에게 던져진 한마디에 (예전 같으면 대꾸도 못하고 혼자 꿍꿍 앓았을 그녀가)
쏘아 붙인 싸가지 없는 한마디!!
그러면서 타인의 취향에 대해 무례하게 간섭하는 사람들을, 세상의 시선을 더이상 참지말라고 외친다.
용기도 뭣도 아닌 자신이 살아내기 위한 삶의 방편이고 처세의 기법임을 밝히면서.
일단,
그럴수 있다고 같은 편이 되어 끄덕여 주고싶다.
'그러게 무슨 상관이람, 자기네나 잘 하라고 하지 ..' 맞장구를 치면서.
그러다 문득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매뉴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구나..싶은 피로감을 느낀다.
옷을 입을 때 부터 준비해야 하는 매뉴얼, 나를 향한 시선에 대한 곤두세운 신경,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치는 불편해지는 말.
당장은 속 시원해 진 듯 하지만, 내가 뱉은 말로 인해 다시 내가 기분 나빠지는 악순환의 경험들로 인해 그리 권장할 만한
매뉴얼은 아니지않나..싶어 끄덕여 주던 고개에 슬몃 힘이 빠진다.
스스로 말했 듯 ,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불혹의 넘기는 나이가 아닌가?
곤두세웠던 신경을 좀 누그러뜨리며 사람 좋은 체(가식이라 욕을 먹더라도..) 하는 아량 섞인 웃음을 베푸는게
더 어울릴 나인데..싶은 마음이 드는 건, 생리적 나이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나라서 그런걸까?
생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으니, 잘했다, 못했다는 소모적인 언쟁은 차치하자.
현실을 꼬집고 이상을 꿈꾸게 하는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을 오롯이 비출 수 있는 좋은 거울이었고
익히 들어 온 작가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권도 작가의 책을 읽어 보지 못한 나는 이 책으로 인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한 층 더 높아졌다.
책 전반에 흐르는 그녀의 다각적인 시선은 세상을 보는 따뜻함과 비판의 날카로움,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는 소시민적인 애정과 넓은 세상을 돌아보고 온 호연지기의 기상이 고루 베여 있다.
문장속에 느껴지는 알찬 현학의 내공을 엿보는 것도 독자로선 알곡을 씹는 기쁨이고,
비유와 표현의 적절한 언어 선택은 작가의 소설을 섭렵하고 픈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차츰 생각의 동화로 이어지게 한 글들은 어쩌면 그녀가 모질게 준비해 둔 모욕의 매뉴얼들은
따뜻한 마음과 소소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픈, 마음의 방패가 아닌가 싶어졌다.
끊임없는 외부의 공격으로 허물어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없는 자구책.
참고 견디는 것만이 미덕이 아닌 세상에서 불혹의 나이에 할 수 밖에 없었던 모진 결심의 바닥에 깔린
여린 마음을 엿보고는 그만 덥썩 작가의 손을 잡고 힘내라고 응원을 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