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그는 나에게 언제나 한 발 늦게 찾아오는 소설가였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을 내가 한 발 늦게 만났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 될듯하다.

 

'칼의 노래'가 드라마로 책으로 활개를 칠 때, '불멸의 이순신'은 조용히 엎드려 드라마 원작 시비와 싸우고 있었고,

모 일간지에 연재된 '리진'의 화려한 입성과 달리 그의 '리심'은 입으로 귀로 주변을 넓혀 천천히 내 게로 왔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의 이순신은 좀 더 구체적이었으며, 리심은 강단이 있었다.

뒤이어 탐독한 열하광인, 혜초, 황진이...그가 쓰면 역사속에서 부조로 붙박혀 있던 인물들이 환조로 변하고 동체가 되어

마음속에 걸어다는 걸 나는 느꼈다.

 

감히 말하건데, 그는 명실상부한 이 시대 최고의 팩션 소설가다.

분명 알고있던 인물이 분명함에도 그가 주는 옷을 입은 인물들은 새로운 매`력이 돋보이는 다른 사람이 된다.

뭍 백성에게 준 거친 무명옷과 귀골에게 준 비단 옷의 섶이 풀려 헐거워 보이게 한 적이 없었다.

숙련된 재단공인 그는 재구성의 치수를 정확이 잴 줄안다.

 

우물에서 퍼 올린 한바가지 물만으로 우물의 깊이가 이만큼이다, 아니다..하는 일 따윈 그만두자.

애초에 그 깊이를 가늠하기란 내 능력으론 역부족이고, 갈증 날 때마다 달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여기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모 일간지 '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라는 칼럼에 실린 그의 글에 꽤 심취했었던 탓에, 

첫장을 넘기는 순간 그때 실었던 글들을 약간은 다듬고 추가해서 나온 책임을 알았다.

뒤적뒤적 끼적끼적... 책장의 팔랑거림과 연필의 사각거림이 느껴지는 제목도 좋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스크랩했던 글들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과 새로운 글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 할 수있었다.

 

책 한 권에 연결된 다양한 모습들을 병렬로 엮어 직렬의 빛을 발하게 하는 힘.

이 책의 한 줄 소감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책에 맞는 나의 느낌을 적어 보고자 애써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과서적 정석의 힘과 참고서적 심화학습의 효과를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깊이 깨우친 사람이듯,

길지 않으면서 핵심을 찌른 책의 평들은, 티는 날리고 알곡만 챙기는 (고단한 작업의) 능숙한 키질을 연상케 한다.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 다 믿지는 말아라. 이 책도 포함하여."( P.388)

일본의 유명한 고양이 빌딩에 사는 무서운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을 인용한 이 한구절은

책읽기의 중요성을 당부하면서도 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말라는 충고도 아울러 일러준다.

 

 소개되는 한 권에서 시작되는 내면의  돌아보기와 경험의 연결, 카테고리가 비슷한 다른 책들의 소개,

소리내어 읽으면 좋을 부분과 아쉬운 곳의 짧은 비평,그리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이해와 통찰.

아, 부러울 뿐이다!!

 

서평이라고  깐엔 깝죽거리며 적어 왔던 이전의 글들은 잊고 싶다.

그가 보여준 뼈와 근육이 알맞게 잘 올라 붙은 미끈한 몸의 서평에 비해 골다공증으로 뼈대가 부실하고

지방과 군살 투성인 이 글을 어쩌면 좋을지..

 

소개하는 100권의 책들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고, 소개하는 책을 다 읽더라도 담긴 뜻을 나는 반도 읽어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책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풀어내는 방법론들을 컨닝했으니,

그가 보여주는 근육의 긴장이 살아있는 미끈한 몸은 아닐지라도  몸의 실루엣이라도 드러낼 수 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

나는 끝까지 이 망할 놈의 시간과 싸울 것이다.(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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