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특별히 전작주의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흡,(흡인력있고 감탄사가 나오는..) 하고 끌리는 작가의 책을 보면

내리 질리도록 보는 편이다.

작가들의 자기 색깔을 가진다는 것은, (배우가 자기색깔이 뚜렷한 것 만큼이나..)이득일 수도 있겠으나 실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정해진  목소리의 일정한 톤이 길어질 수록 질리는 속도도 빨라지게 되는 것이니.

김영하!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음이 있다. 

한결같이 새로운 톤을 입히고 색깔이 다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한결같다는 말이다.

 

그의 소설들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특히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군더더기 없는 그의 문체라 했던가?

난해한 형용사의 절제와 깔끔한 문장으로 (번역시 탈락될수 밖에 없는 우리정서의 감정이입같은것들..) 그가 의도했던

문장을 오롯히 전달할 수있음도 잇점이라 했다.

그말탓인지, 나는 마음속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될 그의 문장을 쓸어보는 버릇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문장일 수록 더!!

 

우세스럽지만, 그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닌다.(물론, 그가 알리없다. 알아주었음 싶지만..--;;)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내 취향의 글을 써 준 김영하작가의 글에서 받는 매력이 첫째였지만, 앞으로도 싫어질 수 없게 만든것은

서해문집에서 나온 '작가의 방'에서 소개된 그의 책장과 사무실 풍경을 보고 나서다.

 

국립 예술 대학의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p.19)을 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때 쯤인 듯하다.

책꽂이의 장서부터 책상과 방바닥의 온갖 잡동사니까지 작가의 방을 내시경 촬영하듯 보여주고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를

실은 책이었다.

구석진 그의 사무실에 책이 주를 이루고 있음이야 짐작했던 바이지만,

이베이에서 구입한 독일제 35mm 라이카 카메라와 중국 관리가 쓰던 앤티크한 책상,걸어둔 그림과 소품들,

아내가 싸준 도시락( 이 책에도 부산사람이고 성질이 불같다는 그녀를 포착한 대목이 더러 나와 반가웠다.^^), 

문구를 넣어두던 계란판(당장 나도 따라했었다.ㅋ~).. 이런 자잘한 것들에 그의 취향을 넘겨 짚고 눈을 뺏긴 뒤로는,

그는 모르는 소수개미열혈팬이 되고 말았다.^^;;


모자란것을 채워가기에 바쁜 삶속에서 가진것을 비워내기란 얼마나 어렵고 큰 결심이었을지!!

나이 마흔에 가진것을 하나씩 정리하고, 그의 아내와 동행한 두달 반 동안의 시칠리아의 여행기다.

단순한 여행기다.

여행기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생경하면서도 나른한 풍경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사이의 애잔한 감상들.

특별할 것도 없다 싶지만, 예의 김영하작가의 (위에서 밝힌)한결같음으로 이 여행기는 또 차별을 두고 읽히게 한다.

나른한 풍경과 그의 내면이 수평적으로 이어져 있는가 하면, 생경한 도시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들은 작가의 오래전 기억과

오버랩 되어 있다.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시칠리아의 매력들.

도시와 역사, 내면과 풍경, 깨달음과 방향을 재료와 중량을 알맞게 제시한 요리책 레시피같다.

책을 맛있게 읽히게 한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P.292)

 

일한적 없이 만성피로에 젖어있는 내 호기심을 바늘로 콕!쑤셔준다.

경쾌한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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