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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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책을 오래 기다렸다.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했으니 언젠가는 신작을 출판하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다.

[아버지에게 갔었어]가 창비가 운영하는 웹진에 지난해부터 연재가 되고 있었다는데 나는 출간이 되기 전까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6년 만의 만남이다.

해서는 안 될 실수? 아니 잘못은 어떤 상황이나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그 잘못을 반성하고 절치부심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려는 사람에게 이전의 시선으로 꼬아 보거나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재능으로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더 나은 기준의 잣대로 보듬어 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 이렇듯 바람직한 사람으로 성장했단 말인가? 허허)

신경숙 작가의 문체가 살아있는 '신경숙 맞구나'를 확인하며 읽은 책이었다.

잔잔하고 좋았다.

너무 잔잔한 거 아냐? 싶어지다가도 잔잔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마디, 평범한 묘사에 울컥 목이 메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거였다.

아, 이게 뭐라고 참! 그러면서-

소설 속 아버지를 읽어가고, 세상의 아버지들을 이해하고, 내 아버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를 작가 실제 이야기라 여기고 소설과 실제를 일치화 시켜 작가를 혼동의 도가니탕으로 밀어 넣는 독자들을 가끔 볼 때, 왜 저러시나?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며, 어쩌면 신경숙 작가의 진짜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또 왜 이러나? 어이없어 했다.

그만큼, 아버지를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작은 습관과 미세한 감정선까지 잘 잡아낸 글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딸을 잃고 가족과도 거리를 두며 지내던 딸이 엄마의 입원으로 혼자 남게 된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몰랐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다.

마초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질고 격한 세월을 견뎌내 왔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저 살아냈을 뿐.'하는 힘없고 묵묵히 순한, 시절을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환청과 환시, 몽유에 시달리면서도 자식 일이 우선인 우리네 아버지를 그렸다.

농부지만 흰 얼굴과 흰 손을 가진 농부 같지 않은 아버지,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오토바이를 타던 아버지, 몰래 숨겨 놓은 애인을 만나나 가장의 의무를 차마 버리지 못해 간다는 말도 못 하고 떠나온 아버지, 리비아라는 생전 처음 들어 본 사막의 나라에 간 아들에게 매번 답장을 쓰는 아버지, 작은 은혜도 잊지 않고 뒤를 평생 봐 주는 아버지, 밥은 못해도 경운기 조립을 깔끔하게 해 내는 아버지, 나 편하자고 남 불편한 걸 못 보는 아버지, 북과 북채를 두드리며 기가 막히게 창을 하던 아버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논을 갈아 놓던 아버지, 눈 오는 날 신작로까지 길을 내 놓던 아버지.

자녀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숱한 아버지의 모습 어느 한 부분쯤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아버지와 겹치게 되어 있는데 나는 몰랐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었구나, 아버지도 작은 남자에서 시작해 집안의 기둥인 가장으로 만들어져 갔구나,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모두 아버지의 땀이었구나...

그러면서, 목이 메고 울컥했던 거였다.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신경숙 식 패턴과 감정선이 식상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슴슴해서 오래 먹고 싶은 나물 같은 이야기였다.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갚아 나가겠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혹자는 기득권을 가진 문단 권력의 비호를 받는 모양새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그 진정성을 믿고 싶다.

독하지 않은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본 지가 언제인지.

신경숙 작가의 귀환을 환영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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