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말 - 포스트코로나, 공자에게 길을 묻다
최종엽 지음 / 읽고싶은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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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의 전문가 느낌의 저자..

살면서 한번은 읽어봐야할 공자의 말..

너무 좋은 기회에 만나게 되었다.

학부시절 강의실에서 듣던 공자왈~을 그 때의 2배의 나이가 될 즈음 다시 읽어본다.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마흔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게 이 말은 마흔 이라는 나이에 대한 기준 쯤으로 여겨지는 말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올줄 모르고 마흔하면 이 말을 떠올렸었다.

어느덧 마흔을 지나고 있는 나는..

이 말이 마흔 나이의 기준이 아닌 '공자'라는 '대성인'의 이야기임을..

감히 나 같은 평균이하 인간에게는 닿을 수 없는 말임을 백번 인정하고 고개 숙인다.

차라리 '마흔살이라 마흔번 흔들린다.'라는 말이 내게 더 걸맞는 것 같다. ㅠㅠ

이제는 그만 좀...


發憤忘食 樂而忘憂 不知老之將至 (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

분발할 때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에 걱정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사진'에 미쳐있었다.

취직 후 주말도 없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를 투자했다.

사진을 찍고 또 사람들과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며, 그 속에서 배우고 깨닫는 그런 과정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내 나름의 사진에 대한 철학(?)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이 공부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떤 이윤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간과 체력, 정신까지 몰두한 스스로 만족이외의 무엇도 남지 않았다.

젊었기에 체력은 금새 충전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았기에 투자했던 그 무엇도 아깝지 않았다.

일주일을 쉬지 않고 몇 달을 보내도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을 업으로 삼지 않아 지금은 그때 출력한 사진만이 남아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가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젊은 날의 내가 되고 싶어서가 아닌 그때의 열정을 다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의 나지만, 그 때의 열정을 되살려줄 무언가가 내 인생에 나타날 거라 믿는다.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늘 답답한 내 마음을 누구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며 살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답답한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위로를 건넬 주제는 못되지만, 내 마음을 봐주지 않는다는 불평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마라.


머리속에 맴도는 말이 많으면서도, 또한 할 말이 없는 말이다.

남이 나에게, 내가 남에게..

반대로 내가 하고 싶으면 남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15명 중 6명을 뽑는 경쟁이 눈 앞에 닥쳐오고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자에게 현답을 받고 싶다.

나는 어떤 인간이여야 하는가..

현자의 선택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고개 숙여진다.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무식자인 내가 이해하기엔 불공평한 말이다.

부유하니 가난을 원망하지 않아도 되고, 그 여유로운 마음으로 교만을 이기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가난에 처한 자는 부유하지 못한 상황을 탓하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지는 않아보인다.

로열패밀리, 금수저라는 말과 반대로 흙수저, 팔포세대, N포세대라는 말도 있다.

물론, 이와는 상관없이 배경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들도 있다.

나는 평수저쯤되는데, 요즘 붙들고 있는 생각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다.

부유를 논할 수준의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조금은 여유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외에도 자식의 도리와 리더십에 관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아직은 부담스럽지만, 언젠간 공자의 말, 원문 한글자 한글자를 필사해보려 한다.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말하는 것에 더해 직접 써보기까지 한다면, 지금은 깨치지 못한 공자의 뜻을 조금 더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날 공자의 말을 학문으로 깊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어린 시절 무지해서 심취하지 못한 게 아쉽다.

읽을 수록 새롭게 해석되는(내 주관적) 공자의 말을 곁에 두고 자주 되뇌일 것 같다.


好學近乎知(호학근호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혜에 가깝다.


내게도 지혜가 생기길 바라며..

공자의 말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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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마음이 여기 있어요
강선희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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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간직한 저자..

하지만 용기내어 그 마음들을 글로 탄생시켰다.

아무도 몰랐던 저자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첫번째 이렇게 남겨둔 마음


오래오래 널 생각했어.

부치지 못할 편지란 걸 알기에

이렇게 너에게 못다 한 말들을 적어.

이렇게 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까 싶어서.

(p.20, 첫 편지)


저자는 편지를 쓰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전하지 못한 말은 머리속을 맴돌다 사라지거나,

일기장이나 플래너의 낙서처럼 존재한다.

어릴 적 누군가를 향한 나 혼자만의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아무 의미없는 열쇠가 달린 일기장에 몰래 적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래곤 했었던 기억...

나만 아는 이야기로 남겨두고 영원히 혼자 추억하는 선택을 했다.

슬프고 기뻤던 추억을 가진 내 젊은 날로 돌아간다해도,

내 선택은 같다.

지금도 그 때도 용기는...없으니까..



두번째 비워지지 않는 것들


비움에는 언제나 또 다른 채움이 있다는 걸

난 여전히 알면서도 알지 못해요.

이 끝이 없는 마음이 더 이상의 헤아림을 모르기를.

내가 잠시 그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기를.

기울어가는 마음이 그렇게 깅루다가 저물기를.

오늘도 나는 그렇게 기도해요.

(p.51, 비워지지 않는 것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비워낸다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바다에서 누군가를 보내려하지만,

바다는 그 누군가의 거침과 닮아있고,

해질녘의 바다는 또 그 누군가의 아름다움과 닮았다.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

시간에 흘러 비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세번째 짙어지는 말들


너와 대화를 나눌 때 스쳐지나갔던 말들이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올라 나를 멈추게 해.

시간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가

원래부터 나를 위해 준비된 말인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버려.

그러면 나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네가 보고 싶고 그래.

난 아직 너만큼 깊은 사람과 마음을 나눠본 일이 없어.

(p.93짙어지는 말들)


문득 문득 나를 멈추게 하는 말들이 있다.

가슴 설레어 문득 미소 짓게되는 순간들..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음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그 미소는 분명 사랑 받아 행복하던 시절 속에 존재한다.

과연, 저자를 멈추게 한 그 누군가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네번째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인


내 안에서 내가 사라질 뻔했던 그 수많은 시간 속 당신이

나에게 건젠 한마디.

그 한마디로 나는 순간들을 보내고 또 지나갑니다.

"그런 날도 있지요."

(p.119, 그런 날)


가끔 거창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말들이 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어찌해야할 지 모르고 고개 숙인 나에게

"그런 날도 있지요."

그 한마디에 한 시름 놓던 순간..

그런 한마디를 던진 그 누군가는 내 고뇌를 이해한 것이었겠지..

그런 날이 계속된다해도, 내 곁에 그 누군가가 함께 한다면 두렵지 않다.

그런 날도 있다.



다섯 번째 모든 마음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선택엔 모든 마음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나는 여전히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이유가 있기를 바라며 살아.

이 마음 놓지 말자.

(p.153, 이유)


이틀 전에도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해 나는 괴로워야했다.

이해 받기를 포기하고, 그 어떤 말이든 마음에 담지 말자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번번히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바라는 나를 내어주지 않기에

나를 이해하지 못할 말들과 눈빛으로 대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분노로 가득찬 마음을 조금씩 비워내려 노력한다.

이해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해 받기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강요하지도 않는다.

나 조차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저 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유가 있고,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면 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니까!

저자는 그리운 누군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도,

답답함을 전하기도 하고, 힘겨움을 위로하던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하지 못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책을 읽으며 내게 남겨진 아무도 모를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프기도 했고, 예쁘기도 했던 마음들이었다.

남들과 나눌 수 없을지라도 내 소중한 마음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다.

가끔 마음이 가는 책의 한 꼭지를 펼쳐들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될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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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베트남 성장하는 곳에 기회가 있다
이정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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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디지털 금융 전문가인 저자!

베트남에 핀테크 기업 핑거비나를 설립해 베트남의 핀테크 발전에 힘쓰고 있다.



1부 베트남 어디까지 알고 있나


베트남에 대해 알아야할 8가지

베트남의 정식이름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수도는 하노이, 호찌민이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베트남어를 공식으로 사용하고 화폐 단위는 동(VND)이다.

대기업들은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을 인정하고, 글로벌 투자자들도 베트남 투자를 더욱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트남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아래 그림과 같은 8가지를 알아야 한다.


1.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일당 통치 국가이다.

절대 권력자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체제에 의해 국가의 주요한 사항이 결정된다.

54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졌지만 89%가 베트남족이라 소수민족 민족과의 마찰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당의 이익은 민족과 국가의 이익이며, 모든 이익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슬로건처럼 전 국민에 대한 차별 없는 사명을 준수하고 있다.


2. 전쟁과 자존심의 나라

그늘의 역사는 오랜 기간 외세 침략으로 가난과 질병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호찌민의 민주공화국과 베트남 공화국으로 나뉘어졌다가 월남전의 결과 1976년 7월 2일 지금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어 하나의 국가로 통일 되었다.


3. 베트남 개방 개혁 정책 도이머이

도이머이는 '바꾸다(도이)'와 '새롭다(머이)'는 뜻의 순수 베트남어이다.

1986년 발표된 도이머이 정책은 시장 경제 체제를 수용한 베트남식 개혁 개방 정책이다.

대내적으로는 농업 개혁, 가격 자유화, 금융개혁 등을 통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모색했고,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통한 해외 공적지원자금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경제가 개방되고, 시장 지향적인 방식으로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경제포럼 '2019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세계 경쟁력 순위 67위로 전년도 대비 10단계나 올라섰다.


4. 베트남의 유교문화와 교육

근본적으로 연장자를 존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체면을 중시한다.

동시에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의도적으로 나이와 관련된 서열문화를 무시하려는 경향도 공존한다.

유교식 한자 성(姓)을 사용하고, 제사와 장례를 지낸다.

존칭어를 사용하고 항상 교육에 힘쓴다.


5.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술 소비가 늘고 있는 나라

베트남에서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회사에서 충실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맥주를 즐겨 마신다.

베트남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면 관계 형성과 소통이 불편할 수도 있다.


6. 1,700km에 이르는 길쭉한 지형

베트남은 세로로 길며, 위성 사진을 보면 S자 형태로 되어 있다.

수도이자 정치, 행정도시인 하노이, 최대 상업도시인 호찌민 그리고 다낭, 하이퐁, 껀터를 포함한 5개 도시가 중앙직할시로 지정되어 있다.


7. 오토바이 천국, 베트남

베트남의 대중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이다.

이는 좁고 낙후된 인프라와 대중 교통이 부족하고 너무 더워 걸어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기업들은 이를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8. 남자는 나라를, 여자는 가족과 지역사회를 책임진다.

베트남은 전통 사회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가족과 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했다.

헌법에서부터 가족법까지 남녀평등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어느 선진국 못지 않게 잘 정비되어 있다.



2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베스탐을 주목하라


코로나19 대처 능력이 말해주는 사실

2020년 7월 초 기준 베트남 보건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베트남 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 확진자 수는 369명이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으며, 확진자 중 341명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또 2달 이상 신규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강력하고 광범위한 격리와 봉쇄,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펼친 결과이다.

베트남 사회는 건강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큰 질병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매우 크다.

이로 인해 정부와 국민 모두 전염병의 타격이 얼마나 클지 알기 때문에 전염병 확산 방지에 사활을 걸었다.

중국와 한국이 코로나 19가 심해지자 국경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급기야 모든 외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았다.

유입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노력이었다.

그 와중 미흡한 외교적 대처로 한국 측에 통보도 없이 하노이로 향하던 한국발 비행기를 회항 조치하고, 이미 도착한 한국인들을 갑자기 시설에 격리시켜 불만을 야기시켰다.

역시 외교적인 문제보다 바이러스 유입 방지만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는 오로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것일 뿐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다.

심지어 잠시 외국에 나갔던 자국민의 귀국도 막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큰 위기가 닥치면 똘똘 뭉치고 자국을 가장 우선시 하는 문화로 인한 것이다.

무질서해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의 실용주의 성향에 기인한다.

규칙이나 규율보다는 임시통변으로 목적을 달성해나가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평소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 되었던 점은 안정적 마스크 공급이 가능했고, 확산을 막는데 기여했다.

이로 인해 확산세가 멈추면서 빠르게 일상 생활로 되돌아올수 있었다.

이는 정부에 대한 믿은과 안도로 이어져 경제적 자신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3부 디지털 사회로 변모하는 베트남


변화하는 베트남 ICT 산업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트남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ICT 산업도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매출 하락이 이어졌다.

하지만 화상회의, 원격 근무 등의 다른 ICT분야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또한 과거 온라인 학습에 대한 관심이 일부 사립학교에만 국한되었으나 이번 사태로 교육계 전반에서 온라인 학습 이슈로 온라인 교육에 대한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의 핀테크 시장

1억명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 상승, 평균 연령 30세로 노동인구가 전체 인구 대비 60%, 빠른 도시화율 등으로 소비 시장으로서 매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디지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란 전자상거래 등의 온라인 경제가 코로나19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베트남 정보는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베트남 내 디지털 금융을 지원한다.

현금 사용으로 인한 불법 자금 세탁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전자결제 장려 정책을 추진중이다.

아직 현금 선호도가 높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은 온라인 거래 확대와 결제 방식을 현금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베트남의 O2O산업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개함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일원하는 O2O(Online to Offline)플랫폼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특히 오토바이가 O2O플랫폼에 적용되어 더욱 활성화 되고 있다.

2016년 12월 베트남 다낭을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다.

겨울임에도 후덥지근한 날씨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너무 힘겨웠다.

특히 비행이 너무도 힘겨웠다.

그렇게 다녀온 베트남을 책으로 만나니 너무도 새롭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서 출수하고 왜 베트남으로 진출하는지 알게되었다.

값싼 노동력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 1/3, 혹은 그 이상 싼 인권비를 지불하고 높아지는 교육열로 우수한 인재를 등용할 수도 있고, 베트남 내수 시장에서 발생하는 소비도 무시못할 큰 시장이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IT강국인 우리나라가 공략할 수 있는 분야는 더욱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베트남으로의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여행 가이드 북에서 보던 베트남, 그 나라의 경제를 책으로 읽고 나니 뭔가 더 친숙한 기분이다.

베트남에서의 우리나라의 선전을 기원해본다.

그저 불편했던 여행의 기억이 앞으로 그 변화와 발전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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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각자를 찾아서 - 서재필부터 박정희까지, 동상으로 만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4
이상도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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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고, 정치부장, 부도국장,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하였다.


선각자(先覺者) : 남보다 먼저 사물이나 세상일을 깨달은 사람.


제1장 광진·노원 권역

능동 어린이대공권 방정환 선생 동상

-백성이 아닌 국민이 된 어린이



방정환(1899~1931)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고 어린이날을 만든 어린이운동 창시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다.

잡지「어린이」를 발간하면서 수차례 기사 삭제, 압수 등의 조치를 당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P.16)


방정환의 동상은 남산에서 옮겨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설민선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방정환이 손병희의 사위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이전에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중 1명으로 기억할 뿐이었다.

그런데 방정환은 어린이들 뿐 아니라 옷을 만드느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조선 여성들까지도 생각해준다.



조선여자들은 한평생 빨래만 하다가 죽는다고 할 만큼 빨래를 자주 합니다.

더구나 조선 옷과 옷감은 빨 적마다 뜯었다가 다시 재봉을 하게 되고 다듬이질과 풀 먹이기를 일일이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니 그 손해는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되도록 흰옷만을 입지 말고 연령과 성미에 맞춰 아무 색이나 염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p.19)


방정환은 개량한복 입기를 강조했다.

빨래로 허비해야할 시간을 줄여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음이다.

힘들게 세탁된 옷을 입던 것이 옛날 어른들의 권리쯤 되었을까?

그 때도 여성들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구나..

방정환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어린이에 대한 기초조건>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은 국제연맹이 발표한 국제아동권리선언보다 1년 빠른 세계최초의 아동권리선언이된다.

식민지시대를 살며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계속했던 것이다.

현재도 개도국 어린이들이 노동착취와 성문제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다.

정말이지 어린이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것,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자란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보호받고 귀히 대접 받아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나라는 잃었지만 그 나라를 되찾아줄 희망이 바로 미래의 어른, 어린이라는 사실을 방정환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방정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나니 어린이 날인 그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변질된 요즘이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제2장 남산권역

숭의여대 운동장 안중근 의사 동상

-민주공화국의 씨앗이 된 안중근




안중근(1879~1910)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구한말 독립운동가.

인재 양성과 국채보상운동에도 관여했다.

러시아 망명 후 의병장으로 전투에 참여햇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체포되어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p.45)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여러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숭의여대라는 곳에 왜 있을까 궁금했다.

숭의여대의 터가 과거 경성신사(대한제국 시절 한국 거주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가 있던 자리로 해방 후 미국선교사가 숭의여학교를 세운다.

3.1운동 때 교사와 학생들이 평양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6.25전쟁후 경내에 있던 8개의 신사 건물을 차례로 헐어 학교 건물로 사용했다.

현재 숭의 여대 본관 앞에는 경성 신사 신전 주춧돌 4개와 석재 부재 등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연유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세우겠다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의 커다란 업적은 이토히로부미의 처단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체포된 그는

"자신은 대한의군 중장으로 군인이니 전쟁포로로 대우해 달라"

고 요구했다고 한다.

죽기 전에도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유묵을 남겼다고 한다.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라는 뜻으로 순직 직전 일본인 헌병에게 써준 것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기증되어 현재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보관되어있다.

무엇이 이토록 개인을 나라의 독립에 투신하게 했을까?

자산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걱정한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제3장 명동·서울역 권역

만리동 손기정 체육공원 손기정 동상

-올림픽을 제패한 영원한 한국인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금메달을 딴 마라토너이다.

이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인을 이길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줬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제 투구는 독일의 결단으로 1986년 손기정에게 돌아왔고,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p.177)


아..저 표정..

나라를 잃고 일본인 신분으로 출전한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울고 싶다.

동상은 가슴의 태극기와 투구를 가지고 있다.

가슴에는 원래 일장기를 달고 있었는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가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을 보도하며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다. 이로 동아일보는 탄압을 받지만, 국민들에게 더욱 애국심 고취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동상의 청동 투구는 고대 그리스 코린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리스 올림포스 제우스 신전을 발굴하던 중 발견되었다. 그 후 그리스 최대 신문사인 브라디니사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이 투구를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에게 부상으로 줄것을 요청하지만 메달 이외의 부상을 수여할 수 없다는 올림픽 규정으로 베를린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50년간 보관되었다.

그 후 독일 정부가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맞아 청동 투구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하면서 손기정에게 돌아왔다.

이 때 손기정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해방 후 손기정은 육상지도자로 꿈에 그리던 태극기를 달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손기정의 우승당시의 올림픽 기록의 국적이 일본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 조선인 청년의 우승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조선인 마라토너는 나라 잃은 설움을 잊고 나라의 독립을 소원하며 달리고 또 달렸을 것이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 동상의 표정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제4장 종로 광화문 권역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 동상

-저항의 아이콘이 된 한국의 잔 다르크




유관순(1902~1920)

3.1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서울 이화학당을 다니다 3.1운동이 일어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휴교령이 내려져 천안으로 내려와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벌여체포됐다.

옥중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그때마다 고문에 시달리다 건강이 악화돼 옥에서 숨졌다.


이화여고의 유관순 동상은 18세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상을 만든 작가는 "독립투사 등 강성 이미지로만 인식되고 있는 유 열사에게 소녀 이미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18세..

저 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감옥에 갇혀서도 죽을 때까지 나라의 독립을 외쳤다.

유관순의 이화학당 시절 봉사정신과 함께 애국심을 키워준 사람은 스승인 박인덕이다.

또한, 이화학당 입학 부터 다니던 정동교회의 손정도(독립운동가) 목사의 가르침으로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시켰다.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가 제한되는 시절 18세 어린 소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여겼다.

이 소녀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제5장 종각·대학로 권역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김상옥 열사 상

-일본 경찰과 벌인 1대 1,000의 싸움



김상옥(1899~1923)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추격 중인 일본 경찰 1명을 죽이고 16명에게 부상을 입힌 독립운동가이자 중소사업가이다.

총독 암살계획 발각으로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귀국해 종로 경찰서에 폭타을 던졌다.

이후 뒤를 쫓는 경찰과 효제동에서 결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p.293)


김상옥은 1922년 1월 12일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로 아수라장을 만들고 은신한다.

1월 22일 은신처가 발각되고 경찰은 투항할 것을 권유했으나,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다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한다.

김상옥은 총독 처단을 위해 조선으로 떠나는 날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나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라는 말대로 끝까지 소신을 지킨다.

사업가로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나라의 독립에 더 큰 뜻을 두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열사의 희생으로 나는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제6장 서대문·성북·용산 권역

효창동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동상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에서 일왕을 떨게 한 기개



이봉창(1900~1932)

일본 도쿄 사쿠라다몬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 투신의 뜻을 품고 상하이로가 김구를 만나 한인애국단원이 된다.

일본으로 돌아와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지만 불량으로 처단은 실패한다.

이후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P.345)


이봉창은 20대 중반까지 평범한 식민지 청년으로 살다가 철도국에 취직해서 일본인과의 차별에 불만을 품고 일본으로 간다.

그러나 일본에서 한글 편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상하이에서 김구를 만나 때를 기다리다 일왕 암살을 목표로 다시 일본으로 간다.

이봉창의 거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암살 시도는 큰 반향을 일으킨다.

특히 중국의 장제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된다.

이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들은 실패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그 시도만으로도 대한독립의 염원을 불태웠을 것이다.

저자는 동상이 위치한 장소와 의미, 동상의 형상 묘사와 동상 설립과정등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상이 만들어진 후 정권 교체 또는 작가의 이력 논란으로 동상이 철거 되기도 한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은 각종 놀이의 기준점 역할을 할 뿐이였는데

하나의 조각에 지나지 않고 그 분들의 업적과 생애를 함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독립 운동에 투신한 분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사 문제집에서 시험용 외우기 하던 내용보다는 동상의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들이 공부할 때와는 다르게 마음가짐 부터 편하고 쉽 고 읽었고 , 또 문제집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도 담겨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태극기

억울하게도 그 태극기를 숨기고 살아야 했지만, 잊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이 목숨과도 바꿔 지켜낸 독립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이제 동상을 만날 때마다 마냥 지나쳐지지 않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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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Miracle - 대한민국 두 번째 기적을 위한 미래전략
황훈진 지음 / 예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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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훈진 저자는 경영전략 전문가이다.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현재 내게 경제는 너무도 멀고도 어려운 이야기다.

요즘들어 부동산 이슈와 개인의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만 그 마저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코로나로 많은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혼돈인 이 때, 세계 경제의 흐름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전문가에게 강연 듣는 기분으로 읽어보았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미래 전략(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전에 선행되어야할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패권 경쟁에 대해 분석한다.


제2장

미,중 간 글로벌 패권 경쟁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 정치력 그리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달러 기축통화로 전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패권적 우위에 있으며 글로벌 분업 체계를 관리 감독한다.

중국은 존 세계가 피룡한 의류, 잦ㅂ화 등 commodity성 공산품과 내구재를 가장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비교우위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급 성장했다.

(p.24)


한국사를 공부하며 서양 열강국들이 왜 식민지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내수 시장만으론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기에 식민지를 통해 잉여 물품을 소비하고, 부족 물품을 공급받는 지배국 입장에서 절대 유리한 관계가 만들어졌었다.

저자는 전 세계가 철저한 분업체계라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 식민지의 개념이 아닌 각국이 상생을 위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며 사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강대국에 속하는 나라들은 거래대상이 되는 고유의 물품(유형 혹은 무형)을 가지고 비교우위를 점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 나라들에 대한 글로벌 분업체계를 관리 감독하는 나라가 미국인데 특정 나라에 대한 지원 또는 제재로 그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 예로 일본의 반도체 패권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에 반도체를 장려한 미국의 정책으로 한국은 반도체 강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중국의 개혁 개방을 위해 80년대 부터 중국산 공산품을 수입함으로써 중국의 산업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글로벌 분업체계에 참여한 국가들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르 사용하여야 하며, 이는 달러가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유일한 유동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각 국가들은 운전자금, 대외지급준비 및 벌어들인 유동성 축적 등의 목적으로 일정 규모이 외환보유고를 유지해야 한다.

오랜 시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에 대응하는 세력들이 등장하며 힘싸움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국가인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관계로 중국의 변화가 가져올 매중간 패권 경쟁에 대해 살펴본다.

시나리오 변수는 다음과 같다.

중국은 저가 공산품을 가장 값싸게 제조하는 역량을 보유하여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동아남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이 이 기능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만약 이런 전 세계적인 견제가 작동한다면 중국의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낮아질 것이다.

또한, 지난 몇 십년 간 급속한 경제서장으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속히 올랐다. 향후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되거나, 불확실성이 증대되어 투자자본의 대탈출이 발생한다면 자산 버블의 붕괴, 금융부실화의 경제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국가주도 경재개발로 미래 시장의 잠재력 확보와 선점에 기반을 핵심으로 하기에 성장하지 못하거나 판로가 막히면 곧바로 대부모 손실로 이어진다.

공산품 생산으로 입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 산업구조의 변화를 주도하지만 중국 기업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견제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정치민주화로의 열망이 제2의 텬안먼 사건 발생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산당 내 권력 투쟁으로 내전 발생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독립 주장으로 통제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변수들 중 산업구조 변화의 성공 여부와, 정치적으로 민주화 여부가 중요 포인트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에 따라 4가지 전개가 예상된다.


1. 거인의 침몰(Collapse of Giant)

중국의 산업구조 개편이 실패하고, 동시에 정치문주화가 달성되는 상황으로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배한다.

중국 내 민주화 및 중앙정부 통제력 약화 등으로 소수민족의 독립 이 발생한다.

경제 위기로 글로벌 구제금융 및 무역 지원이 필요할 경우 중국 금융과 산업은 해외 금융 및 산업자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 기존의 저가 공산품 생산이라는 축소된 역할로 글로벌 분업체계에 재편입된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과 패권 경쟁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2. 새로운 민주국가의 탄생(New Demo)

중국이 산업구조 개편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정치민주화를 달성하는 상황으로 미국과 패권 경쟁에서 적대적 관계보다는 협력, 부완 및 경쟁적 관계로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이 세계의 선두권으로 올라서며 냇시장도 활성화되어 미국과 대등한 경제규모로 발전한다. 미, 중간 글로벌 패권 경쟁이 경제적 측면에 집중될 것이다.


3. 마오쩌동 시대로의 회귀 (Back To Mao)

산업구조 개편에 실패하는 반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이다.

위기에 빠진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혁 개방 세력을 제거하고 과거 폐쇄된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4. 중국의 시대(Pax-China)

산업구조 개편이 성공하며 미국에 버금가는 중국향 글로벌 대진영을 구축하는 상황으로 미국과이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은 상당 부분 위축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철수할 수 도 있다.

따라서 기축통화를 둘러싼 달러와 위안화 간 유동성 경쟁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은 대중국 산업구조 개편에 전방위적으로 견제하고 있으며, 중국의 정치민주화 열망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이 현재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제3장

우리나라의 전략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어떤 전략으로 대처해야할까?

우리나라는 현재와 미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제대로된 '국가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 목표가 없으니 정권에 따라 너무 상반된 정책이 나오고 국가 운영의 체계성, 일관성, 지속성 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에 국가 목표 설정이 시급하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국가목표를 기반으로 발전 단계별 하위 모교를 설정하고, 과제를 구체화한 로드맵을 활용해 국정을 이끌었다.(독재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비판점이 된다.)

이에 국력적인 측면에서 현재 10위권을 넘어 Top3, Top4 수준의 경제 대국이 됨과 동시에 글로벌 차원에서 영향력을 보유한 강대국이 되는 것을 국가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또한, 국가 수준적인 측면에서 "초일류국가"를 지향할 수 있다.

선진화된 정치, 성장과 분배가 고른 경제, 구조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조화롭게 해결되는 사회,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 등 글로벌 차원에서 벤치마팅 대상이 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강대국이 되기 위해 나라의 규모(인구와, 영토)를 넓히고, 경제수준도 증가시켜야 한다.

외적으로 통일, 내적을 혁신의 방법을 들 수 있다.

그 전략으로 결미(結美)/붕중(崩中)/통북(通北)/친러(親露)/극일(克日)을 제시한다.


우리나라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중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북한이 개방되어 통과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미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동의가 필요하며 일본의 방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p.108~109


대내적으로 우리 나라의 혁신 방안으로 글로벌 융,복합 리더 국가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한다.

미래산업에 맞게 산업을 재정의하여 그게 맞는 지원고 규제를 적용하고, 주력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친기업 정책을 펼치고 핵신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선행 조건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강화하고, 국가 목표의 전국민적인 공감을 얻어내고 전문인력 양성과 법의 단순화와 현실화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세계 지도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크기를 보고 너무 작아서 매우 놀랐다.

그에 비해 중국과 아메리카 대륙은...

많은 비율로 축소 되었기에 그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우리 나라의 영토는 매우 작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는 세계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에 오른 유일한 국가이며, 올림픽도 월드컵도 개최하였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고 K팝과 한류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 선진국으로 이름을 날리고도 있다.

또한, 전세계 인구를 패닉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방역의 성공적인 예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상 짧은 식견으로 봐도 대단한 나라다!!


저자가 제시한 전략들이 현 정권에서 실행되기가 쉬워보이진 않는다.

다음 정권은 전문가들이 이끄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것처럼 전문가가 이끄는 제대로된 국정 운영이 가능한 상태말이다.

철인정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진영이 서로에 대한 반대만을 일삼는 부끄러운 국회가 되지 않고, 진정 나라의 미래를 위하는 이들로 가득차야 할 것이다.

분단된 작은 땅덩이 대한민국에서 두번째 기적을 기대해본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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